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8월호 [민우ing] 여성회의, 애프터를 신청합니다.
◉민우ing
여성회의, 에프터를 신청합니다.
- 다른 생각을 합니다. 여성주의를 질문합니다. 이렇게 여성운동을 합니다.
선백미록(신기루) ● 한국여성민우회 반차별?회원팀
4월 28일~30일 강릉에서 여성회의가 열렸다. 한국여성재단이 주최하고 한국젠더네트워크가 주관한 이 회의는‘중견 여성단체들의 성과를 기반으로, 향후 10년의 여성운동을 준비하기 위한 전략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 200명이 참석했다. 여성신문은‘소통하면 서로의 차이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과 연대하면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희망을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평했다.1) 6월 23일 정동에서 열린‘여성회의, 에프터를 신청합니다’는 성균관대학교총여학생회비상대책위원회DDDa, 언니네트워크, 한국여성민우회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한국여성민우회가 주관했다. 40명이 참석했다. 통상 에프터 신청은 호감의 표현이지만, 할 이야기가 남아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에프터 토론회는 여성회의를 통해 드러난‘꼰대’론에 대해, 또한 구체적 이슈로서‘여성운동 재생산’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 발제자였던 시타(여성학자, 30대), 미주(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 40대), 케이(총여학생회 4학년 2학기, 20대), 몽(언니네트워크 사무국장, 20대), 신기루(한국여성민우회반차별회원팀장, 30대)가 비오는 밤 홍대에 다시 모였다. 에프터의 에프터다. 주1) 여성신문, 2011-05-06
그래서 그 발언을 한 사람이 누군데?
케이 : 말을 하고 싶어서 에프터에 갔지만 하고 나니까 더 답답하다. 그날 ‘대페방’2)에 왔던 사람이 누구이며, 그건‘그 사람’의 잘못이다 라는 식으로 정리되길 원하지 않았다. 성대총여에서 3명이 왔는데 그 친구들의 대체적인 소감은‘이게 아니지 않냐? 우리가 하는 얘기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너무 지루하다.’이다. 토론 중에 내 발제에 대해 답을 찾을 수 없거나 누구도 답할 수 없는 문제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내가 발제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서 나온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일방적으로 대답해줘야한다고 생각해서 했던 이야기가 아니었다. 친구들은 중간에 다들 나갔다.
시타 : 맞다, (활동가의) 물적 토대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안 듣고) 나갔지 않냐? (토론회에서 상영한)영상에서 제기된 문제가 하나가 아니었다. 어떤 것은 태도의 문제이고 어떤 것은 동료로 인정하지 않는 것의 문제이고 어떤 것은 누가 이 회의의 주인인가의 문제이고 이 사람들을 통칭해서 누구로 대표시키는 문제도 있었고, 여성회의 진행과정의 임금문제, 젊은 활동가들과 일하는 방식의 문제가 있었다. 분명하게 책임단위가 있는 이야기도 있고, 문화로써 문제 삼아야 하는 것들도 있었다고 본다.
케이 : 그 영상은 분노였다.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대답하고 아니면 더 발전시켜서 하나의 주제로 가져가면 좋은데 또다시 문제가‘덩어리화’된 것 같다.
주2) 4월 여성회의에서 케이는 학내 반성폭력운동을 다룬 영상을 상영하는 대학페미니스트 방을 열었다. 대학여성운동을 주제로 한 이야기 방이었고 대학페미니스트 운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참여했다.
몽 : 여성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 혹은 참석하지 않았던 사람들이‘그 (문제적인) 발언을 한 사람이 누구냐?’를 질문할 수밖에 없는 것은 논의가 추상적으로 되지 않으려면 결국 구체적인 사건에서부터 얘기를 시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이 문제를 누가 받을 것인지를 얘기할 수 있기 때문에. 하지만 구체적인 개별 사건들이 있었어도 특정한 발언을 한 사람의 문제나 (여성)재단만의 문제는 아니다. 당신은 꼰대인가?
케이 : 나는 꼰대 아닌데? 꼰대에 내가 포함되는 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전반적인 에프터의 분위기였다. 20대가 소비되는 방식 자체가 문제였는데 소문이 많아서 한번 궁금해서 와봤다는 식이라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을 안 했던 것 같다.
몽 : 나는 윗세대 페미니스트들이 자신의 힘든 점을 말하는 것을 많이 들어보지 못했는데, 그 세대와 경험, 위치에 있다면‘중심이 잡힌 모습, 흔들리지 않는 모습’만을 보일 것을 요구받기도 하는 것 같다. 함께 활동하는 선배들이 후배 활동가들의 활동에 대해서 ‘잘하고 있어, 파이팅!’이렇게 무조건 칭찬하는 방식으로 소통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20대나 대페의 조건에 대해서는 세대를 막론하고 모두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누구나 위로와 조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윗세대들의 조건에 대해서는 어떨까? 신자유주의가 모든 일상을 휩쓸고 있다고 하는데, 어떤 세대에게 두드러지는 특징이나 문화가 있겠지만 모두가 신자유주의 자장에서 자유롭지 않은데. 그렇다면 윗세대 페미니스트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고민을 하면서 운동을 할까?, 누구랑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이런 구체적인 것들이 알고싶다. 나는 내 조건을 이야기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조건이 아닌 여성주의 운동‘판’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그런 것들이 궁금해진다.
미주 : 그건 그럴게 말할 수 없게 살아온 그 시대적 상황도 있다. 여성회의 애프터에 간다고 하니, 선배님 한 분이 이전에는 (단체활동을 접는) 선배들의 진로나 비전을 오히려 후배들과도 같이 나누곤 했는데, 요즘에는 그러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안타깝다는 말을 들었다.
