2010년 5*6월호 [민우ing]여성들의 목소리, 모이고 있습니다!
[민우ing]여성들의 목소리, 모이고 있습니다!
낙태 고발조치에 맞서 여성이 경험을 말하다
나은(문성훈) ●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
“사실, 왜 다들 낙태 얘길 꺼리냐면,
기억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싫으니까…”
“남편한텐 얘기하지 않았다. 만약 얘기했으면
(수술을) 죽어라 반대했을 거다.
육아를 책임지지도 않을 거면서…”
“둘째도 너무 힘들게 길렀다. 남편이 도와준 것도 없고…”
“병원에 가서 이름 써놓고 한참을 앉아 있다가
그냥 집으로 와 버렸다.”
-임신중단 경험 여성들과의 인터뷰에서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불법 낙태 시술을 했다며 산부인과 의사들을 고발하자 임신중절은 뜨거운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언론은 ‘낙태’를 반대하는 의사들과 여성계를 마주 앉혀 놓고 찬반토론을 붙이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여성단체들은 <임신출산결정권을 위한 네트워크>를 구성해서 기자회견과 퍼포먼스 등으로 여성의 목소리를 내고자 했다. 올해 3·8여성대회의 주요 슬로건도 임신중단에 관한 것이었고, 3월 내내 각종 토론회도 많았다.
고발된 낙태, 어떻게 되고 있나?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2월 3일, 산부인과 병원 4곳을 고발했다. 그리고 4월 6일, 고발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가 나왔다. 검찰은 서울의 산부인과 병원 2곳에 대해서 “낙태 시술과 관련해 과장ㆍ과대광고를 한 혐의(의료법 위반)로 병원장 2명을 벌금 200만원에 약식기소 했다”고 발표했다. 불법 낙태 시술을 했다는 증거는 찾기 어려워 의료법 위반으로만 처벌했다는 것이다. 또 안양에서 고발된 산부인과의 사무장은 구속했다. 이 산부인과는 부인이 사무장으로 있으면서 “수십 건의 불법 낙태 수술을 주도하면서 병원을 경영 해왔고 증거 인멸 시도가 있었다”는 것이 구속 이유였다. 남편인 병원장은 불구속 기소했다.
4월 9일, 프로라이프 의사회 고발건과 별개로 부산의 산부인과 의사가 2007년에 임신중절 시술을 했다는 이유로 불구속 기소됐다. 남자친구라는 이가 결혼을 앞두고 여자친구가 자신의 동의 없이 수술을 했다며 병원과 여성을 함께 고발했다. 낙태 시술을 의뢰한 여성은 수술 받은 지 2년이 지난 시점에서 고발을 당했고, 임신 초기에 시술을 받았기 때문에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현재 형법 269조와 270조에 따라 ‘낙태죄’는 낙태를 한 여성과 의사 모두 처벌하게 되어 있다. 위 사례에서는 여성이 직접 처벌되지는 않았으니 불행 중 다행인 것인가.
고발 조치 이후 여성단체에는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소개해 달라는 문의가 빗발쳤다. 어떤 남성은 자신과 여자친구 둘 다 비정규직인데 찾고 찾아 겨우 수술을 해주겠다는 병원을 찾았지만 수술비로 400만원을 요구했다며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문의가 “(수술을) 해주겠다는 병원이 없으니 제발 소개를 해 달라”는 내용이었고, ‘리스크 비용’ 명목으로 수백만 원대로 수술비가 올랐다는 얘길 들을 수 있었다.
실제로 고발 조치 이후 산부인과 의사들의 임신중절 시술 건수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가 설문조사를 했는데, 산부인과 개원의 91%가 임신중절수술을 해왔지만 그 중 78%가 고발 조치 이후로 수술을 중단했다고 답했다.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는 프로라이프 의사들의 고발 조치로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여성들은 갈 곳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5월 초, 우리는 어느 대학생의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3월에 시술을 받고자 백방으로 알아보았으나 병원을 찾지 못해 결국 임신을 계속 진행 중이라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출산을 결정한 상태지만 고발 조치로 사실상 수술을 받지 못하게 된 현재 상황에 대해 매우 분노하고 있다고 했다.
