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6월호 [민우ing] "돌봄 ÷ 돌봄=1" 이 복잡한 수식 한번 같이 풀어볼까요?
[민우ing] "돌봄 ÷ 돌봄=1"
이 복잡한 수식 한번 같이 풀어볼까요?
나랑(김지현) ●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
나 혼자 비혼으로 산다고 현실이 달라지나
얼마 전, 비혼으로 살겠다고 결심했다. 여성주의자이기 때문은 아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 중 하나는, 아이를 키우며 활동하는 여성활동가들을 직접 목격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걸 실감했기 때문이다.
몇 살에 아일 낳아야 하지? 어떻게 키워야 하지? 양육과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 공존할 수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면서 아이를 키우려면 초등학교 때부터 기숙학교에 보내, 어째? 혼자 북치고 장구치면서 인생계획과 대차대조표를 썼다 고치기를 수개월 반복한 끝에, 여성이 돌봄의 수고를 거의 전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양육은 내 깜냥 밖의 일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결국, 포기했다.
포기하고 나니 속은 시원하더라마는, 나 혼자 포기한다고 현실이 달라지나?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나의 선택이듯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도 한 여자의 선택이며, 비혼으로 사는 내가 행복해야 하듯 엄마로 사는 여자도 행복해야 한다. 이건 여성주의자로서 양보할 수 없는 문제다.
여성부 ‘퍼플잡’, 보라색을 욕되게 하지 말라
자본주의사회에서 ‘일’의 주목적이 돈벌이고 창조성이 필요 없는 소외된 노동이 대부분이라 해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 중요하다. 온전한 자아실현은 아닐지라도 일은 우리에게 쥐꼬리만한 돈이라도 쥐어주고 독립감과 관계의 장을 제공한다.
하지만 여성들은 여전히 임신했다는 이유로, 법에 보장된 육아휴직을 썼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되고 반쪽짜리 자아실현의 기회마저 빼앗긴다. 버젓이 불법이 판을 치는 이유가 “여자는 집에서 애나 봐야지”, “아이 키우면서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어?”하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과 관행 때문임을 말하는 건 이제 입 아픈 일이 되어버렸다.
여성부에서는 2010년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겠다며 무슨 향수 이름같이 그럴싸한 ‘퍼플잡’을 대책으로 내놨다. 그 내용은 단시간 근로 등 유연근무제를 확대해서 출산,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둔 여성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단시간 근로가 늘어나면 여자들이 아이를 기르면서 일도 하고 자아실현도 할 수 있을까? 어째 불안정한 일자리만 더 늘릴 것 같은 ‘퍼플잡’은 여성 일자리 문제의 핵심인 ‘출산,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자체를 막지 못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경력단절 후 재취업보다는 경력이 단절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선 아니겠는가. 그리고 하필이면 거기에 왜 민우회 홈페이지 색깔인 ‘퍼플’(보라색)을 갖다 붙이냐고, 나 원 참!
돌봄을 돌봄으로 나누면 평등한 일이 됩니다
민우회는 2003년부터 “평등한 일·출산·양육” 캠페인을 해왔다. 그리고 올해는 여전히 여성에게 전담되고 있는 ‘돌봄’을 남성과 사회가 함께 ‘나눔’으로써 엄마노동자의 평등한 ‘일’이 가능하다는, ‘돌봄÷돌봄=1(돌봄을 돌봄으로 나누면 평등한 일이 됩니다)’ 사업을 한다.
하지만 막상 남성이 돌봄을 나누려할 때에도 현실은 만만치 않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지”, “승진을 포기할 생각인가?”, “얼마나 못 났으면…” 등 가족과 친구, 이웃들의 편견부터 이겨내야 한다. 육아책과 TV 프로그램은 온통 엄마를 양육 전담자로 그릴 뿐, 아빠는 고려하지 않는다. 육아 온라인 카페에 가입할라치면 남성이라는 이유로 가입을 거부당하고, 지하철이나 마트 내 수유실은 여자화장실에 딸려 있어 아빠의 출입이 불가능하다. 아빠하고만 있는 게 미안해서 다른 아이들을 만나게 해 주려고 문화센터에 수강신청을 하려고 하면 프로그램 이름은 ‘엄마와 함께’….
직장은 또 어떤가? 잦은 회식과 야근은 남여모두에게 아이를 돌볼 시간을 허락하지 않고, 육아휴직은 승진에 있어서 오점으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민우회는 올해 남성 양육자들과 함께 그들이 양육에 참여하면서 느꼈던 고충, 맞닥뜨렸던 편견, 일상에서 마주친 산적한 과제들을 낱낱이 드러내는 작업을 해보려 한다. 법, 제도의 개선만큼이나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노력, 즉 사회적 인식과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1%의 남성 양육자를 기억하는 세상
그 첫 삽으로 아빠들의 돌봄 수다회가 5월초에 열렸다. 육아휴직을 했던 아빠들 세 명과 육아휴직을 앞두고 있는 예비아빠 한 명이 모였다. 예비아빠는 출산을 앞두고 아주아주 구체적인 질문을 쉴새없이 하면서 조바심을 그대로 드러냈고, 세 명의 아빠들은 오랜 시간 잘 익혀온 양육의 고민과 빛나는 노하우를 꺼내 놓았다.
“군대에서 전투복 입고 잠드는 것과 마찬가지”
“지구가 애를 중심으로 돈다.”
“쓰레기봉투가 떨어지니까 더 이상 못 참겠더라고요. 집에 쓰레기가 쌓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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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회 활동가들이 끼어들 틈도 주지 않고, 쉬는 시간 없이 3시간동안 이어진 수다회는 이렇듯 가슴 아픈 명언들을 남겼다(자세한 내용은 민우회 홈페이지에 시리즈로 게재된다).
이 날 내가 깨달은 것은 경험이 없어서 두렵고 서툰 것도, 우울증에 걸리는 것도, 아이와 소통하면서 공감 능력을 키워가는 것도, 또 그걸 수다 떨며 나누고 싶어 하는 것도 남성과 여성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돌봄’ 감수성이 여성만이 갖고 있는 자원은 아니라는 것이다.
“남자들은 안 바뀌니 여자들이 남자들과 싸워서 쟁취할 수밖에 없다”는 한 아빠의 말씀도 일리가 있지만, 이런 훌륭한 아빠들의 기운이 널리 널리 퍼질 때 다른 아빠들의 마음도 동하고 그들도 용기를 내 볼 수 있지 않을까? 1%의 남성 육아휴직자들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이들의 네트워킹을 지원하는 것이 남성들의 ‘돌봄’나눔을 확산하는데 있어 민우회가 해야 할 역할이 아닐까 생각된다.
국가와 기업이 책임지도록, 그 시작을 지금부터
물론 고민은 남아 있다. 아빠가 돌봄을 나눈다고 해도 그건 개별 가족 안의 분담일 뿐이며, 사회적 비용이나 책임은 늘어나지 않는다. 국공립보육시설을 줄이고 ‘아이돌보미’서비스를 축소하면서, 퍼플잡 같은 정책으로 불안정한 여성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저 無뇌정부는, 또 기업문화는 어쩔꼬? 양육에 참여하는 남성이 늘어날수록 그들 스스로가 제도의 변화를 절실히 원할 것이며 법·제도·문화를 변화시키는 주체가 될 거라는, 올해 민우회의 사업이 그 디딤돌이 될 거라는 기대. 이거 너무 아름다운 그림이 아닐는지? 후후~
어쨌거나 우리 노동팀 파이팅!!! 우짜짜짜~~~
나랑 @narang1917 ● 콩나물처럼 끝까지 익힌 마음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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