시타 :‘밀착토킹취재’같은 걸 하고 싶다. 40대 후반, 50대 여성운동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20년 동안 해오던 것을 접고 다른 판을 만들겠다고 하는 분이 있는 지
도 되게 궁금하다. 모델 여러 개가 있어야 나도 골라잡거나 할수 있는데, 모델이 없으니까 앞이 안 보이는 것이 아닐까? 다른 세대 여성운동가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미주 : 어느 순간에는 같이 일을 하다보면 내가 경험이 많아서 더 보이기도 한다. 잘나고 못나고 문제가 아니다. 후배 활동가들이 나래를 폈으면 좋겠는데, 일하면서 생활 속에서 가
진 걸 나누는 게 잘 되면 좋은데 따로 논다는 생각이 든다.
시타 : 활동연차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3년 활동한 친구가 있고, 한 달 활동한 친구가 있다. 3년 활동한 사람이 그 사람한테 어떤 태도로 관계를 해야 할까? 어떤 면에서 더 많은 정보와 노하우가 있고 그래서 멈춰서 ‘평등하게’ 조금씩만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더 많이 갖고 있는 네트워크, 정보를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 선후배는 있고, 있어야 하지만, 방식이 어떠해야 할지가 고민이다.
미주 : <한국여성의전화>에는 20대부터 50대까지 활동가들이 있다. 내부를 돌아보게 된다. 에프터 하면서 우리 내부도 이런 마당이 있어야 하나라고 생각했다.
주2) 4월 여성회의에서 케이는 학내 반성폭력운동을 다룬 영상을 상영하는 대학페미니스트 방을 열었다. 대학여성운동을 주제로 한 이야기 방이었고 대학페미니스트 운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참여했다.
이제 총여는 없다.
시타 : 90년대 영페미들도 (에프터에서 대페들의 영상이 문제제기했던 것처럼) ‘여성단체가 권위적이고 기혼자중심이고, 결혼에 대해 질문하지 않으며 이성애 중심적이다’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그 다음 얘기는‘그러니까 우리는 여성운동을 믿을 수 없다, 실망이다’하지 않았다.‘ 저들은 여성주의가 아니고, 우리가 여성주의다’라고 주장했다. 이건 떼로 모인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독불장군같은 에너지다. 지금은 다들 너무 바쁘고 개별적으로 불안한 상태라‘떼’의 경험을 갖기 힘든 것이 아닐까? 그 때 왜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비판을 할 수 있었을까?
몽 : 2009년 언니네트워크에서 대페들과 토론회 때, 발제했던 분이 ‘총여학생회’가 ‘여성파우더룸’으로 바뀌고 ‘여성주체성’이‘여성리더십’이 되는 상황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5년 전, 10년 전과 또 다르게, 매우 빠르게 변하는 것
같다. 언니네트워크 활동가들의 경우 2007년만 해도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고 학교에 다니는 친구도 있었지만. 지금은 대학을 졸업한 상태로 취업을 준비중이거나, 취업유예중인 경우가 많다. 학자금 갚기와 생계유지를 여성주의 활동과 병행하기 어려워 활동을 중단한 경우도 있다.
케이 : 가장 절망스러운 순간은 여학생 휴게실에 매니큐어를 갖다 놓는 상황이라기보다, 총여학생회 내부의 친구들이 우리가 속한 단위의 가치가 무엇인지 스스로 증명하지 못하는 순간이다. 대학 내에서 페미니즘은 너무 뻔한 언어가 되어버렸고, 어떤 이야기를 하든 어떠한 피드백도 없다. 아무도 듣지 않는 말들은 결국 허공에 외치는 구호에 불과하고 그런 자책감은 스스로의 존재를 의심하게 했다. 나한테 활동가로 산다고 할 때 돈 문제 보다는 가치의 재생산이 더 큰 문제이다.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자기 확신과 아주 더딜지라도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는 믿음이 내 안에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절망이다. 나를 포함한 친구들에게 여성주의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한 학기 한 학기 지나면서 그 부분이 흐릿해져 가는 게 힘들다. 이제 총여학생회도 없다.
“미안한데, 먼저 갈게.”
여성회의가‘영감의 배합, 한층 더 고양된 투쟁의 의지’만으로 미화되는 것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평가회의 자리에서 계속되는 발언이 있었는데 이것이 봉합되는 것도 원치 않았다.
여성회의 에프터 또한 결론이나 대안이 있는 집중된 주제로 토론이 되지 못했으며 어떤 참가자들은 “미안한데, 먼저 갈게.”라는 문자를 남기고 떠났다. 누구도 대답할 수 없는 문제라며 회피하기도 했다. 공식적인 토론의 장에서 여성회의가 상징하는 여성운동의 현주소를 입체적으로 고민해보자. 한 것이 여성회의 에프터이다. 벨 훅스는 개혁적 자유주의 미국 페미니즘의 문제를 비판하면서 문제는‘우리가 페미니즘이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를 하지도 않았고 만들어내지도 못했다’고 했다.3) 지금 운동하는 그‘여성주의’를 합의해 가는 과정에 여성회의와 여성회의 에프터는 분명한 기여를 했다고 본다. 또 이토록 예민한 자의식을 타고나서 분노도 의문도 성찰도 열심인 사람들이 있다는 것, 먼저 간다는 인사를 울면서라도 받을 수 있는 이가 있는 것은 복이다. 에프터의 에프터… 그것의 에프터.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 자체가 역동이며 그것이 우리를 위안과 투쟁의 장으로 안내한다고 믿는다. 각자의 위치에서 보다 넓어진 자장에서 서로를 인식하고 여성주의를 제안하고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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