여성이 경험을 말하다
낙태 고발 조치로 인해 여성들의 인권이 침해당하는 사태 속에서 정작 여성들의 목소리는 존재하지 않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여성이 섹스를 하고 원치 않은 임신을 겪고, 임신을 중단하거나 혹은 출산하게 되는 과정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 과정들은 무시된 채 의사들만이 자신들의 전문성과 권위를 무기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당장 ‘낙태’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임신은 여성의 삶에서 매우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임신을 원하지 않는데도 무조건 낳으라고 강요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경우에도 사회 현실 때문에 감히 낳기가 ‘두렵다’는 반박이 투정으로만 들리는가?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고발 조치와 낙태 반대론은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몸이 여성의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과거에는 국가 주도 가족계획에 따라 애를 떼라면 떼야 했고, 지금은 저출산이 문제니까 낳으라면 낳아야 하는 것일까. 또한 여자라는 이유로 평생을 가사노동과 돌봄, 노동에 매어 있어야 하는 것일까.
‘낙태’가 완전 불법화되고, 그 결과 수술이 음성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면 여성들이 입을 피해는 불 보듯 뻔하다. 여성들의 자유와 선택권을 제약당할 뿐 아니라 원치 않는 출산에 시달리고, 음성 낙태 시술의 위험과 스트레스 속에 정신적, 신체적 건강은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것이다. 따라서 여성들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을 위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를 찾는 운동의 힘은 바로 여성들 자신에게서 나온다. 누군가 대신할 것이 아니다.
그래서 민우회는 임신을 중단한 기억, 수술을 고민했던 경험, 원치 않은 임신으로 고민했던 속내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나눠 보기를 제안하고 있다. 꺼내기 힘겨운 기억들이지만 서로 공감하고 그 속에서 우리의 갈 길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쉬쉬하고 감춰야 할, 묻어 둬야 할 얘기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위해 어떤 식으로든 어떤 공간에서든 ‘말해’ 보자는 거다.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여성들의 서로 다른 경제적, 사회적 처지를 고려한 대안 모색도, 섹스와 피임에 대한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책임을 요구하는 것도, 건강할 권리와 보다 손쉬운 피임접근권에 대한 요구도, 낳지 않을 권리와 낳을 권리에 대한 요구도, 가능하다. ‘들끓는’ 말하기와 공감 속에서 우리의 ‘힘’을 만드는 데서 출발해 보고 싶다.
목소리가 모이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민우회는 4월 중순부터 ‘낙태 고발조치’로 인해 시술을 받지 못하거나, 시술 비용의 증가, 시술 음성화로 고통 받고 있는 여성들의 사례를 인터넷과 전화로 받고 있다. 과거에 ‘낙태’ 수술 경험이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도 받고 있다. 여성의 경험과 사례들을 모아 임신중단을 제한하는 행위가 여성의 결정권을 무시한 차별 행위임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는 방법이나 낙태 관련 법률 개정운동을 펼치는 방법, 모아진 여성의 목소리를 알리는 캠페인 등 다양한 운동의 방향을 모색 중이다. 아쉽게도 인터넷과 전화를 통해서는 아직 많은 이야기들이 들려오지는 않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발로 뛰기로 했다. 인터넷에만 기대지 않고 직접 소개를 받아 찾아다니고 있다. 며칠 전, 민우회 지부를 통해 소개받아 인터뷰를 하고 왔다. 활자로 보던 것과 달리 함께 이야기하는 그 떨림은 그 어디에 비할 데가 없었다. 이렇게 목소리가 모이고 모인다면 분명 큰 힘이 될 거라 믿는다.
나은 ● 돌아다니길 더 좋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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