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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4월호 [민우칼럼 창] 감옥으로부터의 편지
감옥으로부터의 편지
하승수 ● 한국여성민우회 이사
최근에 감옥에 계신 어떤 분으로부터 편지를 한 통 받았습니다. 아는 분도 아니고, 어떤 죄목으로 감옥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 그런 분으로부터의 편지였습니다. 편지에 적힌 자기소개는 단지 ‘상당히 긴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지금까지만 해도 꽤 오랜 기간 감옥에 있었다.’라는 사실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저보고 변론을 맡아 달라거나 접견을 와 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저는 변호사 휴업 중이라 그런 요청을 받아들일 처지도 못됩니다.^^ 그분은 전혀 다른 종류의 도움을 요청해 왔습니다. 편지 내용 일부를 소개합니다.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 음울한 일상 속에서 그래도 무언가 희망을 찾아보고자 하는 일념으로 이렇게 편지를 드립니다. ……… 이곳에 있는, 아니 전국 교정기관의 수용자들은 법령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 중 하나일 텐데, 자신에게 필요한 공개된 자료조차도 구하기 어려운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 처우에 관한 규칙 하나, 궁금증에 대한 자료 하나, 제때 자신의 손으로 구해 볼 수 없고, 때로는 이런 자료들을 구하기 위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들 ……… 솔직히 이곳에서 정보공개청구를 하면 대부분 ‘비공개’나 ‘부분공개’로 결정이 됩니다. 허면 무지하고 돈도 없는 수용자들은 대부분 그 결정이 옳은 결정인 줄 알고 자신들의 권리를 중도에 포기해 버리는 게 이곳의 실정입니다. ……… 저 같은 사람에게 우리가 같은 인간이라는 희망을 보여주십시오. 그 희망을 보게 된다면 앞으로 어떤 일에도 섣불리 절망할 것 같지 않습니다.”
이 분이 요청한 것은 교도소의 정보공개 문제를 다룬 사건의 판결문과 정보공개에 관한 책이었습니다. 사실 바깥에 있는 사람이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자료인데, 그걸 구하기가 어려워서 제게 부탁해 온 것입니다. 아,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정보공개청구가 뭔지 잘 모르시는 분도 있겠군요. 정보공개청구는 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정부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대통령이든, 국회든, 장관이든, 교도소든 모두 정보공개를 할 의무가 있고,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그것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감옥에 갇힌 사람이 무슨 정보공개청구를 하느냐?”라고 의아해 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감옥과 같은 폐쇄적인 공간일수록 인권침해의 소지도 많고 여러 부조리가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매일매일 피부로 겪는 사람들이 재소자인 만큼, 교도소 행정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많이 있을 수 있을 겁니다. 아마도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절박한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에게 적용되는 교도소의 각종 지침, 자신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부딪히는 교도소의 운영상 문제들. 이런 문제들에 대해 아는 것은 당당한 한 명의 인간으로 생활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게 편지를 보낸 분도 그런 문제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교도소 당국은 정보를 잘 공개하지 않았나 봅니다. 그래서 관련된 자료를 구해보려고 제게 편지를 한 것입니다. 편지를 읽는데, 컴퓨터로 써서 출력한 그런 편지가 아닙니다. 편지지 4장에 볼펜으로 꼭꼭 눌러 쓴 편지입니다. 읽으면서 코끝이 좀 시큰했습니다. 사실 그런 편지를 받아 본 지는 참 오래되었습니다.
편지를 받고서 갈등을 좀 했습니다. 답장해야 하나? 책을 보내야 하나? 전혀 모르는 사람의 편지에 꼭 반응해야 하나? 이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큰 봉투를 하나 찾아서, 제가 쓴 정보공개에 관한 책 한 권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A4 지에 간단하게 답장을 써서 같이 넣었습니다. 봉투에 넣은 책은 저와 다른 분들이 같이 쓴 『정보사냥』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재미로 읽을 책은 못되고, 공공기관에 숨어 있는 정보를 캐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필요한 책입니다.
책과 답장을 넣은 봉투를 우체국에 가서 부치고 돌아오는데, 마음이 홀가분했습니다. 절박한 편지를 읽고 아무 답을 안 했다면, 두고두고 마음이 무거웠을 것 같습니다. 그랬는데 며칠 후에 다시 편지가 왔습니다. 편지봉투를 열어보니, 또 볼펜으로 눌러쓴 편지가 들어 있고, 우표가 들어 있습니다.
“먼저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저희들에게 많은 힘과 용기가 될 것입니다. …… 당당하게 행동하겠습니다.”
우표를 보니, 500원짜리 우표가 50장이나 됩니다. 책을 보내줘서 너무 고맙다는 말과 함께 ‘소중한 데 쓰십시오.’라면서 우표를 보내셨습니다. 편지를 받고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그리고 소수자나 약자의 권리에 대해 어떤 시선으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제가 편지를 보낸 분에게 감사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모든 인권문제는 누구의 시선으로 보는가에 따라 많이 다르게 보입니다. 요즘 많이 논란이 되고 있는 학생의 인권, 교도소에 있는 재소자들의 인권… 이런 문제들은 한 번쯤이라도 당사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승수 ●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 관심사는 많아서 정보공개, 지방자치, 풀뿌리운동, 아이들이행복한세상만들기 , 인권, 정부는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 등등이구요. 올해부터 한국여성민우회이사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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