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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4월호 [생생한 시각] 미션 3.0 : 사회에서 실종된 여성 찾기
미션 3.0 : 사회에서 실종된 여성 찾기
최은순 ● 한국여성민우회 이사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을까?
중고등학생 아들을 둔 부모를 만나면 으레 듣는 말이 있다. 학교에서 남학생들이 여학생들보다 성적 경쟁에서 밀려 걱정이라는 것이다. 대학교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남녀공학에서 여학생들의 성적 우세는 물론이고 그 숫자도 거의 남학생과 비슷하며 학생회 활동 등에서도 눈부신 활약상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 사회에 더 이상 성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거로 곧잘 활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희한하다.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남학생들의 학부모를 질리게 하는 그 많은 잘난 여학생들은 학교 문을 나서는 순간 다들 어디로 흩어져 사라진단 말인가?
법조계만을 놓고 보자.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에 여성 재판관과 대법관은 현재 1명씩이다. 대한변협의 이사 이상의 신임집행부에는 현재 여성변호사가 1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변호사 중 여성의 비율이 약 15%에 육박하는데도 말이다. 올해 임기를 새로 시작하는 신임집행부는 자신의 러닝메이트로서 여성부협회장을 지명하여 같이 선거운동을 같이 해 온 여성 부 협회장 내정을 철회하고 집행부에 1인의 여성변호사도 임명하지 않아 한국여성변호사회로부터 항의방문을 받고는 유감의 표시와 함께 이를 시정하기로 한 바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도 신임집행부 중 여성은 1명이다.
법관은 여성들이 법조직역에서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다. 2011년 3월 9일자 법률신문에 의하면 올 3월 3일 지난해 사법연수원 39기 출신 89명 임명보다 적은 수인 81명을 법관으로 임명하였고, 올 4월에 전역예정인 군법무관 출신 37기 중 지난해 36기 출신 52명보다 10명이 늘어난 62명을 법관으로 임명할 예정이라고 한다. 위 신문에 의하면 “법관임관 심사는 점점 엄격해질 것”이며 “연수원 성적만 좋다고 다 판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법원 관계자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또한 “올해 군법무관의 판사임관이 작년보다 많은 것은 막판에 대형로펌으로 가기로 했던 법무관 7명이 갑자기 법원으로 몰려서”라며 “앞으로 군법무관 출신 임관은 현행수준을 유지해 뽑을 것이나, 사법연수원 출신 임관은 점점 줄여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고도 한다. “왜 이리 장황하게 법률신문을 인용했느냐고?” 눈치 빠른 사람은 이미 간파했을 것이다. 연수원 수료자 중 법관임용 대상자는 성적 좋은 여성연수생들이 대부분이고 군법무관 출신 임용대상자는 연수원 수료 후 군 미필자여서 곧바로 임용되지 못하고 병역의무를 군법무관으로 마친 남성이다. 결국은 여성들의 판사임용 숫자를 줄이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물론, 향후 법관임용은 국회사법개혁특위에서 법조일원화라는 더 큰 틀 내에서 논의되어야 하겠지만, 이렇듯 성적 좋은 여성들이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많이 진출하는 영역에서는 이러한 교묘한 미세조정을 통해 여성들이 밀려남을 엿볼 수 있다.
법원마저 이러하니 사회에서의 여성실종 현상은 말하여 무엇 하랴. “여성실종”이라고 해서 현재 노동시장의 밑바닥을 채우고 있는 여성 비정규직과 돌봄 여성노동자들을 무시한 것이라고 욕하지 마라. 어디까지나 학교에서 잘 나가던 숱한 여학생들이 사회에서는 보기 힘든 증상을 빗대어 보고 싶어 붙인 이름이니.
