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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8월호 [기획_여행]와 여름이다. 떠나자, 바다로
[기획_여행]
와 여름이다. 떠나자, 바다로
- 발목 잡는 그것들은 대체!
오디 ●
시원한 해변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이제 바다에 갈 마음의 준비, ‘휴가계’ 작성만 하면 끝이다!
……라고 외칠 수……………… 없다………………
다음 주에 여름휴가로 유럽여행을 떠나는 회사동료. 그녀가 수시로 체크하는 것은 여행가서 입을 옷, 면세점에서 쇼핑할 것들, 그리고 사진기를 점검하는 정도? 보아하니 여행 갈 장소에 대한 배경지식은 제대로 못 챙긴듯하다(과장된 해석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정말이지 그렇게 보였다). 요즘, 포털사이트 메인뉴스에선 여행과 패션을 키워드로 한 기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올 여름 휴가 패션”, “올 여름 이것만은 장만하자”, “여성의 여름철 필수화장품” 등등. 적어도 이 중에 하나는 갖추고 가야 시대에 뒤떨어지는 ‘촌X’ 취급 받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된다. 선두를 달리는 패셔니스타는 아니더라도 루저(loser)는 되지 말아야지. 아, 왜 해마다 유행하는 비치슈즈도 이렇게 바뀌는 걸까? 이래저래 또 돈이 나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각종 광고의 쓰나미를 겪으며, 이미 난 뜨거운 바닷물에 한번 빠졌다 나온 기분을 느낀다.
넓은 챙이 달린 밀짚모자. 선크림 그리고 살랑한 옷가지들. 정녕 이것만 챙기면 되는 거야?
이런! 결정적으로 제모를 안했다. ‘비키니 라인’ 전부를 관리 받긴 너무 비싸지만 적어도 겨드랑이는 손을 봐야지. 인터넷에 겨털1 제모 클리닉을 검색해 본다. 올해는 전문가의 손길을 빌려볼까? 하지만 비용도 많이 들고 아프다고도 하니까 그냥 제모크림으로 만족하자. 오케이!
그런데 왜 여자만 제모를 하는 걸까? 좀 억울하다(억울하단 말로 다 표현되는 감정인지 잘 모르겠으나). 원래 털은 연약한 피부를 보호하려고 자라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머리, 눈썹, 겨드랑이, 사타구니 등 중요하면서도 연약한 곳을 털이 보호해주는 것일 텐데, 왜 여자들은 이 보호막을 밀어내는 것일까. 이 문화는 언제 생긴 것일까. 갑자기 ‘겨털 제모의 역사를 탐구해볼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2007년 개봉작 영화 <색. 계>2의 탕웨이는 제모를 안했다. 시간이 다소 지난, 소위 ‘옛날’광고나 포스터에서서 제모하지 않은 여배우들을 찾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당시엔 그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쳇! 입이 댓 발 나와서는 불현듯 과감한 비키니에, 제모하지 않은 몸으로 바닷가에 우르르 놀러 가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한다. “체지방과 털이 바다를 오염시키는 거 아니잖아요!” 라고 외치면서. 하지만 이런 불평을 한가득 쏟아내면서도 결국, 샤워를 하며 비누칠을 쓰윽 쓰윽. 일회용 면도기를 꺼내 면도를 하는 내 모습을 본다.
몇 년째 이 맘 때면 같은 고민_ 겨털에서 이젠 비키니 라인으로
비키니를 사긴 했지만 절대 ‘이것’만 입을 순 없다. 비키니와 군살을 가려줄 얇은 긴팔망사티를 살 것이다. 올해도 다이어트는 실패다. 그냥 휴가 떠나기 며칠 전부터, 소식(素食)을 통한 순간적 핼쑥함(?)을 준비해야겠다.
