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8월호 [민우ing] 당신이 생각하는 '낙태'는 없다
▣ 민우 ing
당신이 생각하는 ‘낙태’는 없다.
- 23명을 인터뷰하고 1개의 답을 얻다.
꼬깜(김희영) ●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
* 글 중간에 큰따옴표로 인용된 문구는 인터뷰 내용 중 발췌했습니다.
필시 인연이란 있는 것일까. 대학 때 ‘낙태’와 관련된 리포트를 쓴 적이 있다. 생명윤리와 관련된 과목이었는데 유독 ‘낙태’주제에 눈이 갔다. 도식화된 입장 자료로 분류된 종교계, 의사계, 그리고 여성단체들의 글을 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민우회, 언니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검색창에‘낙태’를 쳤다.‘낙태범죄화’를 반대하는 글이 ‘여성건강권’이란게시판 목록에 가지런히 정렬돼 있었다. 연도별로 누적된 글과 댓글을 보며 느꼈던 그 감정을 생각하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활동과 그때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얼개설계 엮어 있구나 싶다.
활동가들이 묻는다“. 오늘은 어디서 낙태(인터뷰) 했어?”
“이 얘기 평생 처음 해봐요. 남편한테도 안 해봤어.”
5월부터 7월까지 성남, 춘천, 서울, 인천, 천안 등지에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연구자인 백영경 샘, 여경, 멍군, 꼬깜이 인터뷰어가 되었고, 과거 낙태 경험이 있는 23명의 여성들이 인터뷰이가 되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낙태경험을 발화한다 했다. “남편은 어차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죄의식이 떠나지 않아서”, “말하면 고통이 심해”지기 때문이라 말했다. 반면 낙태 경험을 “쉽게 얘기하는 편이라고민이 되는데 남들이 되게 불편하게 듣는”다는 여성도 있었다. 말할 수 없는 여성과 듣고 싶어하지 않은 사회는 연결되어 있다. 낙태 논쟁은 언제나 뜨거운 감자다.
탁한 모자이크 뒤 낙태 경험 있는 여성을 이미지화하는 언론, 성문란과 생명 중시라는 결박된 논리로 여성의 경험을 단출하게 제거한 종교계, 여성의 입장을 제일 잘 안다던 일부의사계 등 낙태를 발화하는 주요 주체는 언제나 여성이 아니었다. 반복되는 낙태 논쟁은 소재 대비 효율 좋은‘이슈’거리에 다름 아니다.
피임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첫 번째 낙태 이후 콘돔을 구비는 해놓고 있었어요?)저는 산 적이 없었어요. 그런 게 좀 뻘쭘한 것 같아요.좀 어려운 얘기인 것 같아요. 왠지 (섹스를)준비하는 듯한 느낌? 좀 밝히나? 이런 생각 할까봐….”(6/7, 춘천)
내부 회의 때 “아직도 이런 문화가 있어?”라며 충격 받은 이도 있었다. 피임 실천 과정에서 여성의 주체성은 이 사회의 성문화와 밀접하다. 피임을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것을“까져보인다”고 말하는 한편, 임신 이후“왜 피임을 신경 쓰지 않았냐”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이중규범이다. 이는 성관계 안에서의 여성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각본을 반영한다. 피임실천 과정에서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태도’자체로 비난받는다. 실로 비난하려는 것은 여성이 성적 주체가 되는 것,그 자체이다.
기혼의 경우에는 대부분 남편과의 관계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내가 몸이 아파서 거의 섹스리스처럼 사는데. 이게 비정상은 아닌 것 같은데. 1년에 한두 번 성관계를 하는데 남편이 그때는 피임을 원하지 않아”서 임신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관계 안에서 의무와 교환의 가치로 여겨지는‘부부생활’의 협상에서도 여성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죄의식과 분노 사이기혼 여성들 인터뷰의 주요 내용은 당시 남편이 취했던 애매한 태도, 오히려 낙태를 권하듯 말한 데서 오는 상처, 낙태이후 절대로 그 주제를 꺼내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 등 남편에 대한 이야기였다.
