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6월호 [기획] 내 방 이야기 들어볼래?.jpg
[기획] 버지니아울프 70주기를 추모하며, 2011년 “자기만의 방”
나, 여자, 내 하루와 내방을, 기억하며.
: 내 방 이야기 들어볼래?.jpg
자의반 타의반 독립에 성공한 그녀들의 방을 공개한다. 네모나고 소중하고 고전적인, 그 곳 있다면 먼지도 숨결 같다던 달빛, 꼬깜, 물결, 밈, 용가리의 비밀 같은 <내 방>일기. |
방앗간(房我間) 나는 네모나다. 내 방이 네모나기 때문이다. 그럼 동그란 방이면 나도 동그랄까? 그것은 아니다. 내가 네모나니 방도 네모나고, 방이 네모나니 스스로 안정감이 느껴지는 것뿐이다. 네모난 방의 네 귀퉁이엔 침대, 옷장, 피아노, 화장대를 블록 맞추듯 끼워 놨다. 안정감 있는 구도. TV속 여주인공 방의 고전적 구조다. 그래. 난 고전적이고 올드한 구조의 사람이라고 느낀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조금은 안정되었다고도 말하고 싶다. 맥락적으로는 보수적임과 함께하는데, 이게 또 꼭 보수적인 것도 아닌 것이 애매할 때가 많다. 그냥 고전적이라고 해두고 살고 있다.
화이트와 베이비핑크로 발라놓은 방 한쪽 벽에 나란히 줄지어진 분홍색+연두색 꽃벽지로 포인트를 주었다. 어느 정도 충동적임을 의도했지만, 그래봤자 핑크의 연장선상이라 기본 컨셉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어설픈 일탈 본능이다. 안정되고 소용돌이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어 하는 나는 그 영역이 허락하는 선에서밖에 일탈을 하지 못한다. 포인트인데 도데체가 포인트가 없다. 포인트를 찾을 수 없으니 임팩트도 미미하다. 내부는 엄청난 일탈이고 소용돌이인데도 외부는 고요하기만 하다. 그래놓고 ‘나 이렇게 큰 포인트 벽지가 있어!’하니 알아볼 리 만무하기만 한 소통의 연속이다.
바이엘 상권 32번에서 멈춰진 9살 꼬마의 로망인 삼익피아노와 16년 된 주니어시절의 하이글로시-시트지로 시간을 덧입힌-옷장과 스물 셋 아가씨의 화장대를 지나 이제 서른의 허리를 받쳐주는 튼튼한 스프링 침대가 한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 과거지향적인 나답게 미래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과거의 추억과 시간을 곱씹으며 그 안에서 안정을 느끼며, 미래는 방밖으로 밀어놓고 살고 있다.
달빛 ●
옥상 달빛 맞은 편에 살고 있는 달빛
20살이 땡 치면 고시원에라도 나올 기세였다. 가위에 눌리고 악몽을 이 백 개 쯤 꾸어도 혼자 드는 잠이 무서워도 나는 내 공간이 필요했다. 24살 때 꿈을 이뤘다. 내 첫 번째 방은 모텔이 지저귀는 수유리 공기 좋은 방. 가격은 1,000/30. 월세 내다가 허리 휘었다. 방에 불이 켜져 있는지 누가 드나드는지도 참견하는 주인아줌마의 등살에 못 이겨 뛰쳐나왔다. 두 번째 방은 아현동 공포의 108계단. 밤10시만 되도 어둠이 공격하는 그 계단에 설 때면 부모 지붕 없이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대해 곱씹는다.
작년에 만난 세 번째 방은 은평구 증산동. 심란해진 일요일 밤에 나가 불광천에서 산책을 하면 머리가 개운해진다. 이곳에서 처음 만난 올해 봄, 집 앞 골목에 벚꽃이 피었다. 내 방은 정확히 TV를 보기 위해 기획되었다. 토요일 아침, 숙취로 해묵은 몸을 뉘일 침대와 대각선으로 위치한 TV만 있으면 나는 50시간 넘게 집에 박혀 있을 수 있다. 2만2천원 짜리 조악한 파란색 구름 커튼과 엄마가 선물한 ‘이부자리’ 침대보의 색조합이 엉망이다. 자취 생활 최초로 스티커벽지를 붙이는 노고도 마다않았다. 방을 갖는다는 것은 그런 거다. 내 냄새가 나는 내 방을 내방 TV만큼 사랑한다.
꼬깜 ●
가지 말라고 했다.
영혼 같이 마른 사람에게
잘 숨 쉬라고도 했다.
가시 같은 오늘이다.
#1. 베란다
피망, 가지, 오이, 상추, 토마토, 고추, 부추, 파 등을 집 앞 텃밭에서 애지중지 가꿔온 경험이 있다. 지금 사는 이 집은 볕이 많지 않아, 예전처럼 먹거리를 심진 못한다. 대신 동네 여기저기서 찜 해 놓았다가 털어 온 나팔꽃 씨를 받아 심고 있다. 올 봄에도 작년에 거두어둔 씨를 받아 심었더니 싹이 예쁘게 돋았다. 여기 저기 씨를 분양했는데 다 싹이 돋았다니 참 기쁘다. (아직 남은 나팔꽃 씨 분양 문의, 환영!)
