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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4월호 [민우 ing] 정부여 제발, 돈이 아니라 의미를 받아라!
정부여 제발, 돈이 아니라 의미를 받아라!
이임혜경(오이) ●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재밌는 일이 아니라면 적어도 재미있게는 써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일은 거의 매일 터지고 대응해야 할 사안이 반복되다 보니 그 일이 그 일 같고, 이 얘기가 저 얘기 같다. 거기다 여성 사안이라는 게 그렇더라. 뭐 하나 단순한 게 없다. 설명이 길고 내용이 복잡하다. 욕심을 버리고, 귀 기울이지 않을 것 같은 무기력감을 오늘도 극복해 보리라.
‘수정을 허용하지 않는 계획은 나쁜 계획이다’
때는 2010년 어느 날, 상담소는 공문 하나를 받았다. 성폭력상담소가 정부지원 ‘일자리 사업’ 신규 대상이니 일모아시스템에 시설종사자 개인정보를 입력하라는 것이다. 황당했다. 심각한 고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고민을 이해하고 있는바 아니나 10년 넘게 활동하고 있는 상담소가 ‘신규 일자리 사업’이라니 말이다. 거기다가 나의 개인정보는 왜 입력하는 것인가? 신규 고용자 통계에 내가 잡히는 것? 상담소 활동가들이 다 ‘일자리 창출 사업’의 성과로 포장되는 것이로구나.
그래서 따져보기로 했다. 전국 수 백 개의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등의 상담소와 쉼터가 ‘일자리 사업’장으로 분류되는 것이 맞는지. 여성가족부, 노동부로, 결국 총괄을 맡고 있는 국무총리실 고용·사회안전망 태스크포스팀 담당자에게까지 전화하였다. 어느 한 곳도 뾰족한 대답은 없었고 선정과정의 책임은 돌고 돌았다. ‘일자리 사업’에 대한 의미와 선정 방법에 대해서도 질문했지만, 이 역시 명확한 것이 없었다. 아, 정말 허술하다. 하지만, 상담소의 선정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다’는 얘기가 나오긴 하더라. 수정을 요구했지만, 결론은 ‘실적 때문에 어쩔 수 없다’였다. 부처의 답변을 정리하자면, ‘일자리 사업’을 위해 지난해 총리실은 모든 부처에게 신규 일자리 사업을 한 가지 이상 내도록 요구했다. 새로운 사업 영역 개발이 안 된 부처도 ‘무조건’ 사업 보고를 한 것이다. 그리고 청와대에 이미 보고가 됐고, 실적은 올려야 하고(안 하는 부처는 완전 티 난다), 올라간 실적을 빼 달라는 우리의 요구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각 부처의 곤혹스러움은 이해가 된다. MB는 아주 성과를 좋아하는 분이시니 말이다. 하지만, 어이는 없다. ‘일자리 창출’을 해서 국민을 복(?) 되게 하려는 마음보다 눈에 보이는 실적(말 그대로 전시행정)에 연연해 할 수밖에 없는 그들이 난감했다. 구색 맞추기용 사업 보고,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
‘수정을 허용하지 않는 계획은 나쁜 계획이다’라는 말이 있다. 4대강 죽이기 사업의 예에서 이미 다 아는 바이기는 하지만, MB정부는 나쁜 계획만을 세울 뿐만 아니라 과도한 성과, 실적주의에 대한 아집을 갖고 있다. 이와 관련된 또 짧은 얘기를 시작해 보겠다.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단체 인센티브 반납 사건이다.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단체 인센티브 반납 사건
때는 또 2010년, 여성폭력 관련 시설 363개를 대상으로 시설평가가 있었다.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는 04년부터 3년마다 평가를 해 왔고, 작년은 그 세 번째였다. 그리고 여가부는 이번에 처음으로 이 평가결과를 바탕으로 상위 30% 내에 해당하는 우수(?)시설에 인센티브를 지급한 것이다. 인센티브는 아시다시피 ‘어떤 행동을 취하도록 부추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자극(돈)’을 의미한다. 여가부도 인센티브 지급 목적을 시설종사자의 사기진작, 피해자에 대한 서비스 질 향상이라 밝혔다. 그러나 인센티브 얘기가 나오면서부터 여성폭력 관련 단체들은 일관되게 주장하였다. 