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6월호 [문화산책] 그 시절, 일일 드라마에는 ‘가족’이 있었다
[문화산책]
그 시절, 일일 드라마에는 ‘가족’이 있었다
최지은 ● 텐아시아 기자
여덟시 반 드라마의 추억
안방 문갑 위에는 오래된 금성 텔레비전이 있었다. 전자레인지처럼 네모지고 육중한 상자 모양에 볼록한 회색 스크린이 달린 텔레비전이었다. 채널을 바꿀 때는 리모콘 대신 텔레비전 앞에 바싹 다가앉아 오른쪽 위에 달린 조그만 손잡이를 힘주어 돌리면 뚝-뚝-뚝-뚝 소리를 내며 2번에서 7번, 9번, 11번이 차례로 켜졌다.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말이 하루 종일 쏟아지던 2번이 AFKN이고 7번은 KBS, 11번은 MBC니 하는 것들을 알게 된 것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여덟시 반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것은 할머니 때문이었다. 부모님은 아예 TV란 것을 비행과 성적 하락의 주범으로 여겨 멀리 하는 분들이셨지만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던 해 우리 집으로 들어오신 조부모님의 안방은 불가침의 영역이었다. 전기세가 아깝다며 일찌감치 형광등을 꺼 버리시던 할머니 때문에 컴컴한 방에서 보는 <전설의 고향>은 한층 더 무서웠고 김수현의 <목욕탕집 남자들>은 방 세 칸짜리 조그만 아파트에 여섯 식구가 복닥거리며 살던 우리 집을 보는 것 같아 좋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었던 것은 저녁 먹은 뒤, 뉴스 시작하기 전에 보던 일일 드라마였다.
최민수 주연의 사극 <꼬치미>는 아직도 엔딩에서 흘러나오던 주제가가 생생할 만큼 손에 땀을 쥐고 본 드라마였고, 주현과 꼬마 양동근의 “그랬걸랑요”를 유행시켰던 <서울 뚝배기>부터 쓸쓸하면서도 소박한 일상을 살아가는 노부부를 그린 <옛날의 금잔디> 까지 저녁 시간대 텔레비전에는 꼭 세상 어딘가에 진짜로 살고 있을 것 같은 얼굴들이 많았다. <소문난 칠공주>니 <수상한 삼형제>로 요즘 ‘막장 드라마’의 대명사로 불리는 문영남 작가의 초기작 <바람은 불어도>가 형제간, 며느리간, 고부간의 소소한 갈등을 얼마나 생생하게 그려냈고 훈훈하게 풀어갔는지, 아마도 보지 않은 사람은 믿지 못할 것이다. 그 시절, 일일 드라마에는 ‘가족’이 있었다.
시청자들의 욕망이 만들어낸 괴물
대학에 들어가고 직장에 다니면서 한동안 일일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는 우리 집에서는 아무도 일일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 하지만 일일 드라마의 시청률은 여전히 높았다. 가진 것 없고 가족도 없거나 있어도 없느니만 못한 빚투성이 아버지 때문에 고생하는 젊은 아가씨, 혹은 미혼모가 우연히 만나게 된 부잣집 아들과 사랑에 빠지면서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남자의 번듯한 가족구성원으로 편입되는 이야기는 주인공 이름과 직업만 바뀌며 무수히 재탕된다는 것은 매일 챙겨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시청률 40%를 넘나들며 한 획을 그은 작품이 <너는 내 운명>이었다. 입양, 장기 이식이라는 소재와 함께 “편견과 상처를 극복한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그린다던 기획 의도는 등장인물들의 핏줄에 대한 집착 앞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새벽(윤아)이 영숙(정애리)에게 입양되어 ‘정상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것은 영숙의 친딸의 각막을 이식받은 인연 때문이며, 부잣집 아들 호세(박재정)와 결혼해 시어머니로부터 갖은 구박을 받던 새벽의 ‘해결사’는 미국에서 날아온 부자 친모다. 아무리 예쁘고 밝고 싹싹한 성품이어도 ‘입양된 딸’이라는 벽을 넘지 못하던 새벽은 ‘부자 엄마의 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야 든든한 지위를 얻고, 친모와 시모가 동시에 백혈병에 걸리자 시모에게 골수 이식을 해 줌으로써 딸처럼 핏줄로 이어진 며느리로 인정받는다. 딸이 좋은 집안의 아들과 결혼하기를 바라고, 아들도 (알고 보면) 좋은 집안의 딸과 결혼하기를 바라며 그것을 위해서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감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시청자들의 욕망이 만들어낸 괴물이 일일 드라마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장서희가 눈가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편도 못 알아보는 여자로 변신했던 복수극 <아내의 유혹>이나, 남매처럼 자라며 사랑에 빠졌던 두 남녀가 부모들의 악연으로 끝없는 복수에 복수를 반복하는 <황금물고기>에 이르자 일일 드라마는 더 이상 가족극이 아니라 과장된 코믹극의 영역에 접어들었다. 요즘 저녁 시간 식당에 가면 십중팔구 보고 있는 <웃어라 동해야>도 만만치 않다. 주인공이 새벽이에서 미남 요리사 동해(지창욱)로 바뀐 것만 제외하면 <웃어라 동해야>는 같은 작가가 쓴 <너는 내 운명>의 붕어빵이다. 어릴 때 사고로 지능이 멈춘 채 미국으로 입양되었던 엄마 안나(도지원)를 극진히 모시며 악녀인 옛 애인 새와(박정아)의 갖은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살아가던 동해는 결국 자신이 일하는 호텔의 소유주가 외할아버지임이 밝혀지며 인생 역전한다. 친아버지 제임스(강석우)와의 징글징글한 엇갈림, 한 회 만에 들통 나는 새와의 음모, 위기에 몰렸을 때 알려지는 여주인공의 임신 등 기계적이고 뻔한 에피소드를 반복하며 횟수만 늘려가는 드라마에는 ‘인간’이 없다.
혹시 시청자를 만만하게 보기 때문에 이토록 억지스런 이야기를 당당하게 펼쳐놓는 것은 아닐까 가끔 생각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고된 하루를 보낸 수많은 여성 시청자들이 단 30분이나마 현실을 떠나 몰입하고 즐길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 자체를 고맙고 반갑게 여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은 내게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할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이 ‘숭악스런’ 드라마들을 손녀와 함께 보시려 하지는 않았을 거다. 딸로 엄마로 며느리로 시어머니로 칠십 몇 해를 사셨음에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 여자들에게 많이 놀라셨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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