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8월호 [기획] "장녀로 산다는 것은, '삶의 비밀'을 좀 더 일찍 알게 되는 것"
▣ 기 획 나 는 【절대로】 장 녀 다
“장녀로 산다는 것은,
‘삶의 비밀’을 좀 더 일찍 알게 되는 것”
첫째 딸 얻은 부모의 위로 섞인 자조와, 맏딸에게 부여된 의무와 강박.
그 어중간한 사이 그쯤 존재하는 <장녀는 살림밑천이다>라는 그 말을 기억합니다. 이 시대 ‘장녀’는 어디쯤에서 어떤 얼굴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장녀들의 불꽃 수다회,
장녀인 회원 한새, 물결, 보노, 꼬깜이 만나 나눴던
첫 번째 여자 자녀로서의 삶, 1장 1막
*A 저는 딸 셋 중에 첫째 딸이에요. 막내는 제가 중1 때 태어났어요. 아들 낳으려고 가졌는데 딸인 거야.(웃음) 거의 자식처럼 키우고 살았어요. 이렇게 얘기하니까 거창해 보인다. 첫째로서 누렸던 것도 되게 많았던 거 같아요. 뭐든 첫 번째 혜택을 다 누리니까. 둘째는 그거에 대한 억울함이 되게 많더라고. 술 먹으면 만날 울면서 그 얘기해요 언니는 다 가졌다고. 엄마는 평생 A엄마라고 불리지 않았냐고. 자기 이름은 드러난 적 없다고.
일동 어우~ 동생 정말 그랬겠다.
*B 나는 집이 되게 어려웠어요. 엄마는 부업 하고, 아빠는 만날 늦게 들어오니까 늘 동생들 하고 놀아주고 그런 건 내가 했던 거 같아. 부모님이 많이 배우지 못하고 가난하니까 나에 대해 공부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많았어요. 항상 좀 더 잘하고 좀 더 완벽하고 좀 더 모범적이길 원했기 때문에 혼을 많이 내셨어요. 별거 아닌 거에.
*C 저는 일란성 쌍둥이에요 (일동“우와”) 남자랑 여자랑 쌍둥인데 제가 누나고 남동생이 하나 있어요. 어제 제 생일을 기념에서 엄마 인터뷰를 했어요.(웃음)
“엄마, 날 처음에 낳았을 때 어떤 생각을 했어?”하고. 그랬더니 처음 딱 딸이라고 했을 때 이제 얘랑 같이 인생을 잘 헤쳐나가야겠구나! 싶었대요. 동반자같이.
*A 깨인 분이시다.
*C 네. 근데 바로 삼십분 이어서 남동생이 태어나는 거예요.(웃음)
*D 엄마가 쌍둥인 줄 몰랐대요?
*C 알긴 알았는데 아들이랑 딸일 줄은 몰랐대요. 여자 둘인 줄 안 거지. 전 장녀긴 해도 동생에 대한 모든 기대를 엄마와 같이 뒷받침 하는 그런 역할로만 살았어요. 엄마가 막 그런 얘기를 해요. “나는 니보다 동생이 더 잘 될 줄 알았다”고. 우리 엄마가 좀 솔직하거든요. 전 아직도 동생 대학 등록금 내고 있어요.
안쓰러워요. 동생들.
*D 남동생은 내가 키웠으니까. 나랑 나이 차이가 워낙 많이 나니까. 대들지는 않는데. 문제는 여동생이야. 툭 하면 대들고 툭 하면 뭐하고 사고만 치고. 그래서 우리 아빠가 막내가 잘못하면 셋 다 때려. 너무 화가 나는 거야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나보고 관리부족이래.
*B 한국 문화여. 연대책임.
일동 맞아, 맞아
*D 근데 나는 내가 더 많이 맞았어. 네가 장년데 챙기지를 못 했다고. 맞는 건 이골이나. 특히 우리 아빠가 군인이에요 야구방망이로 때렸어. 근데 그런 게 있잖아요. 나는 컸기 때문에 덜 아픈데 쪼끄만 동생들이 때리는 거는 어린 나이에 봐도 아빠가 너무 미운거야 내 기억엔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거 같아. 아빠가 방망이로 때리는데 내가 방망이를 딱 잡은 거야. 이런 말을 했던 거 같아. 동생들 때리지 말고 나 다 때리라고.
일동 와 멋지다.
*D 근데 아빠가 나만 때리더라고 진짜.(웃음) 근데 그때부터 판권이 확 바뀐 거야. 동생들이 그걸 봤잖아. 나한테 복종을 하네.