질적 평가이기 보다는 서류 중심의 평가방식이 변별력이나 신뢰도가 낮을 수밖에 없고, 그 결과를 가지고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것은 단체 간 불필요한 경쟁을 불러일으킬 뿐 여성폭력피해자 지원 개선과는 무관한 일이라는 것이다. 또한 시설환경 및 안전도, 운영관리 및 인력관리, 서비스 및 인권보호, 지역사회연계, 종사자 근무환경 등의 평가영역은 정부가 원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인센티브를 내 건 평가방식은 여성폭력 관련 단체들의 길들이기로 활용될 소지도 있다. 무엇보다 주장의 핵심은 4억이 넘게 책정된 인센티브 예산으로 단체를 줄 세우기보다는 피해자지원을 위한 예산으로 쓰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고 과제라는 것이다. 여가부는 소모적이고 일회적인 예산 편성이 아니라 피해 당사자의 욕구와 요구에 부합하는 실제적인 예산 편성에 주력해야 한다.
‘인센티브 예산을 피해자 지원예산으로!’
이런 요구들을 담아 올해 초, 1월 6일에 여성폭력피해자 지원단체들은 ‘인센티브 예산을 피해자 지원예산으로!’라는 주장을 하며 인센티브 반납 기자회견을 하였고, 3월 9일에는 여성폭력피해자 지원 예산 정책의 문제점을 짚는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에서 여가부의 입장은 간단했다. ‘인센티브는 책정된 것이니 어쩔 수 없다’. 열악한 재정에 한 푼이라도 아쉬운 상담소나 쉼터들이 인센티브 반납을 결정한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반납을 한 것은 여성폭력피해자 지원 정책을 마련하라는 강력한 의지 표명이었음에도 여가부는 ‘해당 기관의 자율적 판단사항’이라는 성의 없는 답변을 보내오기도 했다. 한 회의 자리에서 모 국장은 이 단체들의 ‘정치적 음모’라는 발언을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어이가 없다. 정부는 인센티브 반납의 의미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 예산을 마련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심지어 작년 여가부의 한 관계자는 4대강 개발 때문에 지원 예산이 동결될 것이라는 말을 내뱉기도 했다. 그런데 기획재정부가 평가에 따른 인센티브 예산은 잘 준다. 왜? 피해자 지원을 놓고 서로 실적 경쟁을 시키는 인센티브 제도가 더 좋은 피해자 지원이나 여성폭력근절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면 정부의 인센티브 정책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쉼터의 특성상 거의 맨손으로 들어오는 피해자들에게 제공되는 생계비는 주·부식비와 취사연료비를 합쳐 1인당 하루 4,280원에 불과하다. 물가수준을 고려할 때 이는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금액이다. 뿐만 아니라 퇴소자자립지원의 확대, 입소자 직업 훈련비의 이관, 치료비 삭감의 문제, 여성폭력피해자 지원 시설의 열악한 환경, 10년째 큰 변동 없는 운영비 등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다 합쳐봐야 큰 돈도 아니다. 정부가 원하는 ‘서비스 수준 제고’를 위해서는 규제방식에 지나지 않는 인센티브가 아니라 여성폭력근절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최우선이다. 평가를 안 받겠다는 것도 아니고, 단지 인센티브 예산으로 열악하고 긴급한 부분을 먼저 지원하라는 것이 그렇게 이해하기 힘든 주장인가.
성과주의나 경쟁 논리는 이제 그만 하자. 여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고 활동하는 단체들에게 돈 몇 푼 쥐어주며 경쟁하고 분열하게 하지 말았으면 한다. 후원자를 조직할 여력도 없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상담소나 쉼터에게 박탈감만 안겨주는 제도가 도움이 되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인센티브 반납의 의미에 좀 더 귀 기울여 주길 바란다. 정부여,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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