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6월호 [기획] 우리는 매일 아침 능陵에서 눈을 뜬다
[기획] 버지니아울프 70주기를 추모하며, 2011년 “자기만의 방”
우리는 매일 아침 능陵에서 눈을 뜬다
반지하에 사는 여성들의 모임
‘반만 올라가면 일층’
선백미록(신기루) ● 한국여성민우회 반차별회원팀
나는 기묘한 무덤에 거주중이다. 부동산 계급사회에 살면서 2년마다 이사를 다니거나 혹은 그 보다 못 살고 나오기를 반복해 결국 또 500/30짜리 집을 구하러 다니는 동안 풀이 죽고 쓸쓸했다. 그렇게 불안과 우울 속에 도시빈민의 한이 깃들고 사회안전망도 없이 방치된, 독거인구의 한 부류에 합류해 반지하에 살게 됐다.
“내 인생이 이게 뭐야, 지하에서 깡패랑 술이나 마시고.”1)
어디선가 초파리가 날아든다. 요즘 부쩍 초파리가 늘었다. 지하세계에는 이 건물의 모든 하수가 모여든다. 그 물과 배수관이 내는 텅텅꾸르르 소리, 습기, 냄새, 벌레와 함께 산다. 바람은 절대 불지 않는다. 공기는 정체되어 있다. 햇볕으로 말할 것 같으면 빛은 겨우 들어오는 구역이 있지만 해를 본 적은 없다. 곰팡이가 걸레로 닦으면 없어진다는 것을 배운 이사 전날 밤 고개를 270도 꺾으니 달이 보였다. 지상을 달리는 것들은 오토바이, 자동차를 막론하고 집의 창들을 흔들어 댄다. 내 방 창문 바로 앞에 주차하면서 빨간 빛을 쏘아대고 지축을 흔드는 윗집 사람(그 차)을 노려보는 것은 자다 깨서 하는 짓이다. 이 모든 소리의 팽창과 빛의 차단 속에서 신경은 날카로워지고 기분은 축축하다. 옆집에 두 남자가 산다는 것을 들은 후로 옆집과 너무 붙어있는 현관을 열 때마다 손이 떨린다. 어느 신경정신과 의사는 반지하 사는 사람들이 햇빛을 못 봐서 우울하단다. 가뜩이나 인상 우울한데, 낙인만 커져가겠다. “내 인생이 이게 머야?”라며 지하에서 고양이처럼 웅크린다.
너는 신석기에 생겨 오늘날 도시빈민의 거할 곳이 되었구나
이 땅에 처음으로 반지하가 생긴 건 신석기 시대. 도시에 처음으로 지하 거주자가 생긴 것은 1920년대 초반 가난한 사람들이 제방이나 강변 등을 무단 점거해 초라한 움막을 짓고 산 것이고 그것은 신석기 시대의 토굴과 다르지 않았다. 정부의 묵인 하에 건축법은 점점 완화되어 지하 방공호는 주택공간으로 개조됐고, 단독, 다세대, 연립주택의 지하 곳곳에 반지하 집들이 생겨났다.2) 2005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반지하주택은 58만6649가구로 전체의 3%이다. 이 중 94%가 수도권에 살고, 서울인구 340만 중 36만이 반지하에 산다. 그리고 이들 중 82.7%가 세를 얻어 사는 이들이다. 2005년 한국도시연구소가 서울·경기지역의 반지하주택 표본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반지하주택의 43.3%가 최저 주거기준3)에 미치지 못했다.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은 가난하다. 그 중 혼자 사는 사람은 외로울 것이고, 여성들은 그 존재로 인해 드는 생각도 많고 심란할 것 같았다. 하여, C, H, B를 만났고, 반지하 사는 여성들의 모임. ‘반만 올라가면 1층’이 시작됐다.
밤의 이야기 수집자들- 기이한 공간, 주인, 변태, 시선
우리의 특징은 지방에서 태어나 서울로 이주한 자들이었고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변변한 직장 없는 이들이었다. 활동가이거나 비정규직이거나 대학원생. 주거비로 월수입의 30%이상을 지출하고 있다. 물론 타고난 것도 있지만 4명의 지하생활자는 모두 야행성에 가깝다. 캐릭터는 (반지하에 살면 우울하다는 견해와 달리) 때로 경박하기까지한 만담꾼들이다.
