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8월호 [나의삶,나의이야기]여성주의 의사가 되겠다던 야심찬 결심
[나의 삶, 나의 이야기]
여성주의 의사가 되겠다던 야심찬 결심
무영 ● 한국여성민우회 회원
여성들이 직접 출자하고 함께 운영하는 우리 동네 병원, 나와 이웃이 서로 돌보며 건강을 지키는 생활 공동체, 여성주의 의료생협을 준비 중이다. 전문의가 된 후, 조합원들이 인준해주신다면 생협 의원에서 일할 포부도 가득 있다.
나는 성폭력 사건 해결을 지원하는 여성주의 의사가 되겠다며 야심차게 다니던 공대를 접고 의대에 다시 입학했었다. 산부인과나 정신과를 하면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마음 둔 적이 있었고, 의대 중반 즈음엔 법의학을 다룬 만화와 드라마에 빠져 성범죄 전문 법의학자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적도 있었다. 강간살해범들 용서할 수 없다며 지도교수님께 부탁드려 청운을 품고 찾아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실습 첫날, 남자 친구에게 토막살해 당한 여성의 사체를 보았고, 분노를 삭일 수 없었으나 평생을 그렇게 살 수도 없을 것 같던, 그 하루만에, 법의학은 포기했다. 지금은 정신과도 산부인과도 법의학과도 아닌, 가정의학과 (Family & Community medicine) 전공의 2년차 중반을 넘기고 있는 중이다.
내가 가정의학과 전공의라고 소개하면, 그 과는 대체 무얼 하는 과인지 많이들 궁금해하신다. 가정의학과는 다른 전문과에서 보는 질환 중에서 지역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걸리는 질환들을 주로 보는 과인데, 현대의학이 너무 전문화/세분화되다 보니, 일반적인 질환을 보는 과가 없고, 질환이 아닌 사람을 전인적으로 보는 과가 없어 생기게 된 과이다. 그래서 ‘전공의’이기는 하지만, 전공과목은 뚜렷이 없는 셈으로, 이과 저과 떠돌아다니며 일하면서 내게 필요한 것들을 직접 찾아 배워야 한다.
얼마 전에는 성폭력/가정폭력 ONE STOP 센터에서 피해자 여성들을 진찰하고 검진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고, 그 일과 관련해서 경찰서에서 조사도 받았다. 야간에 센터를 방문한 피해자들을 검진하고 증거 채취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는데, 내가 담당했던 피해자의 사건이 검찰까지 올라갔던 것이고, 담당 검사가 “초진한 의사의 진술이 결정적일 것 같으니 참고인 조사를 하도록 하라”는 수사 지휘를 내려주어, 고맙게도 경찰에서 나를 참고인 수사를 위해 불렀던 것이다. 바빠 죽겠는데 경찰서로 오라 가라 하는데도 담당 검사의 수사 지휘가 고맙다고 느껴졌던 이유는, 피해자의 여러 가지 상황 때문이었다. 피해자는 술집을 경영하는 여성이었고, 가해 남성과 원래 알고 지내던 사이였고, 그날 룸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중 강간을 당했던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 ‘화간이니 강간이니’ 하는 말도 되지 않는 싸움에 휘말려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담당 형사에게 “형사님 생각은 어떠시냐”고 물었다. 그는 반반인 것 같다고 대답했다. 강간일 것 같기도 하고, 처음 시작은 화간인데 폭행이 있었다보니 피해자가 말을 바꿨을 수도 있다는 거였다. 이것이 무슨 수사하는 사람의 태도란 말인가. 짜증이 났지만, 나는 ‘객관적인(!) 전문가’ 행세를 하기로 작정했다. 다행히 나는 그날과 그 피해자를 기억하고 있었고, 담당 형사 앞에 놓인 여러 장의 사진들이 나의 기억을 분명히 일깨워주었다. 그 사진들은 그날 응급실에서 내가 ONE STOP 센터의 직원분과 함께 피해자의 몸 구석구석 조금이라도 상처가 있는 곳이면 다 찍어놓았던 것들이었다.
