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6월호 [人터뷰] 다큐멘터리 감독 [기:잉]을 만나다
[人터뷰]
203호부터 <人터뷰>꼭지를 신설했습니다. <사람>을 향해 살아가는 이들의 고민과 이면을 지면에 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혹시 ‘이 사람, 필히 함여에서 인터뷰해야 한다!’는 분은 민우회로 제보 부탁드립니다. 완전 환영합니다. [편집자주]
가난을 부끄러워하는 것,
그게 이 모든 문제를 심화시키는건 아닐까.
다큐멘터리 감독 [기:잉]을 만나다
● 함께가는여성 편집팀
2009년 화제의 다큐 <개청춘>을 만든 손경화 감독을 만났다. 그녀가 2011년, 여성영화제에도 출품된 <그 자식이 대통령 되던 날>(이하 ‘그자식’)이란 다큐를 들고 나왔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에서 쉴 틈 없는 수다가 계속되었다. ‘가난’과 ‘청춘’은 이번 인터뷰를 꿰는 주요한 키워드이자 그녀의 고민을 압축하는 단어일 것이다. 편집자의 최후의 미션은 이것이다. 그녀의 매력 1%라도 전달할 것.
왜 패배적이라고 말하는지 모르겠어.
예전에 영화 <개청춘> 제목 듣고 참 좋다 싶었다.
젊은 친구들은 다 좋아한다. 근데 나이 든 사람들은 욕이라고 싫어하더라.(웃음) 제목이 너무 패배적이라고. 근데 솔직히 나는 왜 패배적이라고 말하는지 이해는 못하겠더라. 사실 ‘개’라는 단어가 강조하는 접속사이기도 하지 않나. ‘개 같은’ 청춘이라는 의미도 분명 있다.
개청춘이란 영화는 깅을 비롯해 3명이 함께한 모임 <반이다>가 만들었다. <반이다>의 의미는 무엇인가.
“시작이 반이다”의 반이다. 사회에서든 어디서든 막 시작하는 사람들의 고민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다. 그리고 다큐 하는 우리 입장에서도 일단 시작하고 보자 이런 느낌으로.(얼마 전에 박명수가 해피투게더에서 시작은 시작이라더라.) 맞다. 그것도 사실이다(웃음)
개청춘이란 영화가 20대의 고민을 당사자가 대변하는 최초의 영화라고 들었다. 영화 제작했을 때가 20대였는데 지금은 30대다. 혹시 지금 생각이나 상황이 바뀐 것 같나?
크게 바뀌진 않았다. 영화 만들 때도 지금의 20대가 어떤 것 같다는 판단을 내리지는 않았다. (그것이 세대일 경우)‘우리’는 어떻다 증명하기 힘들지 않나. 물론,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이 있으면 모르겠지만. 지금 20대에 대해 무기력하고 패기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런 사람이 한 두 명이라면 그렇다고 하겠지만 전체 세대가 그렇다면 그것은 사회의 문제이지 않나. 그 세대를 길러낸 부모세대, 기성세대의 문제인 것이지 젊은 세대의 탓이라고만 몰아 부칠 수 없다. 20대 뿐만 아니라 기성세대도 일정 부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담으로라도 듣고 싶지 않았다. 없어 보인다는 말.
<개청춘>을 만들고 <그자식>을 만들었는데 문제의식에서
연결된 지점이 있었나.
