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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8월호 [민우칼럼_창]마음의 중심을 흔드는 그런 전략
[민우칼럼 창]
마음의 중심을 흔드는 그런 전략
장지연 ● 한국여성민우회 정책위원
일본의 파견노동자 중 상당수는 단신노동자로서 파견회사를 통해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일자리를 잃으면서 기숙사도 잃었다. |
얼마 전 일본의 고용안전망 제도의 특징과 적용실태를 조사하려는 목적으로 도쿄에 다녀왔다. 일본은 사회보장체계라는 측면에서 우리가 본받고 싶은 모델은 아니지만, 당면한 과제가 유사할 때가 많고, 현실적 제약 면에서도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는 경우가 많아 자주 제도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다. 이번 연구의 관심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실직에 대처하는 고용안전망이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본도 최근 비정규직 노동자가 확대되는 추세에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기간제 고용이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데 비해 일본은 파견근로자가 가장 큰 문제로 떠올랐다는 점이 차이점이었을 뿐이다(파견근로는 기간제이면서 간접고용이기 때문에 더 열악한 고용형태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파견이 전면적으로 허용되었더라면 비정규직문제는 더욱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우리 사회와 근본적으로 다를 바는 없었지만,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사회의 대응방식에는 뭔가 부러운 것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제조업 파견을 다시 금지하는 방식으로 파견법의 재개정에 들어갔고,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실직자를 위하여 ‘제2안전망’ 정책을 도입하였으며, 이를 영구적인 제도로 안착시키기 위한 법제화를 준비하고 있다. 논의 중인 새 파견법은 몇 가지 측면에서 여전히 한계가 있고, ‘제2안전망’도 급하게 만들어진 정책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풍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던 길에서 멈추어 서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넘어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비정규직이라면 기혼여성의 파트타임근로를 떠올리던 일본에서, 2002년 근로자파견이 모든 업종에서 허용되게 되었을 때, 실은 그 때 이미 빗장은 풀린 것이었고 경기가 악화되었을 때 여기서부터 문제가 터져 나오는 것은 예견된 상황이었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본을 강타하자 기업들은 파견노동자부터 해고하기 시작하였다. 여기까지는 우리나라와 다를 것이 전혀 없다. 비정규직 근로의 유형이 조금 달랐을 뿐, 우리나라도 이 시기에 여성과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종사자의 일자리가 급속히 사라져가는 똑같은 경험을 하고 있었다. 딱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었는데, 일본의 파견노동자 중 상당수는 단신노동자로서 파견회사를 통해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일자리를 잃으면서 기숙사도 잃었다.
갈 곳을 잃고 거리를 떠도는 실직자가 하나 둘씩 늘어났다. 날은 추워지고 명절은 다가오고……. ‘반빈곤네트워크’를 비롯한 시민사회운동단체들은 도쿄 중심가 히비야 공원에 ‘해넘이 파견촌’을 열었다. 당시 히비야 공원에서 해를 넘겼던 실직한 파견근로자는 500명 정도였지만, 그들이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강력했다. 그들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실직은 빈곤과 노숙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내가 가장 감탄해마지않는 부분은 고풍스런 도심의 공원에 이들을 결집시켜 사회문제를 ‘가시화’한 사회운동진영의 전략에 있다. 뒷이야기를 들어보니 파견노조 위원장과 반빈곤네트워크의 리더 몇몇 사람이 걱정하면서 술 마시다가 퍼뜩 떠올라서 실행에 옮긴 것이라고는 하지만, 어찌되었건 당사자들을 만나보니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대응이 주는 감동이 전해지는 듯했다. 물론 어지간한 일에는 별로 놀라지도 않는 우리 사회에서 똑같은 전략을 폈다면 과연 성공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문제를 드러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한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겠다는 반성을 안고 돌아왔다.
실직한 사람은 다른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실업급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가난하지만 일을 할 형편도 잘 안 되는 사람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제도의 사이에는 ‘구멍’이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적당치 않을 정도로 정말이지 커다란 갭이 존재한다. 실직한 비정규직 노동자와 영세업체 종사자, 자영업자, 그리고 처음 일자리를 찾아나서는 청년층과 출산 후 노동시장을 기웃거릴 수밖에 없는 기혼여성. 제도적으로 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들에게 사회보장소득과 일자리 알선이 제공되어야한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분명히 이런 요구와 필요성은 있는데, 흩어져있는 개인들은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아마도 이런 걸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정부가 먼저 알아서 추진하리라는 기대는 난망이라는 것도 분명하다. 이런 사회문제를 가시화하는 역할을 민우회가 해 주었으면 좋겠다. 눈이 번쩍 뜨이고 마음의 중심을 흔드는 그런 전략을 찾아 주십사 부탁드린다.
장지연(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
국민세금으로 월급 받으며 연구하는 사람의 역할은 무엇인지 요즘 생각이 많다. 이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떠들어줄 사람들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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