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er board list icon](/assets/common/header-board-list-icon-871ea5b4968af0aff7ac9000984dc947.png)
2011년 3*4월호 [기획 - 불안] 불안하면 좀 어때
불안하면 좀 어때
김창연(곰) ● 한국여성민우회 회원
“나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난 뒤 휴지가 없을 것을 생각하면 불안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가장 불안해”
“필요한 만큼의 돈이 없을 때를 생각하면 불안해”
당신을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나의 지인들은 이렇게 답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불안(不安, anxiety)은 특정한 대상을 가지고 있지 않은 두려운 감정으로서, 자기에게 닥칠 위험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미래의 가능성으로 존재하고 있어 자기 안전이 깨어질 것이라는 두려운 감정을 뜻한다고 한다. 간단히 말해서 ‘자신의 평안함이 깨질 것에 대한 괜한 걱정’이 “불안”이라는 얘기다. 그런 일이 일어날지 아닐지 알지는 못하지만. 일단은 걱정이 되니 마음이 무거워지는 기분.
사실상 사람들은 언제 어떤 순간에서든 불안을 느끼기 마련이다. 아무 불안감도 없는 무균실 속 인생이란 것이 가당키나 한가. 친구들과 여행 가서 술 한 잔 걸치고 고스톱을 치는 그 한가로운 때에도 불안이 엄습하는 순간은 있다. 용감하게 고를 외쳤는데 싸면 어쩌지?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를 가장 불안하게 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 원고 마감 시간을 넘긴 죄로 근무시간 중에 일을 미뤄두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데, 실장님한테 들키면 어떻게 하지? 둘째, 원고 분량이 A4 두 장인데(글자크기 10, 줄 간격 160%, ‘개인이 느끼는 불안’이라는 주제에 대한 조건으로는 잔인하다, 따라서 중간 중간 적절한 엔터로서 분량을 채워갈 생각이다), 다 못 채우면 어쩌지? 아, 이건 불안이 아니라 걱정인가.
내가 십대 청소녀일 때에는 인신매매에 대한 불안감이 가장 컸다. 당시엔 무거운 짐을 들고 가시는 할머니를 도와드렸다가 할머니가 고마움의 표시로 주시는 야쿠르트를 받아 마시는 순간 정신을 잃고 쓰러진 여성을 봉고차가 싣고 외딴 마을 성매매업소에 팔아버리는 일이 빈번하다고 했다. 봉고차가 세상에서 가장 무섭던 시절이다. 대학생 때에는 애인이 바람피울까봐 불안했다. 나는 별로 예쁘지 않은데, 주위엔 매력적인 여성들이 넘쳤다. 대학원 다닐 때에는 수업시간에 교수가 나한테 질문을 던질까봐 불안했다. 읽어오란 교재를 끝까지 다 읽고 수업에 들어간 적이 없다. 졸업을 앞두고서는 취업이 안 될까봐 불안했다. 나이는 많고 취업에 제약이 많은 전공을 해버린 후였다. 비정규직으로 취업이 되고 나서는 계약만료 후 갈 곳이 없을까봐 불안했다. 요즘의 나는,
건강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질병에 걸리지 않고 생을 마감할 확률은 낮으니, 나도 언젠가는 건강을 잃을 것이고 투병하다 죽을 것이다. 다만, 그날이 너무 빨리 올까봐 불안하다. 엄마를 슬픔에 빠뜨리고 싶지 않지만, 술을 좋아하고 복부비만이며, 심지어 가족력도 충분하다. TV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암 검진 특집을 본방 사수하였으며, 「생로병사의 비밀」과 같은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다. 암 보험도 하나 들어두었다.
의지할 곳 없는 노년에 대한 불안감도 상당하다. 혼자 살고 있고 앞으로도 혼자 살 생각인지라 외로움, 돌봄의 부재, 고독사(孤獨死)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아플 때 누가 병원에 데려가 줄 것인가? 집에서 혼자 죽은 뒤 일주일 후에 발견되면 어쩌나?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친구에게 나보다 먼저 죽지 말 것을 신신당부하였으나 그 녀석, 결혼하면 그만이다. 정녕 남동생 눈 밖에 나지 않는 길뿐이란 말인가.
이 직장을 그만두면 취업할 곳이 없을까봐 걱정이 태산이다. 정말이지 이직하고 싶을 때, 이 직장을 그만두지 않을 수 없을 때가 와도 사표를 쓰는 손끝이 떨릴까 걱정이다. 먹고 살 길이 없으면 어찌하느냔 말이다. 나를 거두어 줄 사람도 없고 모아 놓은 재산도 없으니,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나를 지킬 수 없을까봐 불안할 따름이다. 직장을 유지하기 위해서 써야 하는 가면이 너무 많다. 출근하기 위해 몸을 구겨 넣은 지하철에서, 사람이 이리저리 뒤엉킨 환승역에서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다른 사람들을 밀치거나 누르거나 치고 다니면서도 다른 사람들도 나에게 그렇게 했으니 나 역시 미안해할 것 없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적당히 참고 물러서면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자위하는 내가 있다. 상사에게 새 옷이 잘 어울리신다고 거짓을 고하는 나를 본다. 서울시 공무원에게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하게 대하는 나는 스스로도 당혹스럽다. 할 수 있으면서도 할 수 없다고 물러서거나, 할 수 없으면서도 할 수 있다고 고집한다. 직장 생활, 다 이렇게 하는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누구인지 몰라 혼란스럽다. 이렇게 나를 잃어버릴까봐, 나를 지킬 수 없을까봐 불안하다.
그래서 다른 삶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생각은 또 다른 불안감으로 귀결되곤 한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실패하지 않을 수 있을까.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다치지 않을 수 있을까. 결국,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지는 못하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기도 한데, 실천하지 않을 뿐일지도. 건강이 불안하면 운동하면 되지만, 가끔 불안을 느끼면서도 될 대로 돼라지, 이불 속을 파고드는 나의 쿨한 게으름을 더 사랑하기도 하니. 체념의 미덕이랄까. 때로는 그저 불안했던 그 심정을 잊어버리기도 하고 술로 털어버리기도 하며, 같은 불안을 느끼는 비슷한 부류들과 서로의 유사한 심경을 확인하면서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니,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으로 해결하기도 한다. 그래봤자 불안을 잠시 유예할 뿐이지만, 이런 방법으로 불안과 함께 하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잖아? 본전도 못 찾을 과도한 로또와 보험, 투자, 무속신앙 등으로 귀결되지만 않으면 되겠지.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Angst Essen Seele Auf, 영화 제목,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의 1974년 작품)’고도 하지만, 난 불안이 사람을 진지하게 만들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불안을 통해서 나는 용기를 가져보기도 하고 욕심을 버려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하고 마음을 비우거나, 소통하거나, 관계를 다지고 대안을 찾아 공부하기도 한다. 늘 성공하진 않지만, 불안과 슬램! 그것이 불안을 맞이하는 가장 탁월한 방법일지도.
곰 ●
「나는 가수다」에서 백지영과 윤도현과 정엽이 너무 일찍 탈락할까 불안하다. 이 불안도는 별점 두 개 반짜리.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