여행은 자기 맘이니까, 어떤 식으로 가던지 상관할 바는 아니다. 허나 (나를 포함한) 그녀들의 행동이 자의가 아닌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그러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때 속이 상한다. 물론 그 시선도 하나의 즐거움이라면 할 말이 없다. 허나 사실, 정말 솔직히 말해서 그게 ‘내 즐거움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코미디프로의 한 코너에서, “여자 친구와 해변에 갔는데 여자 친구의 살이 수영복 여기저기를, 배뿐만 아니라 옆구리, 요기, 요기를 다~ ‘먹었’더라고요”라는 남자 코미디언의 말에 방청객들은 폭소하던 것을 본 적이 있다. 살 찐 여자들, 겨드랑이에 털이 수북한 여자들의 모습이 코미디와 풍자로 회자되는 현실에서, 겨털을 기르거나 제모를 하거나 뚱뚱한 몸으로 비키니를 입거나 365일 다이어트를 통해 갖게 된 마른 몸 비키니를 입거나 하는 것이 개인의 선택이 될 수 있을까? 그게 과연 개인의 취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웃어 재끼는 사람들을 무시하며 뚱뚱한 몸으로 비키니를 입고 겨털을 기른 채 바다에 갈 것을 선택하기가 쉽겠느냐는 것이다. 차라리 여성의 체지방이 바다를 오염시킨다고 했으면 좋겠다. 무슨 이유로 ‘피서지에 알맞은 몸매’가 정해졌는지 모르겠다. 왜 TV에서 비춰지는 해변의 여인들은 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 똑같은 몸매를 가졌는지 정말 모르겠다. 아… 다소 발끈했다보다. 숨이 차오를 듯이 자판을 두들겨댔다. 바닷가 한번 놀러가기가 이렇게 어려울쏘냐.
여하튼, 신경은 많이 썼지만 역시나(?) 날씬한 몸매보다 술을 탐닉했던 덕에 작년과 똑같은 몸매로 바닷가를 찾게 될 것 같다. 이제 출발하나 싶었지만 가기 전, 역시나 매년 그래왔듯이 부모님은 재차 당부를 할 것이다. 첫째도 조심, 둘째도 조심, 셋째도 조심이다. 물 조심이냐고? No, 사람 조심이다. 이 맘 때면 방송에서는 어김없이 피서지의 사건사고가 보도된다. 사실, 어디서든 사고가 나긴 마찬가지잖아? 굳이 피서지에서만 조심한다고 될 일이야? 라고 애써 생각하고 싶지만, 여자끼리 가는 여행은 아무래도 쉬이 표적이 될까봐 겁난다. 핫팬츠를 입고 싶은 욕망과, 몸을 조심해야 한다는 두 가지 고민이 충돌한다(여전히 여성의 복장은 욕정을 불러일으킨다고 어찌나 떠들어대는지…) 요즘 성폭행범에 대해 화학적거세를 시킨다거나 전자팔찌를 채운다는 따위의 말도 많지만, 그런 게 생긴다고 해서 여자들끼리의 여행에 있어 안심이 되진 않을 것이다. 그냥 단순하게 안전하고 믿을만한 여성전용 숙박시설 등이 확충되면 좋겠다. 여행 가서 그동안 쌓인 피로를 풀고 훌훌 털고 오고 싶지만, 늘 조심함을 마음속에 담고 가야한다는 것이 아쉬우니까.
이래저래 여성이 여행을 떠나기까지 발목을 잡는 요소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비혼, 소위 ‘처녀’라서 이런 고민을 하는 거라고? 결혼하고 애가 생기면 달라질까. 그 때는 비록 비키니에 대한 고민은 ‘덜’ 할지라도(‘더’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고민이 생길 것이다. 아이 유치원 방학이 곧 내 휴가일이 될 테고, 그렇지 않으려면 아이를 맡길 곳을 찾아야하고, 이런 저런 궁리를 하다가 결국 ‘올 여름은 방콕이다~’를 하기 십상이니까. 이렇게 여름휴가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그냥 가지 않는 게 더 속편하겠단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아직 이 모든 것을 쿨하게 제쳐 두지 못하는 무늬만 여성주의자이기 때문에 불만만 많을 뿐이다.
흑흑. 결국 여행 가기 전, 잡다한 것들에 신경과 돈을 다 소비해버렸다. 매 여름마다 이렇다. 내년에도 똑같은 고민을 하겠지? 뭔가 애초의 여행을 꿈꾸던 내 마음은 흐릿해진 기분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 그냥 인생이 이런 건가보다 하고 만다. 그냥 여자로 태어나서 받은 축복이려니(?) 한다. 아…….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쉬이 위안이 되지 않는다. 그냥, 확 단체로 비키니 입고 완벽한 No!제모 차림으로 피서지 점령이나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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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겨드랑이 털. 흔하게 ‘겨털’이라 줄여 부른다.
2 이안 감독의 <색, 계 色, 戒: Lust, Caution, 2007> 여주인공 탕웨이의 켜털이 유난히도 눈에 띄었다. 낯설지만 어색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오디 ● 당당함 부족; ‘Shall we?’ 만 외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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