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8월호 [민우ing]모두가 알고 있는, 그러나 잘 알지 못하는 식당여성노동자의 이야기
[민우ing]
모두가 알고 있는, 그러나 잘 알지 못하는
식당여성노동자의 이야기
정슬아(여경鏡) ●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
전화벨이 울린다
요즘 민우회 사무실로 걸려오는 전화 중 적지 않은 부분은 인권길잡이* 배송을 문의하는 전화다. 민우회 홈페이지와 온라인소식지, [한겨례21] 등에 실린 기사를 보고 전화를 주신 분들 중엔 스위스에 살고 계신 분도 있었다. 한국에 있는 엄마에게 전해드리고 싶다고 했다. 어떤 이는 우연히 들른 생협매장에서 보았다는 말을 전했고, 또 어떤 이는 부산전철 4번째 칸 의자에(대체 어떻게 거기까지 가있었는지 모르지만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덩그러니 놓여 있던 책자를 보고 전화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식당여성노동자 그리고 그녀의 언니 혹은 동생, 자녀들이 준 전화로 그렇게 그렇게 인권길잡이는 전국에 걸쳐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에게로 갔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보내주시는 큰 관심에 대중과 함께하는 운동이 얼마나 즐거운지를 새삼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직접만나는 건 너무 어려워. 하지만!
연초부터 몇 번의 본부-지부 회의에서 나눈 사업진행과 관련한 힘듦은 식당여성노동자들을 직접 만나는 것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직접 만나는 것은 밥을 먹으러 가서 혼자 빤히- 바라보며 하는 외사랑 말고, 서로 눈도 마주치며 이야기에 맞장구도 치며 길게 함께하는 수다를 말한다.) 퇴근시간도 늦고, 퇴근 후 해야 할 집안일이 산더미인데 왜 하는지도 모를 인터뷰가 반가울 리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힘들다하고 주저앉을 우리가 아니기에 본부-지부 각각의 방법으로 만남을 시도하고 있다. 거리에서 시민들과 ‘인권 밥상차리기’를 하며 인권적인 노동환경은 무엇일지 함께 고민하고, 식당여성노동자들에게 싫은 소리도 들어가며 어렵게 촬영한 영상을 편집해 상영회를 준비하기도 하고, 긴장한 나머지 인터뷰를 하러간 활동가가 맥주에 얼굴이 불그레해지기도 하고, 너무나 씩씩한 그녀에게 인터뷰를 리드(?) 당하기도 하고, 퇴근시간 맞춰 새벽녘에 눈비비고 일어나 이야기를 나누러 나서기도 했다. 그렇게 만난 이들과의 에피소드는 민우회 홈페이지와 블로그(민우트러블)에서 전해지고 있으니 꼭 챙겨보면 좋겠다.
우선, 간단하게나마 요약해서 전하자면 이런 내용들이었다.
사실 여성들이 돈을 벌어야하는 상황에 갑작스레 처했을 때, 가장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식당일 아니겠냐던 이야기. 하루 열 두 시간을 넘게 일하지만 월급은 백만 원을 겨우 넘고, 한 달에 두세 번을 쉬면 다행이라 던 한숨이 섞인 이야기. 쉴 틈 없이 울려대는 ‘딩동’하는 벨소리에 ‘우리는 번호가 아니지 않냐’던 식당여성노동자의 이야기. 학교 갔다 돌아오는 아이들을 위해 등하교시간엔 집에 있어야해 새벽을 꼴딱 새며 일을 할 수밖에 없다던 이야기. 몇 십 년을 식당에서 일했지만 그동안 오른 임금은 2~30만원이 고작이라던 이야기. 돈 5천원에 하인 부리듯이 술을 따르라는 둥의 시중을 들게 하는 소위 진상손님 때문에 상처받은 이야기. 열심히 일하고 집에 돌아가면 쌓여있는 집안일에 또 다시 같은 일의 반복인 현실이 갑갑하다던 이야기. 맛있게 잘 먹었다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살기위해 일하는 것인데 자식들한텐 매일 미안한 마음에 대한 이야기. 모두들 ‘싹싹녀’를 원하지만 그렇게 생겨먹지 못한 나는 할 수없이 쌈닭이 되어, 왜 모두 ‘싹싹녀’를 원하는지 따지고 들었던 것에 대한 이야기. ‘아줌마, 여기요, 이모, 고모’ 등으로 불리지만 사실 ‘내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던 이야기. 혹은 무엇이라 부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부르는 태도와 억양에 기분이 나빠지기도 한다던 이야기. |
이렇게 많은 숨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녀들과의 만남. 향후엔 이들 몇몇이 모여 진상손님, 사장, 열악한 상황 등을 질겅질겅 씹으며 공감하고, 서로 위로받는 자리를 마련하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일지 그 안에 어떤 말들이 오고갈지 모르겠지만. 기대하시라. 모두가 알고 있는 식당여성노동자의 모두가 모르던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 터이니.
