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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10월호 [문화산책] 함.께. 독.립.하.기.
* 게스츠하우스는 “비어 있는 집, 빈집입니다. 비어있기 때문에 넉넉하게 누구든 맞아들일 수 있고, 또 무엇이든 채울 수 있습니다. 빈집은 이름마저도 비어 있습니다. 당신이 그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빈집에 있는 소개글입니다>
[문화산책] 함.께. 독.립.하.기.
해방촌 게스츠하우스 빈집
살구 ●
해방촌 게스츠하우스 빈집은 하나의 지향이나 원칙을 따르는 집단이 아닙니다. 손님과 주인의 구분도 없는 그래서 스스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고민하고 다른 이들과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곳입니다. 빈집에 살고 있는 장기투숙객, 단기투숙객 뿐 아니라 살지는 않지만 왕래하는 모든 이들까지, 빈집은 그들의 수만큼 다양합니다.
빈집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보통 ‘독립’한다는 것은 혼자 사는 것을 의미하지요. 보호자와 물리적으로 다른 공간에 살게 되는 것을, 그 보호자로부터 물질적으로 분리되는 것을 말합니다. 부모님과 다른 공간에 살게 되거나 부모님으로부터 생활비나 용돈을 받지 않게 되거나 또는 결혼하거나!
하지만 저는 독립이란 온전히 자기 힘으로 살아 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님이 내어주는 공간과 돈이 없더라도 내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사람,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데 무작정 다른 이에게 의지하지 않는 사람. 하나 덧붙인다면 돈에서 자유로운 생활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으로 필요를 해결하지 않으려면 여러 사람의 다양한 재능들이 만나고 겹쳐야 합니다. 빈집은 제가 함께 독립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함께 독립하고 싶다고 꼭 같이 살아야 하는 걸까요? 혼자 살면서 사생활도 유지하면서 친구들을 많이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저는 자신만을 위해 분리된 공간에 있다는 것이 다른 이들에 대한 폐쇄성을 반영하고 있고, 또 다시 자기 스스로를 가둔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자기만의 공간에 갇힐 것인가, 나의 공간을 열어 우리의 공간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보다 심심하다, 누구랑 놀까라는 생각을 더 자주합니다. 쉬고 싶을 때도 혼자 있어야만 그럴 수 있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래도 혼자서 독립(분리)된 공간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분명히 있고, 저 같은 경우 한 달에 한 번꼴이거나 더 적습니다. 그럴 때 빈집의 ‘손님방’이라는 빈 공간이 저에게 혼자만의 공간을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또 혼자 있다는 의미는 단지 ‘닫힌 공간’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집 근처의 공원이나 남산 산책로는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는 공간이지만 저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해줍니다.
이렇게 보면 자기 집이라는 공간을 근사하게 하는 것이 독립하여 자기 공간을 운영하는 전부가 아닙니다. 내가 밖으로 나가는 것이 즐겁고 휴식이 될 만큼 집 밖의 공간들도 근사해 지는 것이 나와 우리에게 훨씬 좋습니다. 내 공간을 열어 많은 이의 공간이 되게 하고 밖이라는 공간을 내 안에 끌어들이는 것… 집과 마을에 대한 고민입니다.
가족이랑도 함께 살기 힘든데 어떻게 낯선 사람들과 같이 사느냐고요? 빈집은 만날법한 어떤 인연도 없는 사람끼리도 만나게 하는 공간입니다. 그리고 상대를 대하는 순간 당황스러워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 생각엔 필요 없는 커다란 물건을 누군가 갖다 두었거나, 러니(빈집생활 2년 3개월 넘긴 고양이)를 처음 봤던 순간이라든가, ‘이런 일 나는 못하지.’ 하는 태도의 사람이라든가.
어떤 관계이든 내가 아닌 다른 존재는 ‘나와 어떻게 관계 맺느냐’가 중요해집니다. 내 물건인 것을 다른 이가 사용할 때의 관계와 내가 다른 이의 물건을 대하는 관계, 내가 복돌이(개)와 맺는 관계, 러니, 멍니, 동글이(고양이들)와 맺는 관계, 그리고 조금은 익숙해진 그와 이제 첫인사를 나눈 그녀. 모든 관계에 있어 상대와 나의 유사함이나 다름을 계산하는 방식이 아니라 나와 다른 존재들이고 나와 같을 수 없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만나야 합니다. 온전히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빈집을 짐작하는 데 조금 도움이 될까하여 몇 가지 대화를 옮겨보겠습니다. 올해 정규직 일을 그만둘까했던 친구와 그만둔 친구가 있는 자리의 대화입니다.
“아직도 출근 하는 거야?” “뭐 정리는 잘 하고 나와야…” “에~ 먼저 관둔다고 노래를 하더니 그래가지고 그만두겠어?”, “사람이 점점 피폐해지네, 어여 그만두시게나. 뭐 좋은 꼴을 보겠다고…”
지금처럼 고실업이 심각하다고 외치는 사회에서 재미있는 일을 구상하고 실행할 시간이 넉넉해야 한다는 이유로, 그래야 훨씬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정규직보다 백수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적게 일하고 적게 벌고 적게 쓰고 싶으니, 이런 대화 끝에 함께 일하고 수익을 나누는 가게를 하자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도대체 왜 나는 (살림을) 많이 하는 거 같고 쭛쭛는 덜 하는 거 같고 이런 느낌이 들까?” “그거야 그 사람 일하는 거 니가 다 보고 있는 게 아니니까. 자기가 한건 다 알고 있고…” “그러니까 내가 남보다 더하는 거 같다고 느낄 때가 비슷하게 하는 수준일껄?” “살림할 때 싫증나거나 짜증나기 전에 스톱하자고, 그런 타이밍이 되면 다른 사람하고 바톤 터치하고” “이 공간에서 여성인 쭛쭛가 더 일을 많이 하는 모습이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해. 오히려 남성인 내가 좀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해.”
함께 살기 때문에 살림은 빈집 사람들에게 가장 큰 이야기꺼리이기도 합니다. 살림을 잘 하거나 노력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보다도 능력을 인정받기도 합니다.
빈집은 그 많은 관계와 수다 속에서 나온 것들을 같이 하고, 나누고, 퍼뜨리고 싶어 합니다. 함께 할 때 더욱 진하고 걸쭉한 행복을 맛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빈집을 설명해보려 했지만 역시나 역부족입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냥 이렇게 얘기하게 됩니다.“빈집에 놀러오세요. 놀러 오셔서 같이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언제든 놀러오세요.”
살구 ●
8월 말, 마치 여름의 시작처럼 비가 계속 내리는 일주일.
그 비로 무성해진 옥상텃밭과 날이 밝으니 느긋하게 늘어지는 고양이 3마리가 있고,
학교 갈 준비를 하거나, 옥상 밭을 정리하거나, 아침담배를 피우거나, 식사하고 설거지를 하거나,
아직 자고 있거나 하는 사람들이 함께 있는 빈집의 거실에서 살구가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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