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10월호 [민우 ing] 식당여성노동자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하며
▣ 민우ing
식당여성노동자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하며
안미선(낭미) ●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
봄과 여름 내내 식당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설문조사를 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노력했다.
세상에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들으려면 식당으로 직접 찾아가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 나누며 설문지를 펼쳐야 했다. 본부의 활동가와 회원, 여휴인 실천단, 그리고 아홉 개 지부의 활동가와 회원들, 또한 대학생들, 안내 광고를 보고 연락해 온 지역의 시민들까지. 그렇게 모인 설문지들은 고춧가루도 묻어 있고 구겨져 있기도 하고, 구석구석 식당여성노동자들의 말을 한마디라도 놓칠새라 옮겨 적은 말들까지 생생했다. 354부의 설문지, 354명의 서로 다른 얼굴이 모인 설문지가 전국에서 모였다. 어떤 말들일까? 때로 웃으며, 때로 귀찮아 하면서 때로 무심한 표정을 지으면서.
‘ 어떤 속내를 담아 놓으셨을까?’
통계 속에서 무수한 얼굴들이 어른거리는 것 같다.
“이봐요, 10분은 커녕 1분도 시간이 없다구요.”
하루에 몇 시간 일하냐는 첫 번째 질문에 가장 많이 답변한 근무 시간은 12시간이었다. 종일 일하는 분들의 평일 평균 시간은 11.6시간, 주말은 더 긴 시간을 일한다. 집에 가는 길목에 있는 식당에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밤늦게 그곳을 지나쳐도 불이 환히 켜져 있고 설문 답변을 해 준 낯익은 분이 빨간 앞치마를 두르고 서서 일하는 게 보였다.
밤 10시가 되도록, 10시가 넘어도 그렇게 일하다니. 유리문 너머로 눈을 떼지 못하게 된다. 내가 쉬는 주말에도 그렇게 한결같이 웃으며 일해야 한다는 피곤함을, 나는 첫 번째 통계에서 느끼게 된다. 1~4인의 작은 식당에는 중간에 쉬는 시간이 없다(80%)고 답변했다. 손님이 없는 시간에도 나물을 다듬으며 설문지에 눈길을 주지 않던 모습. 그렇게 쉴새없이 일한 대가로 한 달에 100만 원, 130만 원, 150만 원을 받는다고 적던 글씨들이 떠오른다.
하지만“현재 받는 임금이 깎이지 않는다면 하루 몇 시간 근무하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하나?”는 질문에 평균 시간이 8.7시간이라고 답변했다. 8시간의 꿈. 묵묵히 장시간 일하는 식당여성노동자들도 그렇게 소리 없이 말한다.
“나도 당신처럼 8시간을 일하고 싶다.”
월 3회, 월 2회, 한 번도 쉬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은 쉰다는 것이 식당여성노동자에게 해당되는 상식이 아직 아닌 것이다.
“대신 일할 사람이 없어서 휴가를 내기 어렵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고(46.6%) 임금이 줄어든다는 이유가 그 다음이었다. 그리고 휴가를 내면
임금이 깎였다.(62.3%)
“명절 연휴도 쉬었다고 임금을 깎을 때는 정말 힘들다”고 말하던 식당여성노동자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한 달에 평일 네번 쉰다고 해서 평일 다섯 번 있는 경우 한 번은 더 못 쉬는게 아쉽다던 말도 떠오른다.
일주일에 몇 번 가족과 같이 식사를 하세요?
우리는 설문지에 새로운 질문도 넣었다. 결과를 보니 다섯명 중 한 명이‘없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가장 많은 답변이 주1~2회(40.3%)였다. 일주일에 단 한 번도 가족과 같이 식사를 하지 못하면서 남의 밥상을 차려야 하는 속마음을 그려본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밥을 같이 먹을 시간이 없다는 건 또 다른 허기다.
“4대 보험은 특히 참 필요해요. 말은 안 해도 모두 정말 어려운 사람이기 때문에… 하지만 이 식당에서는 4대 보험을 해 주지 않네요.”
나이든 식당여성노동자의 말이 생각난다. 4대 보험 가입을 하지 않은 경우가 가장 많았다.(35%) 다음으론, 한 개 이상 가입한 경우(35%)였다. 그 가운데 1~4인의 소규모 식당은 4대보험에 전혀 가입하지 않은 비율이 전체의 84.1%였다. 식당일을 노동이라고 부르거나 식당아줌마를 노동자라고 부르는 게 낯선 만큼이나 이들의 4대 보험 이야기는 낯설다.
