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10월호 [새로운 페이지] 걸어다니는 인간백화점? OK^^
[새로운 페이지] 걸어다니는 인간백화점? OK^^
- 치유하는 글쓰기를 안내하다
박미라 ● 치유하는 글쓰기를 안내하는 상담가
마음공부의 여정에서 만난 한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감정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가? 마음대로 할 수 없다면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다. 그러니 내 뜻대로 해보려고 너무 목숨 걸지 마라. 내 성격을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가? 바꿀 수 없다면 내 것이 아니다. 그러니 내 것인 양 책임감 느끼지 마라……”
나는 내 운명에 대해서 그랬다. 내 운명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어떤 성공한 이들은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노하우가 있는 것처럼 말한다. 노력하라. 최선을 다하라. 자기를 이기라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나를 이기지 못했고, 오히려 내 운명이 나를 이겼다. 나는 운명 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기독교 신자도 아니었는데 밤마다 성경 구절을 외며 내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 뜻대로 하지 말고, 당신 뜻대로 하소서.”
고등학교 때 국문학이나 연극학을 전공하기를 열렬히 희망했는데 이러저러한 이유로 포기해야 했다. 대학교에서는 여학생운동 했던 것이 인연이 되어 대학원을 여성학과로 지원했다. 국문학이나 연극 말고도 나의 가슴을 뛰게 한 게 있다면 그건 여성들에 대해 얘기할 때였기 때문이다. 대학원을 마치고 여성신문사 기자, 여성문화운동단체의 실무자로 활동하다가 페미니스트저널 이프의 편집장이 되었다. IT산업이 한창 번성할 때는 여성포털사이트의 컨텐츠 팀장이란 걸 하기도 했고, 여성리더십을 육성하는 리더십양성기관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리고 직장생활 15년 만에 나는 모든 사회적인 일을 접었다. 직장을 7~8번 옮겨 다닌 뒤였다. 남들은 이력이 화려하다, 그렇게 많은 직장을 옮기다니 능력이 좋다고 부러워했지만 정작 나는 깊은 패배감에 젖어 있었다. 고백하자면 그렇게 자주 직장을 옮긴 이유가 뭔가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포기하고 쫓겨 다닌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모든 것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한 분야에서 꾸준히 전문성을 쌓아 자타가 인정하는 전문가가 되는 것이 참 부러웠다. 그렇지만 그건 내 몫의 운명이 아니었던 것 같다. 어쨌든 6년 전쯤 마지막 직장을 그만두고는 한 달을 꼼짝없이 앓아누웠다. 건강상의 이유도 없이 말이다.
내가 직장에서 가장 견딜 수 없어 하는 것은 인간관계에서의 갈등이었다. 일은 재미있는데 갈등이 생기면 실망감이 너무 컸다. 여성운동을 한다면서, 휴머니즘이 기본이라면서 어쩌면 저렇게 이기적일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조직 내의 불화, 소통의 미숙, 무체계나 무질서, 리더가 보여주는 한계와 마주칠 때마다 몸과 마음이 너무 아팠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시선, 나의 편견에서 바라본 세상이었을 뿐이며, 나 또한 미숙하고 부족했으므로 조직 내의 갈등에 일익을 담당했다.
어쨌든 이런저런 고민을 안고 있는 내게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고민을 상담해왔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고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 선배나 리더의 책임이라고 생각했으므로 최선을 다해 그 일을 했다. 나와 상담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났다. 동료나 후배들, 혹은 상사의 고민을 들어주는 일이 낮 동안의 내 업무가 되어버렸고, 정작 내 일은 야근을 해서야 마쳤다. 내 몸은 피로로 지쳐갔다.
직장 일을 그만두면 내 희망과 행복도 끝나는 줄 알았는데 건강이 회복되자 의외로 마음의 희열이 찾아왔다. 어떤 책임감도, 어떤 명예도 가지고 있지 않은 자의 자유가 주는 기쁨이라고 할까. 누구도 아닌 나의 내면을 성찰하는 일이 행복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1년여를 보내고 있을 때 상담칼럼을 써보라며 글쓰기 치유 프로그램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오호! 이제야 뭔가 정말 나다운 것, 내 것이라고 할 만한 일들이 내게 주어지는 것 같았다.
당시만 해도 글쓰기치유란 것이 나조차 생소한 때라서 이런 걸로 돈을 받고 고객을 모을 수 있을까 회의하며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그런데 예상외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내 이름이 알려지기도 전에 다만 치유글쓰기라는 이름만으로 25명 정원에 100명 이상의 대기자가 생길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돌이켜보면 모든 경험에는 득과 실이 있는 것 같다. 심리적인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치열하고 집요하게 바닥까지 경험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의 성격은 나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들었지만 그 덕분에 현실에 대해 그리고 내가 만난 사람들에 대해 더 많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뿐인가. 어린 시절 가족관계에서 경험했던 아픔에서부터 결혼과 육아의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운동과 직장생활에서의 경험 모두가 하나도 버릴 것 없이 사람들과 만나는 데 소통의 도구가 되어주었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아이디어를 만들어주었다.
현재 나는 치유하는 글쓰기 안내자일 뿐 아니라 명상 안내자이기도 하다. 새로운 이력이 생기고 새로운 타이틀이 내게 부여될 때마다 얼마나 생경하고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페미니스트에서 치유하는 글쓰기를 안내하는 상담가, 그리고 명상안내자까지 매번 내가 나에게 적응하는 것이 너무 낯설다. 과거 직장을 그렇게 자주 옮겼듯이 지금도 나는 내 역할이 자주 변하는 걸 본다. 그러나 과거와 다른 게 있다. 과거엔 주어진 현실로부터 도망쳐 새로운 꿈을 꾸는 걸 반복했지만 지금은 주어진 역할을 받아들이며 거기에 또 다른 역할을 더하는 식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내가 애써 계획하고 노력하고 추진해서 얻은 것이 아니다. 그게 고통이었든 행복이었든, 저항이었든 회피였든 치열하게 살아내고 경험하다보니 운명이 나를 이곳까지 안내했다.
이렇게 가다가는 조만간 ‘걸어다니는 인간백화점’이란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만사 오케이!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더 깊은 성숙으로 나아가게 돕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기꺼이 하게 될 것이다.
박미라 ●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하고, 현재는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심신통합치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상태. <천만번 괜찮아>와 <치유하는 글쓰기>의 저자.
정기적으로 치유하는 글쓰기 워크숍을 열고 있으며,
명상여행이나 명상학교를 만들어 재미있고 편안한 명상을 안내하는 일을 모색하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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