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호 [생생한 시각] 출산 기피 부담금에 대처하는 자세
[생생한 시각]
출산 기피 부담금에 대처하는 자세
오영식(수풀) ● 한국여성민우회 회원모임 작심삼일
주민 모임 송년회에서 있었던 일
나는 사회복지사이다. 저소득층 밀집지역의 종합복지관에 근무하고 있고 인형극 자원봉사 동아리나 동네 음악회 추진위원회와 같은 작지만 소중한 주민 모임들을 도와드리는 일을 하고 있다. 주로 직장인 일과시간(09:00 ~ 18:00)에 일을 하다 보니 동네에서 만나는 주민 대상층은 30~50대 전업주부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거의 대부분이 결혼해서 자녀도 둘 이상씩은 있으신 분들이다.
얼마 전 내가 지원하고 있는 동아리 송년회 자리에서 주민 분들과 맥주 한 잔 하다가 “출산 기피 부담금”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이창양 KAIST대 경영대 교수가 지난 2010년 12월 15일자 조선일보에 “출산 기피 부담금”을 제안하는 사설을 기고하였는데 주민 중 한 분이 그 사설을 보고 우연히 얘기를 꺼내신 것이다. 민우회 회원인 나로서는 관심이 있는 주제이기도 했고 평소 만나던 주민 분들은 정부 차원의 저출산 대책에 대해 어떤 생각이실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지나가려던 “출산 기피 부담금”이라는 화제를 덥석 물어보았다.
수풀 : 아니 근데 출산 기피 부담금은 또 뭐래요?
주민A : 아, 그게 뭐냐면... 그 요즘 젊은 사람들 애 낳기 싫어하잖아. 일 나가는 여자들도 많고 애 낳으면 몸매도 망가지고... 그래서 요즘 저출산 문제가 국가적으로 심각하다고 뉴스들마다 난리도 아니야. 그러니 애 낳기 싫은 젊은 사람들 마음이 얼마나 불편하겠어? 차라리 당당하게 애 낳지 말고 애 안 낳는 대신에 세금 더 내라는 제도인거 같더라고.
둘째 자녀가 올해 중학교에 들어가는 주민A씨가 오징어 튀김을 씹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마음 편하라고 내는 세금이라니?
수풀 : 네? 그거 아닌 거 같은데요. 세금 낸다고 마음이 편해질까요? 그리고 벌금 내는 거 같아서 세금 내면서 기분 더 나쁠 것 같아요.
주민A : 하긴 나도 좀 이상하긴 했는데... 여하튼 뭐 필요한 제도인 것 같지 않아? 기분은 좀 나쁘더라도 출산율은 올려야지.
주민B : 그래! 이렇게 애들 안 낳으면 20년, 30년 뒤에 세금은 누가 내냐고... 우리들 나이 먹고 노인 되면 노인복지혜택 받아야 하잖아? 복지 하려면 돈이 필요해요. 자식들 안 낳겠다면 나중에 그 자식들이 낼 세금 미리 낸다 생각하고 그 출산 기피 부담금인가... 그거 내면 되겠네.
낳지도 않은 아이가 낼 세금을 미리 낸다?
옆 테이블에서 자녀 셋을 두신 주민B씨가 저출산 얘기를 듣고 드시던 맥주잔까지 들고 와 우리 테이블에 앉으셨다. 약간은 흥분하신 듯 탁하고 테이블에 내려놓은 맥주잔이 심하게 출렁거린다. 나도 일단은 직업이 감정노동을 해야 하는 서비스 업종인지라 “부자감세액이 얼만데 서민들 주머닛돈 터냐”며 주민B씨에게 정색하며 반박할 수가 없어 조금은 순화된 적당한 표현을 고민하느라 반박할 타이밍을 놓치고 머뭇거리던 찰나, 평소 과묵하신 주민C씨가 한마디 거든다.
주민C : 언니, 자식 키울 돈 없어서 자식 못 키우는 사람도 있는데 벌금 내라니 너무 하지 않아? 또 불임부부는 어쩌라고?
주민B : 아니 불임부부는 정상참작을 해서...
그 순간 한참 격해지던 테이블 분위기가 싸하게 식으며 너나 할 것 없이 주민D씨의 눈치를 살폈다. 생각해보니 옆 테이블의 주민D씨는 본인 의지는 있으나 결혼 몇 년이 지나도록 임신이 되지 않아 한 달째 새벽 기도회에 나가고 있었다. 아이쿠, 이런…….
주민A : 아아, 그래. 애 안 낳는다고 치사하게 무슨 세금이니. 차라리 내가 하나 더 낳을 테니 나 오늘 술자리 회비나 깎아줘. 하하하.
분위기가 어색해질 새라 주민A씨가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한바탕 웃음을 끌어냈다. 그러다 대화 화제는 주민C씨의 무뚝뚝한 둘째가 연애를 시작했다는 얘기로 흘러갔다. 저출산 정책에 대한 몇 마디 안 되는 짧은 대화였지만 이 날 주고받았던 대화내용은 나에게 꽤 인상적이었다.
일상 속에서 작은 균열을
첫 번째 이유는 나와 생각의 방향이 크게 다르지 않은 민우회라는 공간이 아니라 낯익고 편안한 일상의 공간이지만 오히려 저출산 정책과 같은 대화를 하기에는 낯설기 그지없는 직장 공간에서 이해관계 없이 허심탄회하게 이뤄진 대화였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데 언제부터인가 내 안의 두 공간, 민우회와 직장 사이에는 마치 오래된 우유 표면에 지방막이 생기듯 경계를 가르는 벽이 두꺼워지고 있었다. 여기는 민우회니까, 여기는 직장이니까 라는 이유로 나는 두 공간 사이의 소통을 유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두 번째 이유는 일면 균일해 보이는 공동체(예를 들면 동아리와 같은) 내에도 이렇게 다양한 입장의 삶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는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무심코 던진 강자의 논리에 내 주변에 상처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음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삶은 조금 더 약자에 대해 민감해지지 않겠는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정부의 저출산 정책들에 휩쓸리지 않도록 일상 속에서부터 작은 균열을 만들어내는 노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타공인 민우회 홍보대사인 나로서도 앞으로 더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민C씨에게 한국여성민우회 후원회원 가입서를 내밀게 될 날을 상상하니 벌써 기분이 좋아진다.
● 수풀
경계를 넘어서려는 민우회 홍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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