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10월호 [민우 ing ] 작은 꽃 아픔으로 피다!
▣ 민우ing
작은꽃 아픔으로피다!
이소희(바람) ●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
추석 연휴 직전 비가 내리는 금요일 오후입니다. 연휴 직전 마음이 들뜰 만도 하지만 그보다 걱정이 앞섭니다.
‘ 그녀가 있는 그곳은 지금 괜찮을까?’ 날씨가 궂으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지금 청계광장 여성노동부 앞에서 100일이 넘도록 상경 농성 투쟁을 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사내 하청 성희롱 피해, 부당 해고 여성 노동자입니다. 그녀는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14년 동안 소나타와 그랜저를 만들었습니다. 쉬는 날에는 텃밭도 가꾸고 강아지와 산책도 했습니다. 소소한 일상이 오랫동안 머물면 좋으련만 그녀의 일상은 한순간에 흐트러지고 말았습니다. 14년 동안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현대차를 만들었지만 그녀를 고용한 하청업체는 일곱 번이 바뀌었습니다.
2008년 금양물류라는 하청업체에 속해 일했고 그때부터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바뀌고 말았다고 합니다. 금양물류의 소장과 조장은 입에 담기 어려운 성적인 농담을 작업장에서 대수롭지 않게 내뱉었고 일하는 여성노동자의 엉덩이를 툭툭 치는 것은 예삿일이었습니다. 번번이 일어나는 직장 내 성희롱을 보면서 한동안은‘그래 농담이다. 농담이니까 참자’라고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소장과 조장의 농담의 수위는 점점 더 심해졌고 급기야는“오늘 밤엔 너랑 자고 싶다”라며 한밤중에 전화까지 했다고 합니다.
14년 동안 성실하게 일한 것밖에 없는데 왜 이런 날벼락이 떨어졌는지 답답하고 속상했습니다. 속상한 마음에 동료 직원에게 하소연을 했고, 결국에는 그 하소연이 회사 전체로 소문이 나서 회사는 ‘선량한 풍속을 문란’하게 만들었다며 그녀를 정직시켰습니다.‘ 선량한 풍속을 문란’하게 만든 당사자는 그녀가 아니라 원치 않는 신체 접촉과 성적 농담을 한 소장과 조장인데 오히려 그녀가 징계를 받은 것입니다.
징계에 대한 재심 요청으로 정직에서 감봉 3개월로 징계 수위가 낮아졌지만 징계를 받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인사위원회에 가해자인 소장이 버젓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힘을 내어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그녀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는 이유로 해고했습니다.
해고 이후, 현대차 아산공장 앞에서 피켓을 들고‘가해자 처벌, 피해자 복직’을 요구하며 일인 시위를 진행했습니다. 한겨울 칼바람을 막아 줄 비닐을 빼앗기며, 현대자동차에서 부른 용역깡패에게 맞아 가면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100일이 되는 날입니다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는 가해자 조장과 소장에게 각각 삼백만 원, 육백만 원을 피해자에게 지급할 것을 권고하고, 사업주에게는 피해자가 입은 재산상 및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금으로 구백만 원을 피해자에게 지급할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녀가 다니던 금양물류는 폐업신고를 하였고, 현대자동차 본사는 본인들과는 무관한 일이라며 모르쇠 정책을 일관할 뿐이었습니다. 그녀는 할 수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결심하고, 낯선 서울로 올라와 여성가족부 앞에 농성장을 차렸습니다.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일인 시위도 하고, 노동부도 찾아가고, 민사 소송도 시작하였습니다. 직장 내 성희롱으로 인해 겪은 우울증과 합병증에 대한 산재 인정을 요청하며 근로복지공단에도 찾아갔습니다. 서울에 올라온 지 9월 9일, 오늘이 100일이 되는 날입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땅 곳곳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의 모습이 계속 오버랩되었습니다. 2010년 고용평등상담실 상담 중 직장 내 성희롱 상담은 40.8%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습니다. 성폭력상담소 2010년 상담 통계 중 가해자-피해자 관계에서 직장 상사, 동료, 거래처의 상담건수가 가장 높았습니다. 이처럼 통계만으로도 여실히 알 수 있듯이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은 우리 일상 속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억압된 현실에 대한 저항 직장 내 성희롱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성희롱 가해자에게 명징한 처벌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성희롱 가해자는 주로 피해자보다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1)이 대부분 이기때문에 여전히 대부분의 회사는 가해자에 대한 관대함을 유지합니다. 성희롱 문제 제기를 한 여성에게“사회 생활 하다보면 다 한 번씩 겪는 것 아니냐?”