*A 막내여동생 잡았어. 이제
*D 그니까. 이제 막내부터 남동생 여동생 다 잡은 거야. 그때 당시엔 어린애를 왜 때릴까? 반항심이지 얘들을 사랑해서가 아니야. 솔직히. 아빠가 싫었던 거지. 그날부터 동생들이 물 떠와 그러면 물을 떠오고 조용히 해 그러면 딱 조용히 하고.
*A 하하하
“자식들만 자기들 속 썩이는 줄 알지? 부모들도 만만찮아.”1)
*D 나는 상고를 나왔어. 그때 당시 아빠가 돈을 많이 못 벌었어. 또 아빠가 그런 게 있어. 군인이어서 계속 다니면 연금도 나오는데 욱하는 성격에 나왔어. 문제는 아빠가 지도를 그리러 다니는 거야. 혼자 김정호야. 내가 어릴 때 팻말 들고 서 있으면 알아서 센치 재고. 그렇게 온 동네를 다 돌아다닌 거 같아. 문제는 돈을 벌 생각을 안 해. 온 팔방을 다니면서 그린 거야 대동여지도같이 만든 거지. 근데 문제는 책을 내야하는데 돈이 없잖아.
그래서 내 월급으로 만들었지. 이 지도를 만들어서 대한민국을 살리겠다는 생각만 하고.
*A 엄마는?
*D 엄마는 애들 키우고 뭐하느라고. 부업. 눈 붙이고 뭐하고. 쪼들리게 사는데. 어쨌든 나는 돈을 벌면 다 집에다가 다 퍼줬어.
일동 (그야말로) 살림밑천이네.
*D 언젠가는 방에 연탄이 샌 거야. 내가 잤던 방에는 연탄이 안 샜고. 엄마아빠랑 남동생이 자는 방에 샌 거야. 내 여동생은 가출이 전문이라 안 들어왔어. 엄마가 문을 열면서 컥컥 거리는 소리에 깬 거야. 일어나서 보니까 장난이 아닌거야. 연기가. 그래서 119를 불러서 그 산 꼭대기에 응급대원들이 와서 엄마 아빠 남동생을 다 싣고 가고 내가 보호자로 간 거야.
*B 무서웠겠다
*D 그때가 스무 살, 스물 한 살? 그러니까 병원에 가서 보호자 동의서를 쓰면서 처음 내가 안거야. 엄마아빠가 죽으면 내가 얘들을 책임져야 하는구나. 그런 거 있잖아 있는 거 먹여 살리는 거랑 없는 거 먹여 살리는 거 다르잖아. 그러니까 엄마아빠가 꼭 살아야 한다. 뭐냐면 내가 아무리 돈을 해서 먹여 살려도. 엄마 아빠가 있으면 청소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고(할 거 아냐) 그래서 꼭 살아야 하는 거야. 그때 엄청 울었던 거 같아. 살려 달라고 꼭 살려달라고.
부모도 내가 첫 경험이잖아.
*A 저는 다른 분들과 달리 장녀로서 기대에 잘 부응 못하고 살아요. 잘하고 싶지도 않
고. 반항적인 유년기를 보냈어요. 공부를 안 하고 싶은데 과외를 막 시키고 너무 하기 싫
은 거야. 억지로 되는 스타일이 아니거든. 근데 첫째잖아. 인정을 못 하는 거야. 아들이
없으니까 (나에 대한)강박이 엄청 난거야.
*B 그래야 집안이 안 망한다는 거야
*A 어어. 막내가 어리잖아. 내가 잘해야 막내도 잘된다는 거야. 내가 봤을 땐 둘째가 잘하거든. 걔한테 의지하면 될 거 같은데(웃음) 조금 집착인 거 같아. 그리고 신기한 게 뭔지 알어? 나한테 심하게 하고 나잖아. 둘째부터는 느슨해져. 나를 통해 시행착오를 겪은 거야. 둘째는 잘해도 관심이 없어. 걔는 걔대로 억울한 거지. 공부뿐만이 아니라 모든 시기를 겪는 첫 번째 자식이잖아. 대학 갈 때 술 먹고 안 들어오잖아. 그러면 열두 시만 넘어도 난리나. 나는 정말 그게 지긋지긋했어. 둘째는 안 들어와도 물어보지도 않아. 똑같이 늦게 들어오고 똑같이 여잔데. 나는 이해가 안 되는 거야.
