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10월호 [생생한 시각] ‘성차별금지법’을 제안한다
[생생한 시각] ‘성차별금지법’을 제안한다
이숙진 ● 젠더사회연구소 소장
입법 상황? 입법 운동!
최근 주목해야 할 성평등 및 성차별 관련 법률은 크게 3가지 정도인 것 같다. 여성가족부가 입법예고한 여성발전기본법 전부개정법률안인 ‘여성정책기본법’, 국회 신낙균의원 대표발의의 여성발전기본법 전부개정법률안인 ‘성평등기본법’, 그리고 법무부가 추진하고 있는 ‘차별금지법’ 등이다. 여성가족부의 ‘여성정책기본법’은 7월 13일 입법예고를 마친 상태이며, 국회안인 ‘성평등기본법’은 6월 23일에 발의되었고, 법무부는 차별금지법특별분과위원회를 4월에 구성, 10월에는 대략적인 차별금지법안을 내놓겠다는 일정을 가지고 있다.
법률은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를 반영할 뿐이며, 아무리 법을 잘 만들어도 성평등 현실은 그만큼 진전되지 못했다는 오랜 경험에도 불구하고, 입법운동을 통한 급진적 미래에의 도전 역시 포기할 수 없는 여성운동의 과제인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요즘의 입법지형에 대한 검토는 여성운동 차원에서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고 있기도 하다.
성평등기본법이 대안인가
지난 7월 15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여가부의 ‘여성정책기본법’안에 대해 반대의견을 발표했다. 그 이유는 법안 명칭, ‘성평등’의 개념, 여성지위위원회, 유연근무제도의 확산 등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럼 국회안으로 나온 ‘성평등기본법’은 어떠한가. 2009년 6월 15일에 개최된 ‘성평등기본법’ 입법토론회에서는 “‘여성발전’이냐 ‘성평등’이냐, ‘성주류화’가 제대로 반영되어 있느냐, 추진체계로서의 ‘성평등위원회’의 위상은 무엇이냐 등”(여성신문, 2009. 6. 19일자)에 대한 의견들이 개진되었으며, 그 후로 약 1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난 6월 23일에 국회안으로서의 ‘성평등기본법’이 나왔다. 이에 대해 공식적인 의견을 표명한 기관은 아직 없는 것 같다. 이 글에서는 ‘성평등기본법’의 세부 조항 하나하나를 따져보기보다 이 법안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이 법이 포괄하는 범위가 한국 사회 여성문제 해결을 담보할 수 있는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성평등기본법’의 제안이유에 이러한 구절이 있다. “…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 폐지법률」로 인하여 사라진 성차별의 정의를 시대에 맞게 복원하며, 성평등 정의를 도입하면서 모든 영역에서의 성차별을 금지하고 구제조치를 강화하여…」” 이 구절은 ‘성평등기본법’을 통해 ‘남녀차별금지법’을 대체하겠다는 것과 다름없이 읽혀진다. 그렇다면 과연 ‘성평등기본법’은 이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가. 결론만 얘기하자면 아주 턱없이 부족하다. ‘성차별’과 관련하여 ‘성평등기본법’의 규정은 전부 10개 조항에 그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성차별’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성차별의 유형, 성차별금지의 범위, 시정기구 및 권리구제, 손해배상, 입증책임, 그리고 벌칙 등의 내용을 담아낼 수 없다. 즉 별도의 독립된 개별법으로 다루어질만한 내용들이 ‘성평등기본법’의 제3장 제1절에 부분적으로 반영되면서 폐지된 남녀차별금지법의 복원을 얘기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있다고 본다.
다음으로 ‘성평등기본법’이 포괄하고 있는 성평등 및 성차별의 범위와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다. ‘성평등’과 ‘성차별금지’는 문자 그대로 ‘모든 영역’ 혹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성평등기본법’은 “(제1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등의 책무 등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성차별을 금지하고 성평등을 촉진하겠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교육, 여타의 공공기관, 대중매체 그리고 점차 증대하고 있으며 매우 심각한 사안이기도 한 사인간의 성차별문제는 ‘성평등기본법’의 대상이 되는가 아닌가. 교육 혹은 재화와 서비스 영역에서 발생하는 성희롱은 이 법에 근거한 금지의 대상인가 아닌가. 성적지향이나 성적 정체성 등을 이유로 한 편견과 부당한 대우는 ‘성평등기본법’의 대상인가 아닌가. 이러한 문제들을 충실히 담을 수 없다면 ‘성평등기본법’은 제3장 제1절을 통해 ‘남녀차별금지법’을 복원하겠다는 목표를 버려야 하며, 오히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성평등 책무를 강화하는 법률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일반적) 차별금지법을 통해 성차별금지가
해결될 수 있는가
남녀차별금지법은 복원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성평등과 성차별금지를 담보할 수 있는 것인가. 앞서 지적했듯이 지난 제17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안)’이 자동폐기된 이후 최근 법무부는 차별금지법제정을 위한 움직임을 가시화했다. 새롭게 제시될 ‘차별금지법(안)’이 내용적으로 보다 진전된 것일 거라는 기대(?)를 해보기로 하자. 여하튼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별도의 성별에 근거한 차별금지법 즉 성별에 근거한 개별적인 차별금지법은 불필요한가.