라고 말하거나, 가해자와 단 둘이 해결하라는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가해자 징계를 위한 인사위원회가 구성되어도 가해자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 인사위원회에 소속되어 가해자의 입장과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형식적으로 사건을 처리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또한 성희롱 문제 제기를 한 피해자에게 회사를 그만둘 것을 압박합니다. 일부러 과다한 업무를 준다거나, 업무 자체를 주지 않거나, 조직적으로 피해자를 따돌리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그만두게 만드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현대자동차 사내 하청 성희롱 피해 여성 노동자도 이와 같은 경험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억압된 현실에 저항하기 위해, 평등한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어려운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그녀의 싸움은 한 사람만의 과제가 아니라 평등한 직장 문화를 만들기 위한 만인의 과제라는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주1) 고용평등상담실 성희롱 상담에 있어 가해자의 지위를 살펴보면 사업주, 상사가 가해자인 경우가 86.2%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 이것은 노동권과 인권을 위한 싸움입니다
그녀의 싸움에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노동권과 인권을 위한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2010년 여름에 있었던 의미 있는 대법원 판결을 기억합니다. 대법원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사내 하청 노동자에 대한 해고 사건을 다루면서“직접 생산 공정 사내 하청은 원청 기업(현대자동차)으로부터 직접 노무 지휘를 받는 근로자 파견 관계”로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2년 이상 사용한 노동자는 직접 고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 하청 공장에서 14년 동안 일한 그녀는 현대자동차가 직접 고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녀는 현대자동차가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는 여전히 하청공장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본인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속해 있던 금양물류 사업주는 폐업 신고를 하고 다른 이름의 업체를 만들어 그녀와 함께 일하던 동료들 심지어 성희롱 가해자들까지 그대로 고용 승계를 하였습니다. 고용노동부는 그녀를 고용했던 하청업체가 폐업 신고를 했으니 방법이 없다고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자신이 처해 있는 조건을 바꾸려는 저항의 몸짓을 끊임없이 만들어 갑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 본사도 고용노동부도 그녀에게는 조건을 바꾸기 위해 요구하고, 협상할 수 있는 대상이 전혀 없다고 말합니다. 정말 대상이 전혀 없는 것일까요? 현대자동차는 실질적인 사용자로서 불법 파견이라는 위법한 고용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직장 내에서 관리자들에 의한 성희롱이 일상화되도록 방치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원청업체인 현대자동차 대표이사 정몽구와 금양물류 사업주에게 가해자에 대한 명확한 처벌과 그녀의 원직 복직을 요구하는 소송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싸움을 통해서 우리는 직장 내 성희롱은 하청업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원청업체도 그 책임을 져야 하는 전 조직적인 문제라는 인식을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봅니다.
그녀는 여성가족부 앞에서 3개월이 넘도록 텐트를 치고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성가족부는 성희롱 예방 교육을 관할하는 기관일 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신임 여성가족부 장관이 내정되었던 지난 9월 1일 그녀는 새로운 여성가족부 장관은 다를 것이라고 기대도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인 9월 2일, 용역깡패들이 몰려와 그녀의 터전인 작은 텐트 두 동을 무참히 짓밟았습니다. 그녀는 쓰러진 텐트를 세우면서 다시 힘을 내어 말합니다.
“직장 내 성희롱은 반드시 없어져야 합니다. 직장 내 성희롱 가해자는 마땅히 처벌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저의 원직 복직을 주장합니다.”
아픔으로 핀 작은 꽃이 온 세상에 만발하여 환히 채워질 날을 기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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