떡잎에서 벌써 덩굴손이 나온다. 좀 있으면 베란다 ‘쇠창살’을 감고 올라갈 테다. 햇빛에 달구어진 쇠창살이 제법 뜨거울 텐데도 돌돌 감고 올라가 꽃을 피울 거다. 아! 창살에 감겨져 있던 겨우내 마른 작년 덩굴을 걷어내지 말 것을. 괜히 깔끔 떤다고 한 행동이 후회된다. 힝.
#2. 욕실
화장실이 집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 만큼, 화장실에 창문이 있느냐, 없느냐 만큼, 화장실에 욕조가 있느냐, 없느냐 로도, 그 집 규모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올 해 살던 집 전세를 몇 천 올려주고는, 플라스틱 욕조를 구입했다. 스스로 집 규모를 늘렸다고나 할까. 책 읽기, 음악듣기도 심지어 멍 때리기도 욕조에 앉아서 하면 더욱 좋은 건 왜일까? 따뜻한 물 속에 많은 것이 녹아들어 가는가, 물 밖에 나올 때 가뿐해져서 참 좋다.
물결 ●
요즘 이소라, 정엽, 에픽하이 노래 덕에
너무 즐거웁다. 꺄악!
이번 봄에는, 집 앞 골목에서 흩날리는 벚꽃이 유난히 아름다웠다. 따로 멀리 벚꽃 구경을 가지 않아도 집을 나오며 들어가며 길가에 늘어진 벚꽃을 감상하자니, 오버를 좀 보태서 “신이시여, 제가 이렇게 좋은 곳에 살고 있단 말입니까”란 탄성이 절로 나오곤 했다. 그 곳은 바로 내가 첫 정을 듬뿍 들이고 있는 나만의 보금자리, 스윗 홈이다.
작년 이맘때쯤, 뭣도 모른 채 (세상 물정에 어두웠달까) 부모님에게서 독립할 집을 알아본다며 설레고, 또 분주했었던 기억이 난다. 서울 토박이인 내가 부모님 집이 서울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게다가 “시집도 안 간 다 큰 처녀”가 같은 서울 하늘 아래로 독립을 한다니, 그 중간 과정이야 얼마나 유난스러웠을지 설명을 안 해도 예상 가능하지 않은가. 독립이야말로 기억도 나지 않는 어려서부터 내 삶의 절대불변의 숭고한(응?) 목표였다. 그런 내게 쏟아지던 “대체 왜?”, “고생스럽게 뭐하러?” 등의 반응은 잠시 날 어지럽게 했지만 언니들의 격한 응원과 지지 속에 나는 꿈에도 그리고 그리던 “독립”을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마치 오래전부터 잘 살고 있었던 것 같은 자율적이고 안정된 나의 공간에서, 새로운 꿈을 준비하고 있다. 내 년 봄, 다시 벚꽃이 흩날릴 즈음에는 그 꿈을 실현하는 과정 중에 있기를, “아! 멋진 내 인생의 봄날이다.”
밈 ●
선천적으로 새가슴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누가 뭐래도 고집은 참 센 자부심 만땅의 페미니스트
참으로 난감하다. ‘내 방’이 없다고 늘 생각해 왔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나. 결혼 9년 차, 4인 식구. 서울 시내 방 세 칸짜리 아파트에서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분명 운이 꽤 좋은 거다. 그러나 정확하게 따져보면, 이 집에 대한 나의 직접적인 ‘경제적 기여도’는 ‘0’이다. 계속되는 임신, 육아 때문에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좀 억울하긴 하지만, 왠지 내방 운운하는 것은 떳떳하지 못하다고 느껴진다.
잠깐의 여유도 허용되지 않는 숨 가쁜 일상. 가족들이나 TV소리로부터 분리되어 혼자 조용히 단 5분 만이라도 숨 돌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늘 불평해왔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다. 아이들은 컴퓨터와 책장이 있는 서재를 ‘엄마 방’이라고 부른다. 온 식구가 잠만 자는 안방은 ‘아빠 방’이란다. 항상 아빠는 침대에 누워서 잠만 자고, 엄마는 책상에서 공부하기 때문이란다. 응? 내가 언제? 사실 대부분은 인터넷 서핑 중이었는데, 히힛!
어느새 식구들이 모두 내 방을 인정해주고 있었다. 그럼 나만 내 방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네. 목표를 잊지 말고 천천히 준비해 나가자. 준비된 여성주의자! 언젠가는 내 ‘돈’도 들어간 진짜 내 방을 갖고 싶다.
용가리 ●
에너지가 너무 넘치는데 쓸 데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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