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8월호 [기획] 장남과 장녀의 연대기
▣ 기획 나는 【절대로】장녀다
장남과 장녀의 연대기
살림(김민균) ● 한국여성민우회 회원
♥ 장녀, 장남과 결혼하다
35년 전 한 시골마을에서‘장남’과‘장녀’가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장남’은 위로 누나가 둘이요, 밑으로 동생이 다섯입니다. 장남의 아버지는 진작부터 생업에서 손을 놓았고 장남에게 가족부양의 짐을 모두 떠넘겼습니다. 왜냐하면‘장남’이 있으니까요.
‘장남’은 면사무소 말단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여덟 식구 생활비를 벌어야 하고, 동생들 학비를 마련해야 하고, 부모의 빚을 갚아야 했습니다. 왜냐하면‘장남’이니까요.
한편‘장녀’는 밑으로 여동생 둘에 남동생이 하나입니다. 그 시절이 늘 그렇듯 ‘장녀’의 부모는 남동생을 애지중지 키우느라‘장녀’는 관심 밖이었습니다. ‘장녀’가 대학을 가든 말든, 직장을 구하든 말든 그저 좋은 혼처 만나 일찍 결혼하길 바랐습니다. ‘장녀’는 어렵사리 읍내 보건소에 취직해서 일을 하던 중에‘장남’을 만나 결혼을 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장녀’의 어머니는 사위될 사람이 장남인 데다 형제도 많은 것이 여간 마뜩치 않았습니다. 지인들도 결혼을 만류했지만 결국‘장녀’는 세 동생과 홀어머니를 뒤로하고 시부모와 다섯 시동생이 있는 시댁으로 갔습니다.
★ 장남, 태어나다
사실 장남이 갓 태어났을 때 장남은 막내였습니다. 만약 장남의 부모가 더는 자식을 낳지 않았더라면 장남은 외동아들이 될 뻔도 했습니다. 하지만 장남의 부모는 ‘자식은 재산이요, 낳기만 하면 저대로 큰다.’라는 믿음으로 전후 한국사회의 베이비붐에 일조 하면서 장남은 졸지에 동생이 다섯이나 생겼습니다. 없는 집 팔남매가 복작 거리면서한데 살면서도 장남은 장남답게 컸습니다. 장남의 두 누나들이 초등학교까지만 나오고 일찍 결혼한 것에 비해 장남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두 딸을 밑천 삼아 장남을 공무원으로 만든 장남의 부모는 아주 모범적인 자식농사를 지은 것으로 마을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장남은 아버지를 제치고 가족 내에서 단연 으뜸으로 올라섭니다. 이게 장남의 순리니까요.
★ 장녀 길러지다
반면, 장녀는 첫째로 태어나는 바람에 꼼짝없이 장녀입니다. 왜냐하면 그 시절이 다 그렇듯, 장녀의 부모는 아들이 필요했고, 아들을 낳을 때까지 자식을 계속 낳을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장녀도 졸지에 동생 셋을 얻었습니다. 모든 맏딸이 그렇듯 어린 시절 장녀는 참는 것부터 배웠습니다. 배려와 희생을 제일 덕목으로 배우며, 동생을 잘 돌봐야 하는 것은 물론 어머니의 빈자리도 장녀의 몫이었습니다. 장녀는 이 모든 일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배우며 자랐습니다. 그래서 항상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안 해도 될 걱정을 혼자 사서 합니다.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남은 어머니가 맏딸도 치르지 못하고 있으면 행여나 흉이 될까봐, 벌써 혼사 얘기가 오가는 여동생이 자신 때문에 부담을 가질까봐 장녀는 덜컥 결혼을 해버렸습니다.
♨ 장녀, 장남의 아내라서
장남과 장녀가 결혼한 뒤에도 시댁 식구들은 모두 장남만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장남과 장녀는 장남의 부모가 진 빚을 거의 다 갚을 무렵 장남의 남동생을 외국으로 유학 보내야 했고, 뒤이어 장남의 막내 여동생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야 했으며, 그 와중에 아이들도 태어나 집도 새로 장만해야 했습니다. 장녀는 항상 쪼들리는 살림 탓에 결혼하면서부터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것을 내심 아쉬워 했지만 별다른 도리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은, 알고 보니 장남은 3대 종손이었습니다. 설, 추석을 제외하고도 1년에 제사를 세 번이나 지내야 합니다. 당장 내일 먹고 살 게 막막해도 제사는 어김없이 돌아오고, 없는 살림에도 제사상은 올라갔습니다. 또 사촌은 기본이고 육촌에 팔촌까지 장남과 장녀가 두루 살펴야 하는 집안 대소사가 여간 많은 게 아니었습니다.
장남은 문중 일에도 곧잘 불려가서 종종 일을 맡아옵니다. 그래도 장남은 문중에서 나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3대 종손인 것을 기꺼워했습니다. 하지만 장녀에게는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랍니까. 챙겨야 할 것도 많고, 돈 드는 일도 많은 장남의 짐은 고스란히 장녀에게로 떠밀려왔습니다. 왜냐하면 장남의 아내이기 때문입니다.
