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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4월호 [기획 - 불안] 우리는 왜 이렇게 불안한 것일까
우리는 왜 이렇게 불안한 것일까
박민영 ● 문화평론가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라이너 파스빈더 감독의 영화 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가 있다. 이 제목처럼 요즘 불안은 현대인들의 영혼을 잠식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의식이 발달한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현재의 문제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미래에 도래할 ‘가능성이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불안을 느낀다. 그런 까닭에 인간에게는 불안을 극대화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그러나 그런 점을 십분 고려하더라도 최근 사람들 사이에 확산하는 불안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불안이 특정한 몇 가지 문제들이 아니라, 전면적이고 총체적인 문제 때문이라는 느낌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생존을 위태롭게 하는 현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심각하게 발생하는 것을 보고 있다.
본래 생물학적으로 불안은 생존에 필요한 일종의 보호 장치이자 경보 장치다. 불안은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들에 대해 대비하게 한다. 그러나 인간 사회는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선전과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그 안에 품고 있다. 그것들은 무수한 권위를 동원해 현재의 문명과 체제가 정당하고 별 이상 없다고 안심시킨다. 그 탓에 사람들은 불안을 직감할지라도 머리로는 “설마 어떻게 되겠어? 괜찮겠지.”하고 자위하게 된다.
불안은 정체 모를 대상 때문에 일어나는 감정이다. 지금 우리가 겪는 불안도 언뜻 보면 그렇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원인이 모호한 것이 아니라, 너무 근본적이고 거대한 문제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원인을 알기도 쉽지 않지만, 설사 그것을 안다 해도 내 의지와 힘으로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 때문에 불안이 더욱 가중된다.
거대한 사회 규모와 불안
오늘날의 세계는 세계화된 세계이다. 현대인들은 모두 세계 단일경제 체제에서 살고 있다. 한국인은 정치적으로는 국경이 유효한 까닭에 5천만 분의 1로 살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65억 분의 1로 살고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평범한 개인이 65억 분의 1만큼의 경제 권력을 갖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것은 경제 권력이 없는 것과 같다. 세계가 심각한 경제 위기에 처해있는데도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느낌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화는 지역과 국가가 독립성을 유지한 채로 서로 연결된 것이 아니다. 세계화는 지역과 국가의 독립성을 파괴하고 상호 의존성을 강화시킨다. 그러므로 세계화가 진전될수록 지역, 국가, 개인의 불안정성이 증가한다. 세계화의 주체는 극소수의 초국적 자본과 그에 영합한 정치권력들이다. 평범한 개인들은 세계의 영향을 받기만 할 뿐, 그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그에 따라 개인들은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문제들이 언제 어떻게 내 인생을 망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어야 한다.
세계화된 세계에서 생겨나는 문제는 지엽적인 문제가 아닌 전체의 문제이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경제 위기, 생태계 파괴, 이상 기후, 해로운 먹을거리, 전염병 창궐 등은 모두 세계적인 원인에 의한 것이다. 세계적인 문제는 세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그러나 세계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힘이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화는 그 자체로 개별 국가의 힘을 약화시킨다. 그러므로 세계 각국이 합의하여 통일적 행동을 취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거대한 사회 규모 속에서 개인과 국가는 갈수록 무기력해지고 있다.
미디어의 발달과 불안
거대한 사회 규모는 인간의 감각 범위를 넘어선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신문방송과 인터넷이 있지 않으냐고? 그렇다. 그것들이 세계를 개괄해준다. 그러나 그것들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보여주지 않는다. 대부분의 미디어는 극소수의 거대 자본에 장악되어 있으며, 그것들은 주로 거대 자본의 이익에 기반한 메시지를 생산하고 유통한다.
정보의 세계적인 유통과 그에 의해 형성된 여론은 그 자체로 불안과 긴장을 유발한다. 사람들은 불안할수록 미디어와 새로운 정보에 더욱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발 빠른 정보의 습득이 자신의 안전을 지켜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개인은 거대 기업의 메시지를 자발적으로 내재화하게 된다. 그것은 수용자가 의도하는 세계의 ‘객관적’ 구성과는 거리가 멀다.
