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8월호 [마포나루에서] 원더풀 원지랜드!
▣ 마포나루에서
원더풀 원지랜드!
달개비(정하경주) ●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원지를 아시나요?
경상남도 산청에 있는 작은 마을이랍니다. 작은 컨테이너 박스가 스러져갈 듯 서있는 시외버스 정류소에는 진주, 통영, 사천, 부산 등 인근 지역으로 향하는 버스가 모여들지요. 주말에는 지리산 등반을 하는 검정 쫄 바지로 보일뿐인 등산복에 거대한 배낭을 짊어진 아저씨들로 북적대기도 하구요. 경호강을 끼고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서 강변 쪽으로는 유흥가와 식당, 모텔도 즐비해요. 강변 둔치에는 농구대, 축구대, 배드민턴장, 4km정도 길이의 비상활주로가 있어 동네주민들의 운동코스로 애용되고 있어요. 차로 10분 정도만 이동하면 집과 논만 있는 시골로도, 도심인 진주로도 갈 수 있는 원지는 시골과 도시가 공존하는 곳 이랍니다. 그리고 나의 친구 묵실이 살고 있어요.
시간 밖의
묵실의 집은 작은 산과 강변 둔치가 한 눈에 들어오는 곳이라서 특히 비 오는 날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자연에 흠뻑 취할 수 있어요. 운이 좋으면 비를 피해 처마 및 전기 줄에 앉은 제비 친구들을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도 있기도 해요. 그래서 한 달의 충전휴가를 묵실의 집에서 보내면 마음의 시름들을 내려놓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물론 충전휴가 기간에는 활동비를 받지 않기 때문에 최소한의 비용으로 1달을 지내기에 숙박비가 들지 않는 묵실의 집은 아주 매력적인 공간이기도 했고요.
꼭 해야 하는 일 없이 지낸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시간들을 돌아 볼 수 있는 시간 밖 시간의 시작이었어요.
경호강에 비가 오면
경호강은 1급수라서 민물고기인 버들치, 산천어, 다슬기 같은 보호종이 살고 있어요. 다슬기를 탐내는 사람들은 깜깜한 밤에도 잠수복을 입고 환한 불빛을 밝히며 다슬기 잡이에 여념이 없어요. 그리고 욕심 많은 낚시쟁이들은 커다란 그물을 던져서 작은 버들치와 산천어를 잡아가기도 해요. 이렇게 사람들이 헤집고 다닐 수 있을 만큼 평소 수심이 깊지 않은 강의 하류쯤에서는 산청8경 중 하나로 경호강 래프팅을 즐긴다고는 하는데, 정말 가능할까 약간 의심이 들기는 해요. MB의 사대강 죽이기로 인해 경호강도 물이 점점 말라가고 있거든요. 하지만 폭우가 내리면 원래는 강바닥 이었지만 물이 말라 풀들이 자라던 곳이 채워지면서 경호강의 남북을 잇는 작은 다리도 잠겨버려요. 비가 올 때는 물이 불었다가 비가 그치면 다시 강바닥이 보이기를 반복하지요. 가끔 원지에서 지낼 때는 비 내리는 강변이 낭만적으로 느껴졌지만, 한 달 동안 있으면서 지켜본 강변은 가장 현실적인 공간 이었어요. 물이 마른 강바닥에 자란 풀무더기 속에 꺼병이(꿩새끼)를 비롯한 아기 새들은 갈 곳을 몰라 울어대고, 알을 낳은 부모 새들은 물에 잠긴 알과 생이별을 해야 하고, 이름 모를 풀벌레들과 흙속 지렁이들도 대참사에 스러져 갈 것을 상상하니 강이 건강하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진주역에서 기차를 타고 40여분 거리의 하동에서 만난 섬진강도 바닥이 반 이상 드러나 있는 것은 경호강의 현실과 다르지 않았어요. 떨어져 있지만 이어져 있는 강의 생명들이 서울에서 보다 더 절실히 다가왔어요.
한강 로드킬(Road kill)
한 달이 언제 끝나나 싶었던 길었던 휴가를 뒤로 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면서 겨울 동안 타지 않았던 자전거 출퇴근을 시작했어요. 청계천과 중랑천을 지나 한강을 따라 망원동까지 1시간 10분의 거리를 자전거로 달려서 출근을 하면서 햇볕, 바람, 풀, 꽃, 나비를 만나는 일이 마냥 즐거웠지요. 하지만 태풍의 영향으로 폭우가 내린 후 자전거로 출근하면서 로드킬을 목격하는 일이 생기면서 강의 둔치로 자건거 출퇴근을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생겼어요. 한강도 사람의 편의를 위해 강에 보를 세우고 둔치를 만들어 인공적으로 조성한 공간이라서 원래 그곳에 살고 있는 참게, 지렁이, 애벌레들이 자전거에 깔려 죽는 로드킬이 발생하게된 거니까요. 속도를 줄여 천천히 달리면 도로를 횡단하는 작은 생물들을 피해갈 수 있지만, 바쁜 서울 사람들은 빠른 페달 질을 하며 오늘은 얼마나 빨리 목적지에 도착했는지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원더풀 원지랜드!
서울 생활에 적응할 때 쯤 묵실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잠깐만 기다려봐 하더니 음악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 같았는데, 원지 강변에서 누군가가 색소폰 연주를 하고 있는 소리를 전화기로 전해준 거였어요. 원지 강변에서 캠핑을 즐기고, 땡볕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거나, 술에 진탕 취해 싸움도 벌어지고, 아무도 없는 새벽녘에는 사랑을 나누기도 하는 삶의 모든 일들을 다 일어나는‘원지랜드’는 여전히 성업 중이었어요. 자연과 사람의 공존을 위한 한계가 어디까지 일지 고민이 되는 이 순간 나의 삶의 좌표는 어느 곳일지 고민이 되네요. 100% 인공적인 놀이시설 에버랜드 보다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며 흥미진진하게 북적대는 원지랜드에 한 번 가보시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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