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6월호 [민우칼럼 창] 2011 여성회의에 다녀와서
[민우칼럼 창]
2011 여성회의에 다녀와서
정영애 ● 한국여성민우회 이사
지난 4월말 한국여성재단이 주최한 ‘2011 여성회의’가 아름다운 소나무와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 강원도 한국여성수련원에서 ‘여성운동, 새로운 전환의 모색’이라는 주제로 2박3일 동안 개최되었다. 170여명의 여성운동가와 여성연구자, 그리고 여성문화예술인들이 함께 모여 서로 소통하고 힘을 준 활기차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누구에게도 말 못했던 내 안의, 우리 안의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내면서”, 자신을 “바위 앞에서 웅크리고 앉아 통곡하는” 존재로 묘사한 다른 활동가의 어깨에 손을 얹어 주면서, 여성주의자로 살기로 선택한 삶이 행복하기 어려운 현실의 모순에 공감하면서, 그동안 이러한 만남이 얼마나 절실했던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대학생 후배들은 여성주의가 식상해 가고 있는 학교 내 현실 속에서 자신을 지켜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청년유니온을 조직한 장(기)미(취업)족 후배들은 자신들의 삶이 결코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여성’도 ‘환경’도 ‘연대’도 다 금기시되는 사회 속에서 ‘초록상상’이나 ‘좋은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로 단체의 명칭이 바뀔 수밖에 없는 코메디같은 현실들에 대해 들으며 피상적 담론과 주장들이 손에 잡히는 현실로 다가오는 경험을 하였다.
바깥 세상에서는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짓밟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유일한 목표이고, 승리한 자의 논리가 진리가 된다는 부추김에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고 있는데,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은 자신보다 다른 이를, 내 가족보다는 이웃과 사회를 염려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힘을 모으고자 애쓰고 있었다. 오랫동안 여성운동을 하다 보니 어느 새 운동이 자신의 ‘직업’이 되었다고 관성화된 자신을 눈물 속에서 성찰하는 한 여성운동가처럼 자신이 하는 일의 방식이 조금이라도 타인을 대상화하거나 수단화하지 않도록 염려하고 반성해 가면서. “평소에 상처도 주고, 받고 했지만, 여기 와서 보니 서로의 존재 자체가 고맙고 힘이 된다”는 한 참가자의 소감처럼 눈시울을 적시며 서로 공감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 속에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으로도 매우 귀중한 경험이었다.
또, 우리의 이야기들을 상징화해주고, 공감을 이끌어내고 한 방향으로 모아주는데 여성문화예술가들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공연하러 온 초대 손님이 아니라, 시종일관 함께 자리하는 ‘우리’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하였다. 각자 서 있는 자리는 다르지만, 모두 한 뿌리에서 나온 가지이고 잎이고 꽃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회의는 한국의 여성운동도 연령과 세대 뿐 아니라, 관심분야나 일하는 방식, 지향하는 바도 서로 다른 다양한 차이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공감과 연민을 차별화하고 표현할 수 있는 영 페미니스트들의 똑똑함과 욕심도 함께 부대끼면서 둥글어져야 할 것이고, 모던과 포스트모던, 우리의 구체적 현실과 거대담론을 함께 아우를 수 있게 되어야 할 것이다. 또 자신들의 운동에 대한 비판과 문제제기에도 여유로워져서 이러한 차이들이 결국 여성주의라는 더 큰 연대의 기반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이런 기회들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았다.
돌아와 얼마 후에 민우회 한 신입활동가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는 위로와 공감의 자리들이 좀 더 자주, 그리고 가까이 있었으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살 수 있는 많은 기회와 유혹을 버리고 여성운동을 하는 이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위로하고 지원하는 일은 여러 모로 절실하다. 현재 조직 차원에서 활동가 재생산의 어려움은 여성운동의 재정확보와 함께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이다.
비록 이번 여성회의가 빡빡한 일정에 비해, 그리고 던져진 많은 화두에 비해 충분한 결실을 이루지는 못하였지만, 그리고 의도만큼 여성운동가와 여성연구자들이 물리적 만남을 넘어 유기적, 화학적으로 잘 연계되고 통합되어 공통의 아젠다들을 발굴해 내지도 못하였지만, 첫 번째 작은 한 걸음을 내딛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이러한 한계조차도 앞으로 나갈 방향을 제시해 주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서로 깊이 연계되어 있는 여성운동가와 연구자가 서로에게서 에너지를 얻으며 함께 나아갈 수 있는 회의,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주의자들이 서로를 긍정하고 격려하면서, 서로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도 한동안 힘을 받아 신나게 일할 수 있는 그런 모임의 기회가 앞으로도 많이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다. 행복한 여성주의자들, 여성운동가들의 모습이 바로 여성운동의 대중성을 확산해 나갈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일에 치여 항상 쫓기며 사는 여성운동가들이 과연 일에서부터 해방되어 몇박몇일의 모임에 쉽게 참여할 수 있을까? 아니면 여비조차 걱정되는 우리 어린 후배들을 어떻게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할 수 있을까? 다람쥐 쳇바퀴같은 이 상황을 어디에서부터 변화시켜나가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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