대부분의 미디어는 광고수입에 의존한다. 실제로 미디어에서 유통되는 정보들 대부분이 직간접적인 광고이다. 그런데 이 광고가 불안을 제도화한다. 광고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남편, 아내, 자식의 욕망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아무렇게나 옷을 입고 있다는 것, 맛 좋은 커피를 즐기고 있지 못하다는 것, 혹은 자신의 입 냄새, 펑퍼짐한 엉덩이, 건조한 피부를 자각하게 한다. 그리고 그 때문에 성공적인 사회생활이 안 된다고 느끼게 한다. 광고는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강요하고 자신에 대한 불만을 조장한다.
마샬 맥루한은 『미디어의 이해』에서 “전기 테크놀로지가 처음으로 우리에게 미친 영향은 불안이었다.”고 말했다. 전자 매체는 인간의 정서를 차갑게 하고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들며 불안감에 빠지게 한다. 전자 매체와 불안은 상호 촉진 관계에 있다. 불안한 사람들은 전자 매체를 통해 게임, 폭력물, 외설물에 탐닉함으로써 그것을 잊으려 한다. 그러나 게임, 폭력물, 외설물은 사람을 중독시킴으로써 또 다른 불안감을 그 위에 얹어줄 뿐이다.
금융자본주의와 불안
현대인들의 불안은 본래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점증되어 왔다. 자본주의는 신분 상승의 욕구와 신분 하락에 대한 불안을 조장한다. 물질중심의 세계는 정서를 불안하게 만들고, 불안한 정서는 다시 물질적인 과시를 추구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분절되어가는 노동과정, 상존하는 고용불안, 빈부격차의 심화, 타인과 집단으로부터의 소외, 상실된 정신적 가치, 반자연적인 환경이 만들어내는 스트레스, 공동체의 파괴 역시 불안을 심화시킨다.
현재의 금융자본주의는 이런 불안을 극대화함으로써 발전·유지해왔다. 산업자본주의의 자본 축적은 주로 상품의 생산과 판매라는 물리적 차원 속에서 진행되었으나, 금융자본주의 체제는 그러한 물리적 과정마저 자본 축적의 걸림돌로 여기고 그것을 거세해버렸다. 그리고 투기를 자본축적의 주된 수단으로 삼았다. 그 결과 자본축적의 속도는 무제한으로 빨라지게 되었다. 그것은 서민의 입장에서 보면 불안이 무제한으로 빠르게 증가함을 의미한다.
금융자본주의 체제는 투기를 향한 강한 사회적 압력을 갖는다. 그럴 때 노동의 목적은 도박에 참여할 판돈을 모으는 것이 되지만, 도박에 참여하는 것은 심각한 불안을 동반한다. 게임의 참여자는 조그만 외부 충격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바늘이 되어, 시시때때로 등락하는 주가, 외환 가격, 부동산 가격, 원자재 가격을 점검하고, 그에 반응해야만 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도박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미래에 대한 예측만으로는 부족하며 예측에 대한 예측을 병행해야 한다. 그것은 예민한 심리 상태를 만들고, 종종 신경증과 강박증으로 이어진다.
새로운 담론의 필요성
불안은 거대한 에너지를 형성한다. 그것은 아랍의 민주화 운동처럼 진보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필연은 아니다. 불안이 극대화되면 사람들은 방향감각, 자아, 주위 세계에 대한 현실적 판단력을 상실한다. 그럴 때 사람들은 무력감의 보상으로서 파시즘적 지도자를 갈망할 수도 있고, 전쟁으로 나아갈 수도 있으며, 인종 테러처럼 엉뚱해 보이지만 필연적인 희생양이 필요할 수도 있다.
현재 세계는 거대한 불안으로 들끓고 있다. 우리는 세계사적으로 매우 위험하고 중대한 시기를 맞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불안의 원인을 무엇으로 보느냐, 어떻게 대응하느냐, 집단적 불안의 에너지가 어느 쪽으로 유도되느냐에 따라 역사의 진로가 결정될 것이다. 위기에 있어서 이성적 전망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만약 이성적 전망 없이 불안상태가 지속된다면 사회적 재앙은 일파만파로 확산될 것이다. 불안의 에너지를 건강한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미래에 대한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
박민영 ●
문화평론가이자 인문 저술가. 저서로 『인문학, 세상을 읽다』,『즐거움의 가치사전』,『이즘』, 『책 읽는 책』 등이 있으며,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인문학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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