한때 성범죄 전문 법의학자를 꿈꾸었던 나는, 여기서 어떻게 말을 잘해야 피해자에게 유리한(적어도 불리하지 않은) 상황이 될까 생각했다. 낮은 목소리로, TV에서 보았던 CSI 대원들의 말투를 흉내내며, 사진에서 보이는 상흔들이 어떻게 하다가 생긴 것인지 설명했다. 상흔의 위치로 보아 당시 가해자와 피해자의 자세는 어떠했을지 그림을 그려 보여주었고, 마치 우리 의사라는 종족들은 상흔 위치만 보고도 범죄를 재구성해낼 수 있는 무슨 전문적인 교육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능청스럽게 말했다. 이 연기에는 예전에 읽었던 ‘여검시관 히카루’, ‘법의학자 사요코’ 등의 만화 속 일화들이 이용되었다. 그리고는 당시 피해자의 의식 상태와 술에 취한 정도, 술에서 깨어날 때의 모습 등등을 종합해서 “법의학적 소견으로 보았을 때 ‘강간일 가능성이 훨씬 높으며’, 분명 피해자가 술에 취한 상태이기는 했으나 폭행에 의해 의식을 잃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보여진다”고 대답했다. 나는, 담당 형사가 내 말을 단어 하나 다르지 않게 잘 타이핑하도록 하기 위해서. 같은 문장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말했고, ‘법의학’이라는 단어를 힘주어 발음했다. 담당 형사는, 내가 상흔의 위치와 강도를 들먹이며 이번 사건은 폭행에 뒤이은 강간 사건이라고 말했을 때, 내 판단을 받아들이는 표정이었다. 적어도 가능성이 반반이라고 얘기하던 때와는 달라져 있었다(고 확신했다). 이 정도면 경찰서에 오는 데까지 들었던 택시비 2만원이 아깝지 않아(라고 생각했다).
2시간에 걸친 참고인 조사가 끝나고, 경찰서를 빠져나오면서 나는 몇 가지가 짐작되어 씁쓸했다. 페미니스트 의사라고 나를 커밍아웃하는 것보다 객관적인 전문가인 척하는 태도가 사건의 재판 과정에서 더 도움이 될 거라는 점과, 저 담당 형사는 나한테 친절하게 대했던 것만큼은 피해자에게 친절하지 않았을 거라는 점… 그런 것들이 짐작되었다. 씁쓸한 감정과 함께 처음 성폭력 피해자를 위해 일하는 의사를 꿈꾸며 의대에 입학할 때가 떠올랐다. 나는 이런 걸 꿈꾸었던 게 아닌가? 막상 닥치니 뭔가 어색하고 씁쓸하다. 학생 때의 나는, 여성 단체에서 일할 때의 나는, 피해자의 곁에서 싸우고 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객관적인 체하고 있다니.
그래도 몇 가지 고마운 점은, 내가 의대에 처음 진학할 때의 그 마음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것과, 응급실에 왔던 모든 환자나 피해자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피해자만은 유독 잘 기억하고 있었던 것과, 담당 검사가 어찌 알고 경찰에게 하필이면 초진 의사인 나를 불러 조사를 하라고 지휘를 한 것과, 연이은 당직에 조사받으러 나가기 힘든 상황이었는데도 기꺼이 당직을 대신해준 동료가 있었던 것과, 그녀, 그 피해자가 여러 가지 불리한 상황에서도 꿋꿋이 재판을 지속해가고 있다는 것과, 성폭력 사건들이 경찰 수사 과정으로 쉽게 넘어갈 수 있도록 ONE STOP 센터가 여러 도시에 운영되고 있다는 것.
무영 ●
내 전공을 내가 정하고 알아서 배워나가야 하는 가정의학과 전공의 2년차로,
여성주의 의료생협(준) 활동가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들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 노력 중이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