월세부터 까고 집 구조를 그려가며 이야기는 시작됐다. 4000~5000짜리 집에서 30~40만원의 월세를 내며 살았고, 그 집들은 각기 묘한 군데가 있었다. 좀 나은 반지하 집들은 비탈에 있는 경우가 많아 한 쪽은 지상이다. 그러나 경사가 좀 심한 집에 들어간 B는 집의 바닥 자체가 기울어 있어, 자다가 머리에 피가 쏠려 깬다고 한다. 원래 방은 3개지만 불법증축으로 5개 공간까지 늘어나 화장실이 집에 한 가운데 있고 어떤 방을 거쳐야만 다른 방이 나온다. 그 방에는 곱등이가 산다. C의 집은 비좁은 화장실에 세탁기를 둘 수밖에 없어 변기와 세탁기가 바짝 붙어 있다. 습습한 화장실에 있던 세탁기는 방전이 됐는데, 거기서 용변을 보던 C는 감전이 됐다. 게다가 낮에는 햇빛이 없는데 밤에는 창문을 향해 정확히 내리꽂히는 가로등 불빛 때문에 곤욕이다.
H의 집에는 낯모르는 대학생이 갑작스러운 방문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자기 집에서 보니, 어떤 남자가 한 달째 H의 집을 들여다보고 있더라는 제보를 했다. 여자들만 사는 집을 지켜본 남자나 제보한 남자나 소름끼친다. 교묘한 돌담 밑에 위치한 창은 누군가 숨어서 은밀하게 지켜보기 좋다. 창을 열어 놓고 살아야 되는 여름은 변태뿐 아니라 침수 때문에 공포이다. 지상에 물이 흐르고 배수시설이 엉망인 서울에서 여름은 반지하 생활자들에게 초긴장의 계절이다. 게다가 반지하 집들이 많이 잠긴 작년에 100만원씩 나온 보상금을 주인들이 가로챘다는 흉흉한 이야기도 나왔다.
B는 침수를 겪은 고수였다. 순식간에 무릎까지 물이 차올라 지갑만 들고 나왔다. 말할 것도 없이 천장, 벽 등 집은 엉망이 됐고 거기서 나와 다른 곳에서 지냈다. 그런데 주인은 그 집을 수리하는 2달 동안의 월세를 보증금에서 제했다. 각종 집수리는 또 어떤가? B가 아주 성격이 강한 언니와 같이 살 때 집주인은 군말 없이 집수리를 해줬다. 그러나 대개의 주인들은 살고 있는 동안에 집에 돈을 안 쓴다.
잠시, C와 나를 설레게 했던 기사 하나는 반지하거주자들에게 정부가 보조금을 준다는 것이다. 1인 가구의 경우 월 4만3천원을 주는데 지원대상을 최저생계비의 120%미만인자로 정하고 있다. 그게 63만9100원이다. 그래서 우리는 해당이 안 된다. 담당 공무원에게 물어보니 이 기준에도 불구하고 받는 사람이 있단다. 믿을 수가 없다. 이에 우리는 마포구청에 대응하는 것을 첫 번째 액션으로 삼았다.
우리는 직접 꽃을 사러 나가기로 한다. 삶과의 투쟁 없이 평화는 없다.4)
국가가 공급하는 집들은 지독한 가족주의에 묶여있다. 신혼부부가 아니거나, 부양가족이 없는 이들은 무릎이 꺾인다. 결국 남자랑 사는 것이 안전하고 더 나은 주거환경을 획득하는 길이라면, 계속 결혼을 강요받을 것이다. 가난해도 남자는 덜 위험하다. 여성들이 자기만의 방과 돈을 가지기 위해 국가와 사회가 나서야 할 때이다. 내가 스웨덴에 태어났다면 세입자조합에 말해 임대료 협상을 잘 해서 떼어먹힌 돈이나 집수리 등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공공임대주택 수준의 임대료만을 내면 되니까, 10만원만 내고 살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만 있다는 이 독특한 돈벌이용 주거공간을 없애고 아파트 값만 걱정하는 정치인들 대신 반지하 주거권에 대한 감수성 있는 자를 뽑겠다. 우리는 늑대들같이 뭉칠 것이다. 주택법 제3조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 단체가 국민이 쾌적하고 살기 좋은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며 주거가 복지임을 규정하고 있다. 법적 권리도 있겠다, 의젓한 인간으로서 진심으로 만족하면서 살 수 있는 그런 공간을 위해 나는 이 여자들과 같이 먹고, 놀고, 떠들고……살아갈 생각이다.
주1) 내 깡패같은 애인(김광식 감독, 2010)
주2) 주간경향(2010.10.02)
주3) 최저 주거기준은 2003년 7월 주택법이 개정되면서 법제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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