모두가 알고 있는 식당여성노동자의, 모두가 모르던 이야기
다수의 중년여성들이(아니 그 보다 다양한 연령층) 종사하고 있는 장시간, 저임금, 법의 사각지대인 노동조건들이 둘러싼 이 ‘식당일’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식당아줌마’는 주변에 늘 존재해 인지하고 있지만 ‘식당아줌마의 노동’과 관련한 이야기는 자세히는 모르는, 혹은 알 필요없는 이야기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이들의 노동에 함께 주목할 때라고, 그리고 진짜 ‘맛있는 노동!’이 될 수 있도록 함께 그 밥을 지어보자고 이야기하고 싶다. 나의 배를 부르게 하는 따수운 밥 한 끼가 만들어지기까지의 노동조건과 환경이 얼마나 인권적이었느냐에 관심 갖는 것은 내가 먹는 밥을 진짜 ‘맛있게’ 만들 수 있는 힘이 된다. 식당에서 서비스를 받는 나(고객)는 식당여성노동자의 노동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고객에 의한 성희롱, 고객에 의한 인격무시, 반말, 스스로 정말 왕이라고 생각하는 고객, 셀프도 제 손으로 하지 않으려는 고객, 조금만 늦어도 신경질적으로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벨소리… 식당은 내가 언제든 먹을 수 있도록 당연히 365일 문을 열고, 24시간 문이 열려있으면 더 땡큐!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러한 행동과 생각들이 변하기 시작한다면 인권적인 노동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반기에는 이러한 관심과 액션들이 구체적인 실천을 담은 캠페인으로 만들어갈 것을 계획하고 있다. 당신이 식당여성노동자이든, 사장님이든, 손님이든 식당이 있어 밥 먹고 사는 것은 다 똑같지 않은가. 그러니 이제 진짜 힘을 모아 만들어 가보자.
[함께 짓는 맛있는 노동!]이 있는 그 공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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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말하는 ‘인권길잡이’는 민우회 본부-지부 공동사업 식당여성노동자의 인권적 노동환경 만들기 “함께 짓는 맛있는 노동!”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한 작은 책자 『식당여성노동자의 인권길잡이_함께 짓는 맛있는 노동!』을 말한다. 이는 식당여성노동자 스스로 고용환경을 점검해 보고 나의 하루를 그려 볼 수 있는 책이다. 나의 몸에 휴식을 주는 방법은 뭔지, 월급이 최저임금보다 많기는 한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근로계약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휴일이 이렇게 적어도 되는 건지, 일하다 아프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등 식당여성노동자들이 알고 있으면 좋은 간단한 정보들을 담고 있다. 현재 식당여성노동자분들에게 무료로 배포하고 있으며, 문의는 민우회 여성노동팀 02-737-5763으로 하면 된다.
여경鏡 ● 밥+술=밥 마신다. 아, 이번 주말에는 밥을 좀 마셔야겠다.
그리고 마음을 담아 전해야지. ‘덕분에’ 맛있게 잘-먹었다고! 히히.
간단한 것부터 시작해볼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의 시작은 식당여성노동자들의 ‘노동’을 인정하는 것일 수 있답니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있어요! 바로 ‘맛있는 쪽지’입니다.
맛있는 쪽지란 ‘덕분에’ 감사히 잘 먹었다는 인사와 인권길잡이에 대한 안내가 들어가 있는 녀석을 말합니다. 마음을 전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밥을 먹고 (나름) 가지런히 정리하고 ‘요 놈’이 쓰레기가 아님을 느낄 정도로 정돈을 한 후 살짝 놓고 나옵니다. 더 좋은 방법은 평소 단골식당에 가서 직접 슬쩍 전하는 것입니다. 쪽지를 전하기 전의 떨림(?), 전하고 나서의 눈빛교환, 나누었던 대화들을 전해주세요. 친구들과 함께 ‘식당여성노동자’의 노동환경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 해보는 것도 좋겠죠? 모두 인권적인 환경에서 지어진 맛있는 밥을 먹고 싶으리란 거 다 알고 있어요. 우리 이제 실천하기만 하면 됩니다. 간단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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