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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4월호 [나의 삶, 나의 이야기1] 여행을 기억하다
여행을 기억하다
장이아(물) ● 한국여성민우회 회원
지난 1월에 일본을 다녀온 이야기를 글로 써 달란다. 그런데 영 글이 써지지 않았다. 요즘 일본 하면 불안, 공포, 슬픔, 죽음 같은 것과 동의어처럼 들린다. 그런데 거기에 ‘여행’이라는 말은 아무리 끼워 넣어보려고 해도 어색하고, 괜스레 민망해지기까지 했다. 처음 글을 써 보겠노라 흔쾌히 승낙했을 때는 이것을 빌미로 내 생애 처음 자유 여행, 거기에 내 조카와의 조금 특별한 여행에 대해 나 나름 정리해 보고픈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엄청난 일들이 일어났고, 그 후 일어나는 일들을 그저 넋 놓고 보고 있는 동안 글은 전혀 써지지 않았다. 마감이 임박하면 어떻게든 써지겠지 하며 모른 척 미루어놓기도 했지만, 마감일을 넘기고 또 넘기고도 글은 써지지 않고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지경이 되어 겨우 이렇게 쓴다. 이 역시 나의 여행의 일부분일까…
당신은 여행자의 운명을 타고 났어요.
작년 여름 어느 날 타로점을 보았다. 사실 난 타로점 자체보다 그 타로를 보는 사람에 대해 궁금하여 찾아갔기에 딱히 궁금한 것도 묻고 싶은 것도 없었다. 단지 장난스럽게(당연히 답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 생각은 했었다. ‘내가 누구인가’, ‘나는 어떤 운명을 타고 났는가’ 이런 것도 타로에서 말해 줄 수 있을까? 그런데 그는 내 타로를 펼쳐 놓자마자 나에게 ‘당신은 여행자의 운명을 타고나셨군요’ 라고 했다.
여.행.자.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 당신이 이 말을 들었다면 당신은 어땠을까?
나? ^^ …… 펑펑 울었다.
똑같은 이야기라도 그가 여행자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면 내용만으로 씁쓸해했을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울지 않았을 것이다. 내게는 엄청난 불안이 있었다. 내 삶이 여행자의 삶일까봐. 그리고 그런 삶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의 말을 듣고 한참이나 힘들어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그 말의 의미를 그리고, 그것이 가진 생명력을 재해석해 내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는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여행의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은 이제 실질적인 여행도 떠났으면 좋겠다. 그의 말이 내 귀에 속삭이는 어떤 운명자의 말처럼 내 귀가를 떠나지 않았고, 나는 그렇게 여행을 떠났다.
같이 갈래?
내 조카는 지금은 중학생이 되었지만, 그때는 산만하고, 툭툭 튀는 말로 교사로부터 늘 지적당하고, 많은 눈물과 작은 키로 친구들에게 무시당할까봐 되려 끊임없이 그들을 무시하는 나름 문제 많은 6학년 남자아이였다. 그리고 5학년 때 전학을 갔는데, 담임의 심한 체벌과 무시로 아이는 더욱 거칠어지고 나아가 마음의 문을 닫고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상담을 받게 하려고 했으나 그것조차 강하게 거부하여서 할 수가 없었다. 주변 어른들은 안타까워만 하고 있었다. 그런 아이와 이야기를 좀 하고 싶었고, 이 여행이 좋은 매개가 되리라 생각했다. 조카는 ‘해외여행’이라는 것에 그 의도 같은 것은 따지지 않고 따라나섰다.
힘 빼기 연습
우리는 오사카, 나라, 교토를 여행했다. 우리가 방문한 여행지와 방법은 인터넷 검색창에서 ‘오사카 여행’이라고 치면 나오는 그 블로그의 글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가기 전에 그 글들을 섭렵했었고 그리고 우리는 그 길을 따라다녔다. 굳이 다른 것을 찾으라면 아마 우린 그들보다 한 두 곳 덜 갔을 것이다. 내가 그리 바지런한 여행자가 아닌데다가 욕심부리고 싶지 않았고, 특히나 어린 조카가 있어서 내쳐 달리는 식은 할 수도 없었다. 여행을 준비하며 분명 좋은 마음에 내가 먼저 함께 가자했음에도 조카가 너무도 부담스러웠던 시점이 있었다. 사소한 작은 것에서부터 모든 것들이 걱정되면서 ‘괜히 가자했구나’라는 생각으로 한동안 힘들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가만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왜 이럴까, 왜 이렇게까지 부담스럽고, 두려운 걸까?’
함께 하는 사람에 대한 책임감, 어떻게든 멋지고, 좋은 사람이고 싶은 바람,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이 내게서 멀어질 것 같은 두려움.
‘이번 여행이 그 아이가 대단한 어떤 의미가 있기를, 그래서 내가 그렇게 만들어 주고 싶어하는구나. 그리고 난 그런 멋진 이모라는 걸 새겨주고 싶어하는구나’
그래서 가기 전에 다짐했었다. 절대 무엇도 가르치려고 애쓰지 마라. 욕심내지마라. 그 아이 몫은 그 아이가 감당하게 하자. 함께 한다는 것에 집중하자. 그리고 우린 함께 길을 가는 동행자라는 것을 잊지 말자. 이 마음 덕분이었을까 여행에 돌아온 조카는 여행이 좋았다며 종종 여행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기요즈미데라(교토에 있는 오래된 절)를 찾아가는 길에 친구들과 함께 여행 온 대학생 인 듯한 이들을 만났다. 우리에게 길을 물었지만, 답해 주지는 못했다. 그들은 개의치 않고 웃으면 힘차게 길을 갔다.
“이모, 나도 저 형들처럼 나중에 친구들이랑 여행 올 수 있을까?”
“그럼, 당연하지. 너 이렇게 잘 하고 있쟎아”
“나 고등학생이 되면 친구들이랑 다시 여기 올래.”
물 ●
요즘의 나
나의 시덥지 않는 일상을 함께 나누고 그 속에서 마음을 나누는 일.
그 일을 하고 있다.
이제야 내 삶의 길을 내 힘으로 가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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