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8월호 [민우칼럼 창] 마음 한 구석을 떠나지 않는 이름이 있다.
▣ 민우칼럼 창
마음 한구석을 떠나지 않는 이름이 있다
장지연 ● 한국여성민우회 이사
워낙 글을 쉽게 잘 못쓴다. 힘겹게 쥐어짜는 타입이다. 이럴 줄 알면서 왜 쓴다고 했을까 후회도 되고… 글 써서 먹고 산다는 사람이 이래도 되는지 한심스럽다는 생각도 들고…
더군다나 머릿속에는 요즘 한참 생각하고 있는 연구 질문이 꽉 들어차 있어서 모드 전환도 쉽지 않다. 우리나라처럼 자영업 비중도 높고 비정규직도 많은 노동시장구조를 가지고 복지국가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버거운 질문을 떠안고 이런 저런 책들을 뒤적이고 있던 참이었다. 이런 와중에도 마음 한구석을 떠나지 않는 이름이 있다. 김진숙. 그녀는 우리를 지키고자 그곳에 올랐다.
우리는 그녀를 지킬 수 있을까? 그녀가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만을 위해서 거기 오른 건 아닐게다. 노동이 쓰고 버리는 상품이 된 세상.
‘우리 아이들이 아버지 직업란에‘노동자’라고 당당하게 써 내는’* 세상을 꿈꿔온 그녀는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35미터 크레인 위로 올라갔으리라.
세계적인 경기후퇴 속에서도 우리나라 기업은 선전하고 있다며 자랑인데, 정부가 낮은 금리와 노동탄압으로 뒷배를 봐준 덕분에 잘 나가고 있는 것이니, 도대체 누구 좋은 일하는 것인지는 새삼 말하자면 입만 아프다. 잘 나가는 대기업일수록 머리 싸매고 생각해 내는 거라고는 ‘우리’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일뿐이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인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번 한진중공업처럼 정리해고자 명단을 발표하는 방법과 다른 하나는 한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두고 다른 회사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방법(사내하도급). 이렇게 십 수 년 하다 보니 대기업이 우리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날로 증가하는데, 임금노동자 중에서 대기업에 속해 있는 노동자의 비중은 그 사이 절반으로 줄었다.
비용 절감한다며 찍어 누르는 대기업의 압력은 중소업체로 내려가면 마음 한 구석을 떠나지 않는 이름이 있다.
실업자와 비정규직과 영세업체 노동자, 그리고 자영업자, 서민 모두의 맨 앞에 정규직 노동자 당신들이 서 줘야 한다. 그리고 그 맨 앞 외로운 자리에 지금 김진숙씨가 서 있다.
그래서 우리는 희망버스와 함께 그녀를 응원한다.
기가 막힌 근로조건을 만들어내고, 그보다 더 가슴 먹먹한 영세업체 노동자의 형편을 만들어 낸다. 수습기간이라는 이름을 달아서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주는 업체들을 전전하면서, 청년들은 시들어간다. 식당과 청소용역, 돌봄서비스 이외에는 갈 곳이 보이지 않는 여성들에게도 최저임금은 표준임금이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인권을 깡그리 무시해도 사고가 적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외국인 노동자에게로 눈길을 돌리는 게 우리나라 기업이다.
‘비정규직은 울고 정규직은 잔업과 성과급에 영혼을 파는’* 형편이지만, 이들이 서로 상관없는 남이던가. 100만원짜리 정규직을 잘라내면 그 자리에 70만원짜리 용역직을 쓸 수 있고, 용역직이 ‘우리 사람’아니라는데 동의해 주는 대가로 정규직이 성과급을 더 받을 수 있다면서 이들을 갈라놓으려고 하는 세상에서, 김진숙이 고공에서 온 몸으로 외치는 것은‘연대’라는 소리로 내게는 들린다. 대기업 정규직의 고용안정이 무너지면 노동시장에 일자리가 더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냥 모든 일자리가 불안정해지는 세상이 되는 것 뿐이라고….
정규직 고용이 경직적이어서 기업이 비정규직을 쓰게 되었다는 논리를 우리 자신도 모르게 내면화해 온 세월을 보냈다. 노동을 유연화하고 보니 일자리가 더 많아 지더라며 덴마크의 사례를 소개하는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정작 그 나라의 노동자들은 왜 노동유연화를 받아들이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만약 우리 사회에서 일자리간 임금격차가 지금보다 한참이나 적다고 생각해 보자. 만약 당신이 일자리를 잃는다면 3~4년 동안은 이전 임금의 최고 90%까지 실업급여로 지급하고, 저소득층이라면 그 이후에도 급여액수는 낮추지만 기간은 무한정 지급한다고 해 보자. 영유아 보육에서부터 대학졸업까지 자식 공부시키는 데 돈 들 일이 거의 없고, 아파도 병원비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면, 노후에도 생활비나 간병수발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우리도 이런 사회라면, 나도 김진숙 씨에게 뭐하러 거기까지 올라가셨냐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사회에는 아직 정규직 노조가 맨앞에 서서 해 줘야 할 일들이 많다.
실업자와 비정규직과 영세업체 노동자, 그리고 자영업자, 서민 모두의 맨앞에 정규직 노동자, 당신들이 서 줘야 한다. 그리고 그 맨 앞 외로운 자리에 지금 김진숙 씨가 서 있다.
그래서 우리는 희망버스와 함께 그녀를 응원한다. 노동부장관이 나서서 제3자는 빠지라며 압력을 넣는 발언을 했지만, 희망버스를 타고 김진숙씨를 만나러 간 사람들은 제3자가 아니다. 그녀가 한진중공업 사태의 제3자가 아닌 것처럼.
그녀를 지키는 게 우리를 지키는 건데, 어떻게 하면 우리는 그녀를 지킬 수 있을까?
* 김진숙의「소금꽃나무」에서 인용한 부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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