♨ 장녀 걱정이 많다
맏며느리 역할만으로도 벅차고 불감당인데,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장녀의 홀어머니마저 돌아가셨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장녀는 어머니를 여읜 슬픔에 젖어 있을 겨를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밑으로 세 동생들이 더 걱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초등학교 교사를 하던 둘째만 겨우 마음을 추슬렀을 뿐, 셋째인 남동생은 어머니를 잃은 설움에 성경을 찢고 세상을 원망하면서 다니던 대학을 자퇴해버렸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막내 여동생도 혼자 자취방에서 눈물로 밤을 지새우다 의욕을 잃고 대학진학도 포기해버렸습니다. 장녀는 당장 달려가서 동생들을 부여안고 마음을 다독여 주고 싶지만 시댁에 매인 몸이라 마음만큼 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둘째인 여동생이 생활력이 있어 동생들을 챙기고 뿔뿔이 흩어져 있던 동생들을 모아 한집에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 둘째는 졸지에 두 동생을 떠맡아야 하는 바람에 잘 되어가던 혼사가 그만 그르치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자신이 부모도 아니고 장녀도 아닌데 이렇게 된 게 못내 서러워 언니와 두 동생들을 두고두고 원망했습니다. 장녀는 이 모든 게 자기 책임인 것 같고, 동생들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는 자신이 처지가 무척 처량하게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장녀의 남편인 장남은 그다지 살갑지가 못했고 친정 일에 선뜻 나서지도 않는 것 같아 장녀는 속상하기만 했습니다. 그러게요. 사위는 정말 백년 손님인가 봅니다.
♨ 장남, 장남된 도리 때문에
하지만 장남에게도 시련(?)은 있었습니다. 공부하러 해외로 나간 장남의 남동생이 어려운 시험에도 합격하고 승승장구하면서 장남의 입지가 점점 좁아졌기 때문입니다. 장남은 장남된 도리로 부모를 봉양하지만 장남의 부모는 침이 마르도록 남동생을 칭찬하고 다른 동생들도 장남보다 장남의 남동생을 더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또 도시로 나간 나머지 동생들도 제법 형편이 나아지고 곧잘 살게 되면서 저마다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장남의 부모
도 이제 가끔씩 걸려오는 동생들의 안부전화를 그렇게 반길 수 없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동생들이 달마다 부모에게 부쳐주는 용돈이 제법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뒤로 집안 대소사나 가족 모임 때면 장남의 말수는 적어지고 다른 형제들의 목소리는 커져 갔습니다. 가장 못난 나무가 산을 지킨다고 하던 옛말처럼 잘난 동생들이 도시로 나간 뒤 장남은 고향에 남아서 점점 못난이가 되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장녀는 손수 담근 김치며 밑반찬, 참기름 병을 들고 둘째, 셋째, 넷째 동생들 집을 차례로 도는 일을 십여 년째 하고 있습니다. 장녀의 손맛이 장녀의 어머니를 그대로 닮았기 때문에 동생들이 장녀가 해주는 반찬을 그리워하기 때문입니다. 장녀는 무거운 반찬통이며 기름병을 이고 지고 매고 동생들 집에 들러 한 보따리 풀어놓습니다. 그러면 이런 저런 지난 이야기가 오가고, 자연스레 미안했던 기억과 서러웠던 때, 고마웠던 순간, 원망스러웠던 일들도 함께 풀어놓고선 눈물을 한바탕 쏟아내곤 합니다. 장녀는 부엌 찬장에 가득 한 빈 반찬통 개수만큼 걱정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장남은 문중의 족보 수정 작업과 출간 작업에 심혈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 덕분에 장남의 자식들 이름까지 적힌 새 족보가 나왔고, 뿐만 아니라 컴퓨터로도 족보를 열람할 수 있게 CD로 제작해서 가족들에게 배포했습니다. 사촌에 팔촌까지 만나는 친척들마다 나눠줬는데도 아직 서재엔 수십 권의 족보가 쌓여 있습니다. 아마 장남은 서재에 쌓인 그 족보의 무게만큼 내려놓고 싶은 짐이 많은지도 모르겠습니다.
눈치 채셨는지 모르겠지만 위 이야기에서 장남은 제 아버지고 장녀는 제 어머니입니다. 장남과 장녀, 맏며느리와 맏사위로 살아온 아버지와 어머니의 지난한 역사를 돌아보면 가부장제에 봉박당해 스스로를 지하 감옥에 가둬놓고 살아온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큽니다. 사실 제가 들은 이야기보다 제게 못 다한 이야기는 또 얼마나 더 많을까요. 아마 짐작도 못하겠지요. 얼마 전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우리 가족사에도 한 매듭이 지어졌습니다. 이제 두 분이 장남과 장녀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지난한 60여 년의 삶을 너그러이 굽어볼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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