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er board list icon](/assets/common/header-board-list-icon-871ea5b4968af0aff7ac9000984dc947.png)
2010년 7*8월호 [민우ing]‘낙태고발조치’, 그리고 몇 개월이 흘렀다
[민우ing]
‘낙태고발조치’, 그리고 몇 개월이 흘렀다
김희영(꼬깜) ●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
경찰서에서 ‘그녀’를 만났다
늦은 오후 민우회로 온 전화 한통을 받았다. “낙태죄로 남자친구에게 고소당했어요.” 예상했던 일이 터졌군. 심장박동수가 빨라진다. 바로 다음 날,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으러 오라고 했단다. 민우회 내부에서 논의해보고 연락 주겠다며 전화를 끊고 급하게 회의를 진행했다. 활동가 2명이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 급하게 내려간 지방 경찰서 앞에서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 이모를 만났다. 분노가 가득 찬 어머니가 정황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다. “혼인까지 약속했는데 파혼 했어요. 우리 입장에서는 당연히 낙태해야 한다고 얘기했더니 그 쪽 집안은 종교적인 이유로 절대 낙태할 수 없다고…(중략) 자기들이 키워줄 테니 낳아야 한다고 하고. 결국 동의 못 받고 딸애랑 같이 병원 가서 시술 받았어요. 시술 받은 거 알고 남자애가 낙태죄로 딸과 저를 고소했어요.” 여성이 수만 가지 이유로 결정한 ‘낙태’의 과정을 경찰 앞에서 담담하게 털어 놓는다. 성관계부터 연애, 결혼, 집안과의 관계 등 가장 사적인 이야기부터 병원 위치, 의사의 생김새까지. 기소가 결정되기까지는 약 2개월이 남았단다. 이제 낙태하면 경찰서에 갈 수 있는 상황이 온 것이다. 물론 여자만.
단속과 캠페인? 보건복지부의 저열한 정책
이 상황에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정책*은 기가 막혔다. 기존에 진행되고 있는 정책 외에 주요 내용이, 생명 존중을 위한 사회분위기 조성, 낙태시술기관 신고센터 마련 등 단속은 강화하고 철저히 개개인의 의식으로 낙태율을 낮추겠단다. 이미 처벌 분위기 확산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고발조치 직전까지도 낙태는 공공연하게 ‘합법적’이었다. ‘저출산’이라는 국가가 당면한 인구학적 현실과 낙태 처벌 강화 흐름은 불쾌하게 연결되어 있다. 언제든 인구가 많아지면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느니 하는 대한뉴스는 세련되게 포장되어 다시 TV광고에 등장할 것이다. 보건복지부 장관이라는 사람은 낙태율만 낮춰도 출산율이 오를 것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고 지껄인다. 생명을 중시하지 않는 문화를 낙태의 원인으로 찾고 있는 보건복지부의 정책은 오히려 무정책보다 못한 발상이다. 처벌은 강화되고 있는데 정부 정책은 단속과 생명 중시 캠페인이라니. 참나. 보고만 있을 수 있나.
‘낙태’, 인권의 이름으로
민우회에는 고민이 있었으니 그것은 ‘낙태고발정국’으로 인해 발생되는 여성인권침해 상황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기로 한 계획에서였다. 정작 ‘당사자’가 나타나지 않는 상황. 올 해 2월부터 시작된 낙태고발조치 이후 직접적으로 원정 낙태, 음성적인 시술을 받아서 본인의 안전이나 몸에 침해 받은 사례를 찾기 위해 상담 창구를 2개월 간 열었다. 하지만 급박한 상황 속에서 온라인으로 홍보한다고 수면 아래 여성들의 현실을 만나는 것은 어려웠다. 민우회는 2월부터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시술 가능한 병원 문의, 비혼으로 출산과 낙태 사이에서 겪고 있는 고민, 그 외에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는 심리적인 고통 등 다양한 상황에 처한 여성들의 상담 전화를 받고 있다. 상담을 받으면서 더더욱 당사자로 드러낼 수 없는 필연적인 이유를 느끼고 있다. 침묵은 거대하게 강요되고 있었다. 정작 주변 사람들에게 조차 알려질까 두려운 낙태경험을 국가를 상대로 진정하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오랜 논의 끝에 민우회를 진정인으로, 보건복지부를 피진정인으로 인권위 진정을 진행하기로 했다. 생명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희한한 구도 속에서 ‘인권’이란 단어는 삭제되어 있었다. 할머니 낙태할 적에 산을 굴렀다느니, 뜨거운 메밀묵을 먹어 아이를 떼려고 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이제는 더 이상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처벌이 강화되고 시술비가 높아질수록 여성의 안전은 위협될 수밖에 없다. 수많은 나라에서 낙태 처벌이 강화될수록 낙태율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음성적인 시술을 받다가 사망했다. 낙태를 범죄화하고 불법화할수록 여성들은 낙태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어두운 곳에서 음성화된 시술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낙태가 불가피한 결정이며 끝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삶의 문제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인권위 진정을 통해 보건복지부 정책의 여성인권침해에 대한 판단을 요구하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의견서를 제출하여 정책적 대안과 법개정의 필요에 대해서도 제안할 예정이다.
알려내기, 힘을 내서
‘낙태’이슈를 맡게 되면서 언론사 인터뷰를 많이 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최후에 한결같이 묻는 질문은, “(낙태에 관해서)왜 프로라이프 입장은 간단한데 여성단체 의견은 이렇게 복잡한가요?”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궁금하기도 하겠다. ‘낙태는 생명(태아)을 살해하는 것이므로 근절되어야 한다’는 프로라이프 입장은 지나칠 만큼 간단하고 명쾌하다. 그 명쾌함이 부럽지 않은 이유는 이미 낙태 자체가 그렇듯, ‘낙태논쟁’ 자체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낙태는 끊임없이 논쟁을 위한 논쟁 속에 결박되어 있었다. 윤리시간에 등장하는 찬반구도라는 우아한 사슬에 묶여 있었다. 이것은 삶의 문제이자 젠더의, 계급의, 관계의, 사회적 인프라의 문제이다. 정책적 대안을 요구하고 비판하는 것과 더불어 지나치게 ‘여성문제’로만 인식된 초점을 옮기기 위해 남성 집담회를 진행하여 피임과 낙태 경험 시 남성들의 지침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눌 예정이다. 낙태를 둘러싼 수많은 편견과 오해와 고민의 물길을 다르게 내기 위한 활동, 지지든 질타든 무한 관심 가져주시길!^-^
----------------------------
* “2010 불법인공임신중절예방 종합계획”, 보건복지부, 2010. 2.
꼬깜 ●
민우회 회원 ‘물결’이 말해줬다. 사건과 사고는 본질적으로 다르단다.
사고가 ‘처리’하는 것이라면 사건은 ‘해석’하는 것이란다.
낙태는 보통 사고라고 여기지만 이것이야말로 ‘사건’이다.
개인들의 관계 안에서든, 이 사회 전체 안에서든.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