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10월호 [ 人 터 뷰 ] 여행작가 황희연을 만나다
▣ 人 터 뷰
여행을,
행복을 이야기하는 사람
여행작가 황희연을 만나다
● 편집팀
그녀가 건네준 명함에는“글 쓰고 사진 찍는 사람”이라고 적혀있다.
영화 잡지 편집장이라는 명함이 있을 때도, 갖고 다니던 개인 명함이다.
이번에 출판한 책에 사인을 해 달라고 했더니 은색펜을 찾는다.
은색 펜을 좋아해서 갖고 다니는데 두고 왔다며 아쉬워한다.
은색 펜, 보라색 명함, 파스텔 줄무늬의 안경 다리.
따뜻하고 섬세한 색으로 가득하다. 그녀가 들려주는 여행의 즐거움과 행복의 의미를 들으며
시간이 흘러갔다.
(편집팀 주)
Q 첫 책은『일생에 한 번은 파리지앵처럼』이라는 여행서였다.
그런데 새 책은 인터뷰집이다. 어떻게 만들게 됐는지?
A 인생을 바꾼 여자들을 만나 보고 싶었다. 흔하게 생각하면 직업을 바꾼 사람들이다. 그래서 처음엔 직업을 바꾼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봤다. 근데 그게 다 통하는 거더라. 다른 일을 찾아갔지만 또 원점을 돌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바꾸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고. 그래서 삶의 어떤 패턴? 기준을 바꾼 사람을 인터뷰하면 되겠구나 생각하고 만났다.
Q 영화 잡지 편집장을 그만두고 떠난 여행. 일상으로 돌아와서 힘든 점은 없었는지?
A 여행을 떠났을 때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뒤를 돌아보는 성격도 아니고. 다 비우고 오고 싶었다. 그래도 일상적인 생활로 돌아왔을 때는 낭패감이 많이 들었다. 돈도 없고. 뭘 할 수 있을까? 여행하는 동안에는 들지 않았던 생각이 마지막 여행을 끝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들었다.
Q 여행은 얼마나 다녀온 건가?
A 일 년 정도 있었는데. 여행을 계속 떠나 있었던 게 아니고 짧게 짧게 다녀왔다.
여행을 떠나면 적응을 할 때까지는 치열한 전투다. 그리고 다음 여행을 준비하는 그 기간에
행복이 있다. 여행을 갈 때, 예약도 하지 않고 대충 마음에 정하고 갔었다.
제일 좋은 건 오늘은‘뭐 하고 놀까?’를
고민하는 거잖아요
Q 여행서를 읽어 보면, 산책도 하고, 여유롭게 하는 여행을 상상했다.
그런데 치열하다고 하니까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웃음)
A 여행 갔을 때 처음의 전투라는 거는 오래 머물기 때문에 내 마음에 드는 좋은 숙소를 만나기 위해서 전투를 치르는 거 같은 거다.
이후부터는 조금 편안하게 마음에 드는 카페를 찾고, 싼 슈퍼마켓 찾으면서 다니고.
Q 그런 치열함은 일상에서도 느끼는 거 같다. 이사를 가거나, 직장을 옮기거나.
여행지에서는 좀 다른가?
A 많이 다른 거 같다. 일단 한국에서는 사회에서의 나의 위치, 가족 안에서의 나의 위치. 다양한 것들 사이에서 무게 중심을 잡아야 하는 강박이 있다. 근데 외국에서는 한국 사람과 만나더라도 별로 그런 걸 따져 묻지 않는 분위기기 되는 거 같고. 그래서 내가 조금 더 편하게, 생존에 대해서 치열하게 부딪힐 수 있는 거 같다.
먹고 마시는 것에만 더 집중할 수 있는 정신이 되는 거. 하나 하나씩 다 생활을 만들어 가는 느낌이 되게 즐거웠다. 사실, 제일 좋은 건 오늘은‘뭐 하고 놀까?’를 고민하는 거다. 매일 이런저런 고민 많은데. ‘오늘은 뭐 하고 놀지?’그것만 고민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즐거운 일상이다.
Q 여행을 하고 나서 달라지신 게 있다면?
A 여행을 통해서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을 하고, 사람을 보는 태도도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서른 살에 프랑스에서 집을 렌트해서 한 달 정도 살았다. 그때 나도 서울에서 파리지앵처럼 살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태도, 삶의 태도를 바꾼다면. 파리지앵이나 유러피안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감성은 자신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고 투자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전에는 어떻게든 사회에 편입해서 성장하고 싶다는 욕구 때문에, 아니면 가족들 잘 돌봐야한다는 이런 생각 때문에 나를 돌아보고 투자하는 데 되게 인색한 삶을 살았다. 또 이번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것도 같았다. 내가 봤을 때, 인터뷰한 사람들이 보통의 평균적인 여자들보다는 인생을 잘 살고 있다고 느꼈다. 왜냐면, 이 사람들은 자기에 대한 데이터를 많이 갖고 있었다. 그만큼 자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는 뜻이다.