지금 인생의 긴 길을 그림을 그리고 가기 어렵지 않나.(맞다, 내일도 모른다) 하지만 내 고민이니까 연결되고 심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개청춘>도 20대들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사회의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 친구들이 20대일 뿐이다. 20대 중에서도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지 좋은 대학 나오고 잘 나가는 사람들까지 우리가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가난은 선택 가능한 범주에 있을 때 긍정할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가난은 반드시 벗어나야 하는 괴물이다.“
(그 자식이 대통령 되던 날, 나레이션 중)
<그자식>은 가난한데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가난하기 때문에 사회활동을 하는데 아버지는 왜 가난한데 보수정당을 지지할까. 그게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이라고 생각했다. ‘강남좌파’의 경우에는 자기 계급을 배반하는 거니까 고마운 일인데 가난한 사람이 보수정당 지지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고민 속에 <그자식>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릴 때 나는 가난했기 때문에 그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가 항상 필요했다. 중고등학교 때 아무리 짱구를 굴려 봐도 지금 내가 떼돈을 벌어서 가난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고, 부모님이 아무리 일해도 지금의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런 답답함을 가지고 있을 때 원망의 대상은 아빠, 엄마 개인에게로 가는 거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을 부끄러워하는 것, 그게 이 문제들을 심화시키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아무리 사회운동에 관심이 있고 일을 해도 나도 없어 보인다는 얘기를 농담으로라도 듣고 싶지 않았다. 잘 사는 사람들 만나면 주눅이 들고 그럴 때마다 나는 (당신들과 달리)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내가 무능력한 게 아니라고 어필한다. 그러면서 내가 가난에 대한 콤플렉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도 존재하는 모순적인 태도들을 보면서 노골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하찮게 보는 이 사회의 시선이 쉽게 변할 수 없겠구나 싶었다. 그런 내 안의 문제의식이 이 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 자식이 대통령 되던 날/ 다큐멘터리/2011/감독 손경화
아버지의 ‘가난’과 딸의 ‘가난’은 다르다.(……) 자신에게
“가난은 긍정할 수 있는 선택이었지만” 아버지에게 가난은 떨칠 수 없는 숙명이었음을
깨달은 딸은 더 이상 아버지의 삶이 틀렸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마법은 아버지에게도 일어난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살아가기로 맘먹은 ‘빨갱이’ 딸에게
‘보수꼴통’ 아버지는 의도치 않은 격려와 조언을 들려준다.
“부를 공평하게 누리면서 다 같이 행복한 사회가 틀림없이 올 것”이라고.
(씨네21, 이영진)
좌절과 두려움의 연속이다. 가난하다는 것은.
자본주의 쇠뇌 시스템 속에서 20년 넘게 살다가 돈이 행복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허무하다. 돈이 주는 행복이 큰 게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를 설득해내야 하고, 그래서 이번 다큐는 부자들의 논리를 싫어하지만 가난을 부끄러워하고, 가난을 극복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쩔 수 없이 그것은 매일 싸워야 하고 특히 2년에 한 번씩 이사할 때 극도로 서러워진다.
집 구하려고 부동산 돌아다니는 길목이 젤 외로운 순간이다.
맞다. 부모님에게는 절대 손도 못 벌린다. 손 벌리는 순간 ‘거 봐라. 니가 하는 일 제대로 먹고 살지도 못하면서 뭘 하겠냐고’ 바로 나오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돈이 없고 가난하고 다음 날 식비가 없다 하더라도 손 못 내민다.
답을 찾았나.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것에 대해?
처음에는 모순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빠를 만나서 얘기를 듣다보니까 납득이 되었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다. 당장 내일 먹고 살 게 없는데 지금의 정권이 최악이라도 그나마 유지가 된다면 다음에 어떤 일이 있을지 예측은 가능하지 않나. 힘들지만 내일이 예상가능하다는 것이 중요하다. 잘 모르는 진보 정당이 집권했을 때의 변화를 두려워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쟁이든 뭐든 힘없는 사람이 가장 큰 피해를 보지 않나. (변화보다 안정을 추구하는)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납득이 되더라.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아버지가 모순이고 아버지가 뭘 모른다고 생각을 했는데 경험적으로 축적된 삶의 맥락에서 본능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인 것 같았다.
작고 밀도 있는 관계에서 변화는 가능하다.
자기 표현의 다양한 방법과 매체가 있을 것이다. 시민단체 활동가가 되기도 한다든지 회원활동을 한다든지 등등. 영상을 택한 이유가 있다면?
사실 방송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충족이 되고 뭔가 만들 수 있는 창작에 대한 욕구도 충족이 되고. 그러다가 우연히 나한테 맞는지 확인하려고 독립다큐제작과정을 듣게 되면서 다큐멘터리에 대해 알게 되었다. 강의 들었던 내용인데, 어떤 사회문제에 대해 똑같은 영상을 가지고 TV와 작은 상영관에서 상영을 했단다. 근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현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작은 상영관에서 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정말로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어쩌면 좁고 밀도 있는 관계에서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런 변화를 원한다.
민우회에 대한 평소 이미지는 어땠나.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민우회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른다(웃음). 그리고 여성주의에 대해서도. 처음 인터뷰 제안 왔을 때 조금 당혹스러웠다.(웃음) 여성주의자라고 하기에는 뭔가 내가 부족한 것 같다. 쑥스러운데 또 여성주의자라는 호명에 망설이면 여성주의에 대한 편견이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지는 않다. 배울게 많다.
성차별에 반대하고 여성연대를 꿈꾸면 여성주의자다(웃음)
그럼 나 여성주의자다. 앞으로 고민도 공부도 더 많이 할 여성주의자라고 써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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