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6월호 [생생한시각] 대학 내 여성운동, 너와 나의 만남으로 새로운 시작을!
[생생한 시각]
대학 내 여성운동, 너와 나의 만남으로
새로운 시작을!
평화 ● 한국여성민우회 자원활동가
지난 겨울 쌀쌀했던 어느 날, 오랜만에 보는 친구와 함께 밥을 먹었다. 그 친구는 나와 같은 학교 학생으로, 여성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던 친구였다. 밥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요즘 여위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요즘 여위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우리가 너무 오랜만에 만난 탓일까. 그 친구는 여위 활동을 하지 않은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고 했다. 그리고 그 친구가 여위에서 나올 당시 여위에는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이 두 명밖에 없었다고, 그래서 취업 준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위를 탈퇴하면서도 마음 속에 무거운 부채감이 남았다고 그 친구는 말했다.
대학 내 여성운동, 안녕하십니까
요즘, 대학 내 운동이 위기라고 한다. ‘20대의 무기력함’, 혹은 ‘20대 운동권의 위기’라는 말이 주위에서 많이 오간다. 실제로 학내 운동판에서도 단위 운영을 지속하기가 힘들다는, 함께 활동할 사람을 모으기가 어렵다는 말이 많이 나오고 있고, 소위 운동권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의 무관심을 이겨내지 못해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대중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지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물론 ‘운동’이라는 것은 대중들의 무관심을 관심으로, 무력감을 자신감으로 바꿔내는 일이지만 과거에 비해 대중들의 무관심과 무력감이 더욱 심화된 지금의 현실은 많은 운동권 학생들에게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내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하기에 이 위기는 여성주의 운동에 더욱 크고 무겁게 다가오고 있다. 소위 NL계열, PD계열이라 불리는 자치단위들은 학내 언론을 통해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자주 발표하고 세미나 혹은 강연회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학생들에게 그들이 ‘늘 학교 안에 있다’는 느낌을 준다. 반면, 상당수의 여성주의 언론들은 폐간 되었거나 폐간 위기에 처해 있고, 여성주의 자치단위나 연대체의 경우에도 옛 이름과 활동 흔적만 유물처럼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지난 수년 간 서울대 관악여성모임연대, 페미니스트 웹진 달나라 딸세포, 대학여성주의자네트워크, 여성주의 자치언론 쥬이쌍스 등 여러 단위들이 활동을 중단하였다. 여성주의 자치단위들은 다른 운동판 단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활동이 침체되어 있으며, 어떤 사업을 계획하거나 실행하더라도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거나 이슈화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즉, 여성주의 자치단위들은 생동감을 상실해버렸다.
대학 내 여성운동의 위기, 그 원인은 무엇일까
위와 같이 많은 여성주의 자치단위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단위들로 하여금 활동을 중단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게 한 원인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먼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끝없이 치솟는 등록금이 제대로 한 몫을 할 것이다. 감당이 불가능할 만큼 비싼 등록금은 학생들에게 시간의 여유나 마음의 여유를 가질 틈을 주지 않는다. 학자금 대출로 인해 어마어마한 빚을 지게 된 학생들, 등록금으로 인한 부모님들의 경제적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 혹은 용돈만이라도 자기 힘으로 벌어서 쓰기로 다짐한 학생들은 학기 중에도 상당한 시간을 돈을 버는 데 쓴다. 이렇듯 먹고 살기 팍팍함은 또한 진로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진다. 졸업 후 넉넉한 수입과 안정된 일자리를 보장받기 위해서 고학점을 유지하고 스펙을 쌓는 데 엄청난 노력과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하는 것이다. 여성운동에 별 관심이 없는 학생도, 혹은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학생도 우리가 두 발 딛고 서있는 현실인 자본주의의 늪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위처럼 경제적으로 팍팍하다는 점 외에도 문제는 있다. 우리에게 없는 것이 두 가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적과 보상이다. 우리에게 ‘적’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이러한 아이러니함은 현재 학내 여성운동의 위기와 관련하여 많은 것을 말해줄 수 있을 듯하다. “난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이라는 어구를 말머리에 다는 것이 마치 유행처럼 되어버린 지금, 다시 말해 여성주의가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알아두어야 할 상식처럼 되어버린 지금, 학내에서는 과거와 달리 가시적인 투쟁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기존의 언어로 여성인권에 대해 말하면 그것은 당연하거나 혹은 식상한 것으로 인식될 뿐이다. 투쟁의 대상이나 이슈가 구체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운동의 동력을 얻기 어렵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두 번째로, 적이 없다는 문제는 자연스레 ‘보상’에 대한 문제로 이어진다. 투쟁의 대상이나 이슈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여성주의 자치단위들은 대중을 강하게 설득하거나 하나로 단결시키지 못하며, 같이 운동할 수 있는 동지를 충분히 얻지 못하고, 또한 운동을 통해 현실 상황을 눈에 보일 정도로 개선하는 성과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이처럼 운동을 통해 충분한 보상을 얻지 못한다는 점은 자치단위 활동가들로 하여금 낙담하게 만들고 학내 여성운동에 대한 회의감이 들도록 만든다.
위기를 기회로!
서로 만나고 대화하고 다시 일어서기
대학 내 여성운동의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먼저 투쟁 대상으로서의 구체적이고 명확한 적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혹은 그것이 가시화되지 않더라도) 대중의 공감을 얻고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새로운 이슈, 그리고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현재 사용 중인 과거의 언어는 더 이상 대중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운동의 원동력, 자신감, 혹은 흥미마저 상실해버린 대학 내 여성주의 활동가들이 다시 한 번 꿋꿋하게 일어서기 위해서는 20대의 언어로 20대의 이슈를 발굴해내야 한다. 그리고 20대의 언어와 이슈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치단위 활동가들이 서로 연대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비슷한 위치에 있는, 서로의 상황에 더욱 잘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각자의 욕구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레 우리들의 삶 속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우리들의 이슈를 발굴할 수 있을 것이다. ‘만남’과 ‘대화’는 우리에게 운동의 동력, 새로운 자극, 그리고 서로 힘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제공해줄 것이다.
덧붙여, ‘대학 내 여성운동의 침체’는 20대 활동가들만의 고민거리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20대 활동가들만이 풀어야 하는 숙제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대학 내 여성운동 역시 전체 여성운동의 역사적 맥락 ‘사이’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20대의 욕구와 지향을 반영하는 새로운 언어와 이슈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물론 20대 활동가들의 연대가 우선적으로 진행되어야겠지만, 지금까지 여성운동의 역사를 만들어온 언니들과의 만남과 연대 또한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이 때 중요한 것은 그 언니들이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거나 가르치려는 언니들이 아니라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수 있는, 여성운동 내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는 진정성 있는 언니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이 갖춰질 때, 그 언니들도 20대 활동가들도 서로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다양한 여성주의자들이 배경과 조건에 상관없이 변화를 향한 뜨거운 열정, 절박함, 혹은 진정성만으로 모인 자리에서, 대학 내 여성운동의 위기를 여성운동의 도약을 위한 기회로 바꿔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본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