호주제 폐지 이후 : 신(新) 가부장제
해방 이후 현재까지 우리 사회는 여성의 평등권 실현을 위하여 남녀균등상속제 도입과 부부재산분할제도의 도입 등의 가족법제 정비, 공직 등에의 여성할당제 도입, 성희롱의 법제화, 호주제 폐지, 자녀의 성에 대한 부성(父姓)원칙의 폐지 및 철옹성 같기만 하던 종중과 YMCA와 같은 단체 내에서의 평등 문제들까지 다뤄내는 쾌거를 일궜다. 사회현실은 그렇지 못한데, 여성운동의 성과로 우리 사회는 법적으로는 완전히 평등한 사회를 이룬 것처럼 보이는 신기루 현상을 겪고 있다. 학교 안과 사회에서 극명히 대비되는 여성들의 지위, 가족 내에서의 뿌리 깊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부당한 대우 및 여성들을 딸과 돌봄 노동, 감정 노동의 담당자로만 보는 의식은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렇듯 형식적, 법적 평등의 실현에도 불구하고 온존하는 남녀차별의 현상은 남녀성별분업을 기반으로 하는 가부장제 사회구조, 의식과 관련이 깊다. 호주제 폐지 이전에는 민법에 “가(家)라는 개념을 두어 그 장(長)으로 호주제도를 두었다. 호주제는 가부장제 사회를 유지·발전시키는 주범으로 낙인찍혀 결국 폐지되었다. 동시에 자녀들의 성(姓)에 관해서도 유연하게 제도화되었다. 호주제 폐지 이후 우리사회는 남녀차별의 의식 측면에서 개선되었는가? 자녀들의 성(姓) 변경에 관한 제도운용 실태를 보면 가부장제 사회구조, 의식구조는 그 외향만을 살짝 바꾼 신판 가부장제임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현행 민법은 결혼 시에 자녀의 성을 정하지 않으면 아버지의 성을 따르도록 하고 있다. 이후 자녀의 성이 문제 되는 경우는 주로 이혼 후 친모가 자녀를 키우게 되는 경우인데 친모가 재혼하지 않고 자녀의 성을 친모의 성으로 변경코자 하는 경우에는 더 엄격하게 심사하고 친모가 재혼한 경우에 자녀의 성을 계부 성으로 변경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경향에 있다. 종전의 성 불변의 원칙이 부계혈통에 의존하고 있었음에 비해 현재는 자녀들의 성이 계부의 영역으로까지 확대된 남자들의 성(姓)질서로 재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자녀가 태어날 때 자녀의 성을 아예 친모의 성으로 선택할 수 있는 사회, 이후에 자녀들의 성이 친부나 계부와 다르다고 하여 이상하게 보지 않는 사회로 나가지 못하고 자녀의 성은 아버지나 남자의 성을 따라야 한다는 구조에 갇혀 있다.
가부장제이든 신 가부장제이든 이러한 사회구조와 의식을 끊임없이 확대재생산 하는 기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제사와 명절문화를 꼽을 수 있다. 이혼 상담이 명절 이후에 폭증한다는 것은 이미 통계로 입증되고 있다. 제사의식과 종교의식이 그 사회를 통합시켜 내는 것의 힘에 대해서는 이미 ‘자살론’으로 유명한 에밀 뒤르켐이 지적한 바 있다. 에밀 뒤르켐은 그러한 힘을 긍정적으로 본 듯하나 우리 사회에서 제사와 명절은 남녀에게는 분란거리이자 가부장제를 재생산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여성운동의 미션 3.0
명절, 제사, 가족의 성(姓) 문제는 여태껏 우리 여성운동에서 금기시되어온 주제인지 모르겠다. 이를 건드리는 순간 여성운동의 대중적 기반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작용했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이제는 이 문제에 관해서 다뤄야 하고 다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심도 있고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그래야만, 학교 내에서만이 아닌 사회 내에서의 여성들의 활약을 기대할 수 있다. 여성들의 사회에서의 실종을 막아야만 미래세대의 재생산 문제도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여성단체에 부여된 이 미션은 종래 여성문제를 폭로하는 단계와 법제화하는 단계를 뛰어넘는다는 의미에서 미션 3.0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최은순 ●
현재 한국여성민우회 이사이자, 변호사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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