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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10월호 [기 획 거울鏡; 비춰보기] 겨묻은 개가 똥묻은 개 나무라기
[기 획 거울鏡; 비춰보기]
겨묻은 개가 똥묻은 개 나무라기
-당신을 보는 나의 시선과 태도
이인화(이오) ●
맘보 : 공적으로 괜찮은 주위 사람이 사생활에서 너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일 때 내가 취할 수 있는 태도의 선택지는 뭘까?
잠보 : 그 사람이 자신에게 어떤 대상인가, 또 어떤 사생활이냐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그냥 데면데면한 사이, 혹은 그 사생활이 공적인 영역에 영향을 미치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당연히 어떤 식으로든 태도를 보여야 되지 않을지?
맘보 :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던 여자 친구가 이직해서 사무실을 떠나자마자 여자동료들에게 ‘추파’를 던져서 공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그 남자도 평소에 동료들 사이에선 ‘정의파’로 인정받았거든. 회사의 윗선이나 상사와 합리적인 협상을 곧잘 해서 동료들의 신임을 얻었고. 비단 이 사람 뿐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사람을 볼 때 “그/그녀는 이러이러한 사람” 식으로 좀 섣부른 판단을 해왔다는 생각이 들어.
잠보 : 결국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본다는 말이겠지. 그 사람에게도 여러 얼굴이 있을 수 있는데… 내가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데 타인을 어떻게 알겠어. 고정불변의 정체성을 지닌 인간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대체로’ 어떠한 사람이란 정도는 합의가능하지 않나 싶어. 물론 사람들이, 그리고 그들이 속한 현실의 상황이 간단치 않은 이유로 인해 그 ‘대체로’라는 판단 속에 많은 요소들이 고려되지 못하는 위험이 있겠지만.
맘보 : ‘…인 척’, ‘…한 척’하는 인간형이 더 나쁘다는 생각이 갈수록 더해. 대놓고 나랑 반대 입장이거나 적대적인 사람에 대해서는 조심할 수 있지만, 믿었다가 뒤통수 맞으면 상처가 너무 크잖아. 양식 있고 신사적인 듯 보이던 사람이 나와 동료의 인사문제에 뒤에서 매우 부정적인 말들을 흘리고 다녔다는 얘길 전해 듣고는 차라리 ‘대놓고 마초’가 낫다는 생각이 들었었지.
잠보 : 글쎄, ‘척’하는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그런 사람 자신도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를 수 있겠지.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뭐 이런 거? 이런 사람들은 자기를 믿었던 사람에게 작정하고 상처를 준다거나 뒤통수를 친다기보다 자기가 하는 행위의 의미를 아예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맘보 : “오직 위선자만이 내부의 핵심까지 속속들이 악한 존재”라는 말을 누가 했다던데, 그렇다면 이건 아예 자기가 위선자인 줄도 모른다는 얘기잖아? 불교에서는 삼독심(탐욕, 분노, 어리석음) 가운데 어리석음이 탐욕과 분노의 근원이라고 하던데 자기가 하는 행위의 의미 자체를 모른다는 건 어리석음의 극치가 아닐까?
잠보 :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논리정연하게 입바른 말 잘하고 사회의식 뚜렷한 사람이 시험볼 때 컨닝을 환상적으로 잘하는 걸 목격하고 정떨어졌거든. 근데 그 사람 자신은 너무 떳떳하니까 막 혼란이 오더라고. 이 말 하니까 누가 나더러 “이제부터 넌 올바른 말 한마디라도 떠들면 안 된다. 누군가가 네 행동을 지켜보다가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당장 ’이중적이고 언행일치 안 되는 사람’으로 비난할 수 있다”고 그러데.
맘보 : 아니지! 자기이익을 위해 작심하고 부도덕한 짓을 하는 것과, 어쩌다 실수하거나 불가피한 상황에 놓여 그릇된 행동을 하게 되는 건 다르잖아. 또 부도덕한 행위에도 경중은 따져야지!
잠보 :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사회운동을 하거나 자기가 서있는 곳에서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씌워지는 외부의 도덕적 잣대가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도 들어.
* * *
맘보 : 기대가 크면 요구나 비난도 큰 법인가? 누군가는 “성인군자가 되라는 게 아니라, 타인에게 요구하는 그만큼의 윤리기준은 스스로 지키면서 사회운동해야 한다”고 그러더라.
잠보 : 그 선에서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하지만 대중의 감정은 그 선에서 만족하지 못할 때가 많은 거 같아.
맘보 : A에 대해 비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B와 C도 완벽해야 한다는 그런 논리?
잠보 : 예를 들면, 비정규직 관련 프로그램을 보던 한 시청자가 “자기네 방송사 비정규직문제나 해결해놓고 저런 방송하지” 그랬다 쳐. 그 사람 논리라면, 내부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방송은 공공을 위한 그 어떤 프로그램도 제작할 수 없는 거야. 언젠가 ‘문제’ 청소년을 연구하는 지인의 아들이 가출을 한 적이 있는데, 친구가 그러더래. “청소년연구하기 전에 네 아들문제부터 해결하지”
맘보 : 그렇게 따지기 시작하면 그 어떤 문제에도 안 걸릴 사람이 어딨어?
잠보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나 나나 다 똑같다”고 나가면 그것도 좀 위험해. 누군가의 어떤 말과 행위를 비판할 때, 그 사안에 관한 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자기정직성을 갖추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건 필요하겠지.
맘보 : 자기정직성? 남들은 몰라도 자기 자신은 알고 있는 어떤 것… 하지만 그조차 없는 사람들이 와글와글 떠드는 게 현실이고, 난 이게 어떤 경우엔 꼭 나쁘지 않다고 봐. 세상이 조금씩이라도 변화해온 게 이런 사람들 ‘떼창’ (떼지어 소리지름)덕도 분명 있고.
잠보 : 물론 그런 면이 상당부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삶의 질적인 향상을 이루기 힘들다고 봐. 비난하던 사람들을 비난받던 그 ‘위치’에 옮겨 놓으면 똑같아져 버리는 일도 많을 테니까. 이런 뜻에서 자기정직성이 중요하다고 한 거야.
맘보 : 그럼 자기정직성에 자신 없는 나는 이렇게 타협해 볼까. “겨묻은 개는 똥묻은 개를 나무랄 자격이 있다”
잠보 : 거기에 꼬리하나 달자. “묻은 겨를 털어내는 님하, 나무랄 자격 짱드셈”
맘보 : 겨가 덕지덕지 묻은 내겐 너무 무리한 요구~
잠보 : 나무라지만 말고 똥도 함께 치우자고 할랬더니!
이인화(이오) ●
맘보, 잠보(mumboㅡjumbo)는? 헛소리, 객쩍은 이야기랍니다.
그럼 자기정직성에 자신 없는 나는 이렇게 타협해 볼까.
“겨묻은 개는 똥묻은 개를
나무랄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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