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8월호 [ 문 화 산 책 ] 아, 사랑하는 소녀들아
▣ 문 화 산 책
아, 사랑하는 소녀들아
---- 나의 걸그룹 예찬론 -
승짱(조승미) ● 한국여성민우회 회원
걸그룹이 대세다. 각종 음원차트 순위를 휩쓴 바 있으며, 멀리 유럽서도 화제다. 한류수출이라는 둥 틀에 박힌 소리는 듣기 싫다. 쏟아지는 낮잠을 단박에 깨워주거나 왠지 축축 쳐지는 날 흥겹게 북돋아 주는 음악이 걸그룹 노래다. 귀엽고 섹시하다. 충전~. 이젠 손가락을 다 꼽아도 모자랄 정도로 많은 걸그룹. 우열을 가리기도 어렵다. 나긋나긋한 멜로디에 절도있는 랩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의미없는 가사가 반복되고 춤까지 특이하면 금상첨화다.
2009년 가을, 애프터스쿨의 멤버 유이를 놓고 한창이던 일명‘꿀벅지’ 논란. 성적 별칭 때문에 ‘비하냐 아니냐’로 논쟁이었는데, 당사자 유이가‘(자신이) 알려지게 돼 기쁘다’란 요지로 말해 일단락됐다. 이를 어찌 봐야 하나 고민을 하던 차에 예능 프로를 자주 보게 되고, 나름대로 팬질을 한 덕분에 발언의 맥락을 알게 됐다. 유이의 소속사가 비교적 규모가 작아 일종의 홍보기회로 생각한 듯 하다. 실제 유이는 체고 출신에 국가대표급 정도로 수영을 잘해 운동선수에 가깝다.
“소녀들도 남다른 특성이 많다”
짧은 치마∙하이힐 등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해 천편일률적으로 보이는 걸그룹 소녀들도 찬찬히 살피면, 각기 남다른 특성이 많다. 가녀린 용모임에도 불구하고 차력으로 무려 2.5톤 트럭을 2m나 끄는 구하라(카라), 성공 후에도 어머니와 반지하 월세방에 살고있노라 고백한 나르샤(브아걸),‘ 병신춤’의 대가 고공옥진여사의 조카손녀로 탁월한 비트감을 보이는 공민지(투에니원), 쓸개즙이 장으로 배출되지 못하는 담도폐쇄증으로 어린 나이에 대수술을 하고도 예능 경주대회 우승을 차지한 달리기 여왕 효린(씨스타), 보이시한 차림에 발표곡마다 출중한 랩을 선보이고 있는 대만계미국인 엠버(에프엑스), 스무 살 나이로 가수 꿈에 반대하는 집을 가출해 보아의 백댄서로 일한 적 있는 춤꾼 가희(애프터스쿨)….
돌이켜보면, 아이돌 팬 첫 세대로 자란 내 학창시절은 그야말로 보이그룹 열풍이었다. 90년대 초중반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미국 아이돌 뉴키즈온더블럭이나 서태지와 아이들 콘서트에 아예 수업을 결석하고‘오빠’를 외치러 가기도 했다. 90년대 후반 비로소 핑클 등 국내 걸그룹 1세대가 등장하긴 했으나 걸그룹 수는 한 두 개로 한정적이었다. 요즘처럼 많은 수의 걸그룹이 등장하기까지 꼬박 이십여 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소녀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예전으로 돌아가 요즘 같으면 어떨지 상상해본다. 혹여나 걸그룹 언니가 날 한번쯤 봐줄까 노심초사하며 트위터로 팔로잉하지 않을까. 소녀시대의 일본 여성팬처럼 의상과 춤을 따라하며 닮고 싶어 하는 워너비(wanna-be)족이 되어있진 않았을까. 혹은 걸그룹 멤버 간의 사랑을 대담무쌍하게 묘사한 팬픽을 줄곧 읽는 궁극의 오덕후는 아닐까. 후후.
그런데 현실은 만만치 않다. 성형이나 노출차림 강요, 쥐꼬리만 한 월급 등 소속사와의 일방적 착취에 휘둘리거나 잊을만하면 스폰서 운운하는 의혹이 터져 나오고, 타 그룹과의 불화설이나 그룹 내부 멤버간 왕따설이 틈만 나면 불거져 나온다.
한껏 소녀들의 달콤한 목소리와 몸짓을 즐기면서도 일상생활이나 개성에 눈길 한 번 제대로 안 주고 관련 검색어마다 ‘가슴 ?팬티노출’이 상위 순위에 뜨는 남성중심 사회의 시선이 안타깝다.
대체 왜 그리 몸 밖에 관심이 없는 거냐구!
얼마 전 흥미로운 평을 하나 읽었다. 걸그룹 팬층이 삼촌 및 아저씨라는 예상과는 달리 의외로 이삼십 대 여성팬이 많아 자매애를 느끼는 것 아니냐는 거다. 매우 고무적이다. 일반 남성이 드라마틱한 삶을 사는 임재범이나 뛰어난 연주 실력의 메탈리카 같은 락그룹 등 남성 가수에 열광하듯 걸그룹의 일거수일투족과 음악성에 관심을 갖고 함께 웃고, 우는 여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걸그룹은 물론 대중적 여가수라곤 청순가련형 밖에 찾아볼 수 없었던 그 때 그 시절은 지나갔으니, 성 상품화 논의는 일단 차치하고 세상으로 거침없이 뛰어든 소녀들에게 먼저 박수를 쳐주고 지지하고 싶다. 노래나 춤으로 혹은 작사작곡으로 할 말 다해가며, 당당히 먹고 사는 여성이 많이 늘었으면 좋겠다. 마돈나처럼 정년까지 활동하며 돈도 많이 벌고, 번 돈을 후배 여성 가수를 키우는 데 쓰는 훌륭한 프로듀서도 나왔으면 좋겠다.
“자매애로 지켜줄게요”
보이그룹을 졸졸 따라다니는 ‘오빠부대’나 ‘빠순이’라며 심심치 않게 폄하됐던 여성 팬들. 이미 팬심은 널리 정평이 났다. 거대 상업음반 소속사와의 장기간 전속이나 불합리한 계약 해지 등소위 노예계약도 세상에 알렸고, 멤버 퇴출이나 그룹 해체를 막아냈거나 시도했다.
걸그룹 남성 팬들도 쫌! 본받아야 한다. 하지만‘언니부대’가 오빠부대 시절부터 뜨거운 팬심으로 쌓고 다져온 내공을 먼저 제대로 보여주마.
아, 나의 사랑하는 소녀들아. 어린 나이에 열정으로 세상에 섰는데, 여태껏 이 사회가 불평등해 미안하다. 열여덟에 데뷔해 스물 넷에 스토커 남친에게 무려 예순 번 이상이나 칼에 찔려 세상을 떠난 걸그룹 아이리스 멤버 은미야, 미안해. 트로트 걸그룹이 있단 사실조차 죽음 이후 비로소 알게 됐어.
앞으론 더욱 팬질에 매진해 진한‘자매애’로 너희의 땀방울에 화답할게. 분발할게요. 사랑도 더 많이 표현하고, 힘들때나 슬플 때 꼭 지켜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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