이와 관련한 문제제기는 크게 두 가지로 가능할 것이다. 하나는 성차별 금지의 실효성이며, 다른 하나는 한국 사회 성차별 현실에 대한 인식과 관련된 부분이다. 먼저, 성차별금지의 실효성과 관련하여 차별금지법을 통해 효과적으로 성차별을 금지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차별금지법은 차별에 대한 기본법적인 구조를 가지게 될 것이므로 법률구조상 각각의 차별금지 사유에 대해 세세하게 규정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성별에 근거한 차별’을 별도의 장을 통해 그 차별의 형태, 영역, 범위, 그리고 금지하는 차별행위 등에 관한 구체적 규정을 담을 수 없게 된다. 이는 성별과 관련된 다양하고 복잡한 차별의 현실을 차별금지법을 통해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음은 성차별을 별도의 법을 통해 금지할 만큼 한국사회의 성차별이 심각한가에 대한 문제제기일 것이다. 혹자는 우리사회의 성평등이 상당히 진전(적어도 법률상으로라도)되었고, 따라서 성차별 금지를 위한 별도의 법 제정요구는 그리 높지 않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젠더개발지수(GDI)나 젠더권한척도(GEM)에서 우리의 성평등 수준은 익히 알려져 있으며, 최근 세계경제포럼의 성별격차보고서에 의한 2009년 우리의 성평등 현실은 세계 115위로 나타났다. 그리고 영국과 호주 등 우리보다 여성 지위가 진전된 나라들에서도 성차별금지법(Sex Discrimination Act)을 제정해놓고 있으며, EU는 2002년, 2004년에 각각 남녀평등대우에 관한 2개의 지침(고용/재화·용역)을 제정해서 회원국들이 이 지침을 반영하도록 권고하고 있기도 하다. 즉 우리보다 성평등이 진전된 국가들에서도 성차별금지는 법제도를 통해 유지되고 있으며, 한국은 여전히 혹은 지속적으로 성차별 개선이 필요한 국가라는 점이다.
차별금지법과 성차별금지법의 관계는 무엇인가
차별금지법의 제정이 필요한 이유는 현재 인권위의 차별조사와 피해구제가 인권위법에 근거하여 이루어지고 있지만 만약 차별사건이 법정으로 갈 경우 인권위법의 위반을 근거로 사법적 판단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인권위법은 인권법이기도 하지만 ‘인권위’라는 기관의 운영과 활동에 관한 기구법적 성격을 보다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차별사유(인권위법상 19개 사유)에 대해 각각 개별법을 제정할 수 없는 한계가 있으므로 차별에 대한 기본법을 통해 이를 금지하자는 것이 제정 취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전제하고도, 별도의 성차별금지법이 필요한가. 필자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는 앞서 기술한 여러 이유들과 더불어 추가적으로 차별금지관련 법제상의 일관성과도 관련된다. 이미 우리에게는 장애, 연령 등에 근거한 개별적인 차별금지법인 ‘장애인차별금지법(복지부 소관)’과 ‘연령차별금지법(노동부 소관)’이 있다. 그러나 성별에 근거한 차별금지법은 없다. 차별금지 관련 입법의 통상적 선례들은 성차별, 장애차별, 인종차별, 연령차별 등이며 이러한 속인적 성격을 지닌 차별사유에 대해서는 별도의 개별적 차별금지법을 통해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별도의 성차별금지법이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성차별 사건의 경우 피해구제의 경로가 최종적으로 법원까지 가는 사례가 빈번하기 때문에 사법적 판단을 위한 별도의 근거법이 있을 경우 성차별 금지는 보다 실효성 있게 작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갈 길을 정하자
평등을 주장하는 것과 차별을 금지하자는 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평등’은 진취적이고 평화로운 행진으로 느껴지지만 ‘차별’은 왠지 불편하고 투쟁적인 싸움으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런데 ‘차별’을 직시하고 ‘차별’을 드러내지 않고 ‘평등’으로 갈 수 있을까? 최근의 입법지형과 관련하여 우리가 갈 길은 무엇일까? 여성발전기본법 개정안은 병합심사를 통해 국회 단일안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성평등기본법’의 “제3장 1절 성차별 금지” 부분은 별도의 ‘성차별금지법’으로 가져갈 것을 제안한다.
이숙진 ●
여성학을 전공하고, 젠더관점에 기반한 사회정책 생산현장에서 일했으며,
최근 인권과 차별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답니다.
이메일: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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