나는어떨 때 행복한지, 어떤 옷을 입을 때 행복한지, 아주 사소한 것부터 묵직한 것까지 데이터를 갖고 있는데, 나에 대한 데이터를 많이 갖고 있어야지 남에 대한 데이터도 많이 쌓이고 또 알 수 있다. 예전엔 그냥 멋있게 살고 싶고, 그런 선배였다면 지금은 더 편안하게 이젠 후배들하고도 진심으로 친밀감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최선의 전략은 그냥 내 마음을
다독이는 수밖에 없어요
Q 여행을 떠나게 된 구체적인 계기는 없나? 계기가 있을 것만 같다.
A 30대가 되면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많이 생긴다. 20대 때는 되게 오만하다.(웃음) 오만해서 삶을 많이 그르친다. 나도 마찬가지로 그랬고. 20대 때 생각은, 30대가 되면‘회사를 관두고 프리랜서로 멋지게 살아 볼 테야’였다. 근데 30대가 되니까 프리랜서로 나간다고 해서 밥 먹고 살 자신도 없고. 거기다 사회적으로는 너무 일찍 편집장을 했기 때문에 여기 이상 어디로 갈 수 있을까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다. 언젠가는 후배들에게 자리를 비켜 줘야 할 텐데, 이제는 진짜 현실 감각을 가지고 생각해 봐야겠다. 그래서 오히려 삼십 대 중반에 저지르지 않으면 영원히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인생을 살지 않을까 해서 과감하게 결정을 했던 거 같다.
Q30대가 지나면서부터는, 20대 보다는 안정기일 거 같은데. 또 다른 고민이 생기나 보다.
A 계속 안정기는 찾아오지 않는 거 같다.(웃음) 최선의 전략은 그냥 내 마음을 다독이는 수 밖에.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편안해지지 않는다 근데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서 달라질 순 있으니까. 대체로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많이 불안해하고 걱정하며 산다. 근데 그게 없으면 행복하지 않는 거 같다.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 같은 거라고 본다. 원하는 목표를 딱 이뤘을 때 찾아지는 게 아니고 그걸 찾기 위해서 노력하고 좌절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희열 자체가 행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완성된 게 아니고 끊임없이 뭔가를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행복같다.
Q 여자들이 상상하고 기대하는 여행은 좀 다른 거 같다.
혼자 다니는 여행에 대한 로망이 있는 거 같다.
A 여행 다니면서 정말 신기했다. 남자들은 혼자 와도 떼를 만들어서 몰려다닌다. 근데 여자들은 혼자 와서 혼자 사색하고, 혼자 산책하고. 자기 몸을 혹사하면서 다닌다. 굉장히 씩씩하고 용감하고 강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돌아와서 이 얘기를 주위에 했다. 왜 그렇게 여자들은 자기 몸을 혹사하면서 다닐까?(웃음) 여자들은 무신경한 낙관주의가 있는 거 같다. 그래서 오히려 더 좋은 거 같다. 어쩌면 국내나 국외나 위험하긴 마찬가지라서 그런 게 아닐까? 국내는 어쨌든 말도 통하고 언제든지 편하게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국외에서는 비싼 비행기 끊어서 가고. 주위에서 ‘좋겠다’ 소리도 듣고 오면 쉽게 돌아가지도 못 한다.(웃음)
그런 공간에 일부러 놔두면서 이열치열 진짜 살아있다는 느낌, 오롯이 나로써 있어 보고 싶은 기분을 느끼는 거 같다.
제일 좋은 여행지는
다음 여행지예요.
Q 그럼,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가 있다면?
A 제일 난감한 질문이다. 어디든 좋고. 내가 떠날 다음 여행지가 제일 좋은 여행지다. 어떤 일상을 꿈꾸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해 보면 다음에 어디 가고 싶은지가 나온다. 지금 꿈꾸는 하루를 말해달라. 그럼 추천해 주겠다 (웃음)
Q 마지막으로 민우회 회원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이야기가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각자의 삶에 안주하고 특히나 생활인이 되다 보면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스토리를 잃어버리고 산다. 인터뷰한 사람 중에 주부가 있었는데, 주부가 되기 전엔 부스스한 얼굴에 애기 데리고 다니는 여자들이 아무 이야기도 없는 거 같았다고 한다. 근데 주부가 되고 보니까 다들 이야기는 있는데,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끌려가면서 만들어지는 이야기였다는 걸 알게 됐다고. 그래서 괴로웠다고.
내가 만들어 가는 이야기를 갖고 있으면 행복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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