“(남편이랑은 낙태 이후로, 그 얘기해보신 적 있으세요?) 아니요. 전혀. 한 번도. 내 기억에는 없는데, 얘기는 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쨌든 정식으로 했다는 기억은 없어요. 뭐, 그 사람이야…. 되게 이기적이다보니까 잊어먹었을 거예요. 내가 지금까지도 가슴아파한다는 건 아마 모를 거예요.”
(6/10, 망원동)
“(주변에 낙태 이후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얘기 해주고 싶으세요?) 수술을 하는 거는 하는 건데 자기가 그렇게 낙태를 했다는 거에 죄책감이랄지 막 그런 거는 덜어주고 싶어요. 그리고 관계를 가진 남자랑 대화를 많이 가졌으면 좋겠어. 안 그러면 평생 자기가 혼자 떠안아야 하는 거야. 그 사람은 결혼 안 하더라도 계속 여자가 갖고 가는 거니까.”
(6/10, 망원동)
“나를 나쁜 년으로 몰아주지 말아줄래?”
낙태 경험은 대부분 여성들이 자기를‘가해자’로 위치시키기 때문에 여성 연대가 어렵다.“내 몸이 망가지는”상황을 자초했다는 감정 토로도 지배적이다. 또한 낙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성관계, 연애 관계, 결혼 생활 등 (변명처럼 읽히는) 자기 역사를 고백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많은 여성들이 낙태 경험이 있는 다른 여성들에게 털어놓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뜻밖에, 우연한 시기에 서로의 낙태 경험을 전해 맞닿은 감정을 나누기도 한다.
“몇 년 있다가 저희 후배가 갑자기 저한테 ‘언니 혹시 낙태했어?’ 그러더라고요. ‘했어. 이제 경험이 한 번 있고.’ 그랬더니 ‘나 낙태했다’이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괜찮아~’ 이랬더니 ‘괜찮지?’이러더라고요. 정말 다행이다. 얘가 그래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힘이 있고, 나한테 이렇게 또 말도 하고(중략‘) 나는 낙태경험이 있단다. 이렇게 떠들어댈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러니까 나를 나쁜 년으로 몰아주지 말아줄래?’ 뭐 이런 이야기를 좀 하자 했었어요. (6/22, 연신내)
결국 ‘삶’의 문제이다.
낙태는 유기적인 주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낙태 찬반론은 허망하다. 낙태는 기본적으로 불가피성을 내재하기 때문에 낙태 인정론이 선행되어야 한다. 인터뷰의 큰 주제를 피임, 관계, 낙태시술 전후, 미래전망, 사회적 인식 등으로 영역화 하였다. 인터뷰 내용의 큰 줄기는 자신의 삶을 전망하고 기획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성관계가 없다면, 피임과정이 없다면, 연애, 관계, 노동과 육아조건이 없다면 낙태를 논할 수 없다.
“(애 낳고 후회한 여자는 없어도, 낙태하고 후회 안 하는 여자는 없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나요?) 애를 보육할 수 있는 마음이나 또는 경제적으로나 뭐 여러 가지 안정된 상태면 후회할 수 있겠죠. 근데, 그건 미래의 일이잖아. 미래에 그 사람이 어떤 환경에 놓일지 모르는데 그 상황에서 낙태를 해서 너는 후회할거다, 이렇게 말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되게 단기적인 안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6/10, 망원동)
그러니까 다시 곱씹는다. 당신이 쉽게 추측하거나, 상상하는 낙태는 없다.
성문란이란 단어는 정말 문란하다. 타인의 섹스에 관심 갖지 말라. 타인의 복잡하고 어려운 관계를 왜곡하는 것은 상상력의 폭력이다. 생명경시라는 말은 쉬워서 무섭다. “죄의식 때문이라도 누군가 낙태한다면 결사반대하고 싶다”는 정서적 고통에 대해 ‘그러니까 낙태하지 말라’는 단선적인 주장으로 여성의 목소리를 왜곡하지 말라. 오히려 그 추측 속에 내밀하게 자리잡은 여성 인권의 현실을 살펴야 한다. 다시, 당신이 생각하는 낙태는 없다.
“2011, 낙태, 여성의 경험으로 세상과 공명하다” 되어보는 역할극 진행 |
|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