일을 하면서 어떤 시간이 부족하냐고 물었을 때,‘ 가족과의 시간’을 또박또박 써넣은 이가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론 ‘자신의 문화∙여가 생활’이었다. 다른 이들처럼 아이를 돌보고 함께 식사를 하고 싶은 것이다. 등산을 가고 영화를 보고 여행을 하는 시간을 꿈꾸는 것이었다. 이 문항을 작성할 때 잠시나마 따뜻하게 풀리며, 꿈꾸는 얼굴이 되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리고 이 문항을 다들 좋아하셨다. 몇 시간 일하고 싶냐는 질문 앞에서는 어리둥절해했다.하지만 이 질문은 한 번도 생각 못해 봤다고 들떠했다. 무얼 하고 싶냐는 질문 앞에서는 설레어 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식당여성노동자는 허리, 어깨, 팔다리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77.1%) 심장 질환, 하지정맥류, 화상,베임 같은 사고도 당한다. 우리 앞에 선 그네들은 화상으로 팔과 다리에 붕대를 감고 있거나 다친 자리를 보여 주기도 했다. 약을 먹으며 버티는 일상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들 중 많은 수가 병원이나 약국에 가서 자기 돈으로 치료하고 침묵했다.(67.2%)
“식당여성노동자가 5년 동안 싸워 대법원에서 ‘허리병은 산재’라는 승인을 받아냈다”는 기사처럼, 이들의 병이 직업병이라는 것은 아직도 사회에서 새로운 뉴스거리다. 오래된 고통이 아직도 세상에서는 낯설게 받아들여진다.
설문조사를 하기 힘들었던 이유는 도대체 몇 번을 들러도 식당여성노동자가 가만히 앉아 있는 때를 찾기 힘들었던 데 있다. 유리문 안을 들여다 보면 항상 움직이고 닦거나 무언가를 다듬고 있다. 대부분이 손님이 없어도 일해야 한다(66.4%)고 답변했다.
그리고 핸드폰 통화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52.2%)
“핸드폰은 출근하면 2층에 맡겨 놔야 해요. 퇴근할 때 찾아가야 하구요.”
이 말을 해 준 어떤 식당여성노동자는 12시간 넘게 일하면서 하룻동안 누구와도 통화를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경우다.
서비스업 노동자로서 손님에게 겪는 일에 대해 묻는 문항도 빠지지 않았다.
“요즘엔 전보다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하면서 답해 준 것을 모아 보니 다섯 명 중 한 명은 여전히 불쾌한 신체 접촉이나 성적 농담을 당한다고 답했다.
한 쭈꾸미 음식점에 설문조사 하러 갔을 때, 무표정한 얼굴로 성희롱이‘아주 많다’를 체크하던 식당여성노동자가 떠오른다. 무언가 더 묻고 싶었다. 더 하지 않은 많은 이야기들이 통계 안에 말없이 담겨 있다. 일하면서 손님에게서 겪는 힘든 일을 물었을 때 무시하는 태도나 반말, 음식 재촉이나 잦은벨을 들었다.
“손님들도 인식이 많이 개선되어야 해요. 벨을 습관적으로 누르는 사람이 있어요.”
“나는 임금이나 노동 환경은 식당 업종이 비슷하니까 어쩔 수 없다고 보는 편인데, 손님 때문에 거칠고 악해질 때가 있어요. 모든 걸 다 해 달라고 하면 안 되지요.”
‘왜 식당에서 손님은 왕이 되고 노동자는 하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하고 그 목소리는 묻고 있다.‘ 왜 밥 한끼에 지나지 않는 돈으로 자신들의 영혼까지 상처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하고 묻고 있다. 그리고 손님들은 그들을‘이모’,‘ 고모’,‘ 엄마’라고 불렀다. 듣고 싶은 다른 호칭을 묻는 질문에 어떤 식당여성노동자는‘모르겠다’고 써 놓았다.
다른 이름이 가능하고, 다른 이름을 통해 자신의 노동이 드러날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다. 어떤 이름을 우리는 다함께 상상할 수 있을까?
가장 마지막 문항은 원하는 요구 사항을 묻는 항목이었다.
답변 결과, 첫 번째가 임금 인상(34.8%)이었고, 두 번째가 근무시간 축소(20.4%)였다. 정당한 임금과 휴식을 원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의견을 전달하려고‘심심타파’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 식당여성노동자의 [심하게 긴 노동시간과 심하게 낮은 임금]을 사회적으로 문제 제기 하자는 것이었다. 그것은 식당여성노동자를 더 이상 엄마나 아줌마가 아닌 노동자로 보고, 우리도 더 이상 손님이 아니라 같은 노동자로서 문제를 공감하고 함께 바꾸어 가자는 제안이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무엇이 바뀔까요?”
“나중에 무슨 일을 더 하게 되면 와서 알려 주세요.”
마지막으로 배웅하며 묻던 식당여성노동자의 인사. 그 인사를 모두와 나누고 싶다. 그들의 목소리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진실처럼, 우리의 목소리가 새로운 답변으로 가닿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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