*B 나는 너무 궁금해서 엄마한테 (왜 첫째한테만 그러냐고)한번 물어봤어. 자기는 자식을 처음 키운 거라 너무 당황스럽고 그 당시에 최선을 다했다고(그러더라) 만약에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너무 당황스러워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 거래. 엄마는 배운 것도 별로 없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삶을 살아가는 어쩔 수 없이 같이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로서 책임감을, 부모에게만 있는 무거운 책임감을 장녀한테 좀 나눠 주는 거 같아.
*D 그게 부모님한테도 필요할 거란 생각이 들기는 해.
*A 맞아. 첫 번째니까.
*D 하지만 힘들 긴 힘들었어. (첫째라는 강박 때문에) 내가 돈 쓸 줄을 모르는 거야. 돈을 벌게 되면서부터도 돈을 못 썼어.
*일동 (여기저기) 나도 나도.
*A 첫째라 그런가? 집에 돈이 없는 걸 제일 먼저 봐서 그런가?
*B 내가 어렸을 때 쌀을 한 말씩 사다뒀어. 그게 270원인가? 그랬어. 엄마가 300원을 주면 30원이 남아. 그럼 나는 엄마한테 주는데. 동생은 30원 내가 가질게 그래. 그럼 나는 동생한테 엄마 돌려줘야지. 그럼 동생이“누나 30원 잃어버렸다고 하고 맛있는 거 사
먹자.”그럼 난 그게 안 되는 거야. 엄마 아빠 힘드신데. 잘은 못해도 그런 마음은 있지.
일동 그래그래.
*A 아마 생계유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무거운지 먼저 봐버려서 그런 것 같아.
삶의 비밀을 그래도 제일 먼저 알아서 그런 걸까.
주1) kbs <굿바이 솔로>, 2006, 노희경작가, 민호(천정명 역) 대사 중
경석 : 누나는 엄마같이 구질구질 해.
선경 : 엄마는 구질구질한 게 아니라 정이 많으셨던 거야.2)
*C 나는 연애를 하고 있거든요. 주말에 만나려고 하면 나는 집이 먼저라서. 엄마가 집에 계시니까. 엄마랑 둘이 살거든요 아빠는 원래 없었으니까 엄마랑 일요일을 보내야 되는 거예요. 엄마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가게 가시고 일요일엔 나랑 있어요. 그니까 연애를 할 수가 없는 거예요(웃음) 데이트는 평일에만 퇴근 후에.
*B 일요일에 뭐하는데?
*C 엄마랑 그냥 집에 같이 있는 건데. 동생은 따로 사니까.
*B 엄마가 그걸 원하세요?
*C 절대 원하진 않는데 왠지 나 혼자 그래요. 내가 엄마랑 같이 집을 지켜야 한다는 그게 있어서.
*A 정말 첫째 딸은 엄마랑 관계가 특별한 거 같아. 좋든 안 좋든. 이상하든 어쨌든. 애증이요. 좋은 파트너일 때도 있고. 진짜 싫기도 하고. 8년 전에 엄마가 갑자기 쓰러졌다. 뇌출혈로. 너무 쇼크를 먹은 거야. 아빠랑 대화를 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갑자기 나를 부르는 거야
*D 어 무서워.
*A 어 그거 되게 무섭다…. 잠깐 어디 같이 가재. 병원.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그런 경험은 처음 해봤는데. 엄마가 누워 있는데 전신마비였어. 근데 내 동생은 안 데려가고 나만 데려가더라고. 응급실에서 그 장면이 잊을 수가 없다. 그 장면이 평생. 엄마 전화만 오면 무조건 받거든 뭔 일 있을까봐. 근데 솔직히 엄마가 죽을까 봐도 걱정인데 아빠랑 둘이 남는 게 더 공포였어.
*B 나는 엄마를 약간 하대했던… 뭐라고 그러지. 엄마는 약간 나를 사랑해주지도 않았으니까. 그런 어떤 가족 내의 권력 관계 때문에 더 그랬던 거 같아. 엄마 아빠의 인간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원으로 아빠는 나가서 돈 벌어오고 엄마는 살림하는 기계로 만들어버리는 사회 구조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걸 용서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던 거 같아.
*D 난 엄마가 못 되지는 않았거든. 아빠가 싫었지. 엄마가 불쌍했어. 엄마랑 애증 관계보단 아빠랑 애증관계야. 엄마는 애증관계보단 너무 불쌍했지. 엄마가 그렇게 불쌍 한거야. 꼭 나 같았어.
주2) <가족의 탄생>, 2006, 김태용 감독, 선경(공효진 역)과 경석(봉태규 역)의 대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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