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10월호 [생생한 시각]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
▣ 생 생 한 시 각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
- 여성 전용
주현정(주가이) ● 한국여성민우회 사무처장
나를 불편하게 하는 아니 자꾸 피하게 하는 여성이 있다.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그녀. 주차장에서 만나게 되는 여행 주차장 그녀. 그녀를 자꾸 피하게 되는 이유는 탄생 배경 때문이다.
그녀는 여성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주차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 탄생되었다. 안전을 위해 출입구에서 가까운 쪽 밝은 곳에 마련한 배려는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여성들이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 때문에 유모차 이용이 편리하고 아이들이 안전하게 타고 내릴 수 있도록 충분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배려는 정말 사양하고 싶다. 왜 아이들은 여성들만 데리고 다닌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주차장에서 그녀를 만나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선택받아 넓은 공간에서 편안하고 안전하게 주차를 할수 있게 해 주는 것이 단지 고맙지만은 않다. 그래서 나는 늘 그녀를 피하곤 한다.
불편한 탄생 배경
여행주차장 탄생의 진짜 배경은 우리나라 주차장의 현실이다. 대부분 주차장의 주차 공간이 넉넉하지 못하기 때문에 초보 운전자뿐 아니라 아이나 짐을 동반한 운전자들이 마음 놓고 주차하기에 많이 불편하다. 모 아파트의 광고에서 10cm 더 넓어진 주차 공간을 크게 자랑하고 그것이 굉장한 브랜드 가치가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주차장의 안전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여성 운전자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심심치 않게 뉴스를 장식하고 있고 이것에 대한 해결책으로 여행 주차장이 마련되었지만 모든 여성
운전자를 수용할 만큼의 공간은 못된다. 그리고 여행 주차장 뿐 아니라 모든 주차장이 안전한 공간이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사실 필요한 것은 여행 주차장이 아니라 주차장에 대한 규격기준을 강화해서 모든 주차장이 넉넉하고 안전한 주차공간을 확보하도록 하는 것이다.
여성 전용칸이 해결책일까?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얼마 전에 지하철 여성전용칸이 부활한다는 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언론의 전화를 받았다. 순간 처음 생겨나던 때 있었던 논쟁을 또 되풀이 해야 하나 싶은 생각에 답답했다. 아니 사실 짜증 났다. 지하철 성추행으로부터 여성들을 보호한다는‘여성 전용칸’은 밤11시 반 이후 서울 지하철 2호선 열차의 10칸 중 중앙 2칸을 여성 전용으로 지정하는 방식으로 시범 운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지하철의 여성 전용칸은 1992년에 출근 시간대인 오전 6시반부터 9시까지 2시간 반 동안 운영되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아 흐지부지된 적이 있다. 2007년에도 6, 7호선에 여성칸을 부활하는 방안이 추진되었으나 역차별 논란으로 반대 여론에 밀려 무산된 적이 있다.
당시와 바뀐 게 있다면 안정성 때문에 양쪽 큰 칸에서 중앙으로 위치를 조정하고 역차별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전용칸’을 ‘안전칸’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그리고 보조 장치로 ‘지하철 보안관 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언론 보도 이후 인터넷 상에서도 많은 논쟁이 있었는데 반대 의견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반대 이유로는
“여성 전용칸에 모든 여성이 탈 수 없다”
“그래도 지하철 성추행은 계속 발생한다”는 것들이었다.
네티즌도 다 아는 사실을 왜 행정당국에서는 모르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든다. 두 칸 남짓의 열차 칸에 지하철을 이용하는 모든 여성이 다 탈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여성 전용칸에 타는 일부 여성을 제외하고 나머지 더 많은 여성들은 여전히 남성과 같이 부대끼며 차량에 타야 한다. 어떤 누리꾼의 말대로 전동차를 반으로 나눠서 여성 전용칸과 남성 전용칸으로 하지 않고서야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그리고 대부분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경우, 환승이나 역을 빠져나가기 쉬운 칸에 탑승하게 되는데, 안전을 위해 이러한 편의는 포기하라는 말인가?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다니던 시절이 떠올랐다. 노선이 지금 처럼 많지 않았던 시절, 나는 정말 유동 인구가 많기로 유명했던 역에서 타고 내리고 했다. 출퇴근 시간에는 한 번도 제대로 내 발걸음과 템포로 자연스럽게 내려 본 적이 없었다.
늘 여러 사람들에게 떠밀려 내리고 탔으며 심지어는 나조차도 혹시나 못 내릴까 봐 잔뜩 긴장하고 떠미는 인파에 합류하곤 했다. 그 시절의 지하철에 대한 기억은 정말 유쾌하지 않다.
사실 지금도 지하철을 꺼리게 하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조그마한 체구의 나는 늘 사람들 틈새에 끼어 숨쉬기도 불편했을 뿐 아니라 여러 사람의 손짓과 몸짓 하나하나에 정말 머리가 쭈뼛쭈뼛 섰다.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빈번히 교묘하게 일어나는 성추행의 대상이 되는 건 정말 당연한(?) 일이었다.
정말 떠올리기도 싫은 지우고 싶은 기억이다.
처음 여성 전용칸이 도입되던 시기에도 지하철을 주로 이용했는데, 사실 아침 시간에는 지하철을 놓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아무 칸에나 정신없이 올라타기 바빴다.
그래서 사실 전용칸을 이용한 기억이 거의 없다. 그리고 어느 날엔가 소리 소문 없이 없어졌던 걸로 기억한다.
누구나 알 듯이 여성 안전칸이 생겨난 이유는 해마다 늘어가는 지하철 성범죄 때문이다. 서울지방경찰청 측에 따르면 지난해 성추행범은 1,192명으로 예년에 비해 77%가량 증가했다고
한다. 하지만 소량의 여성 안전칸 운영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것은 없다. 결국 실효성도 없는 보여 주기식 정책들에 대해 시민들의 논란이 계속되면서 여성 안전칸의 도입은 잠정적으로 미뤄졌다.
여성 전용의 진정한 의미
서울시가 ‘여행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낸 여러 ‘여성 전용 ’, ‘ 여성 우선 ’들이 있다. 여행 프로젝트를 대표하는브랜드인‘여행화장실’,‘ 여행주차장’,‘ 여행길’,‘ 여행공원’,‘ 여행아파트’가그것이다. 각각은 여성들의 안전과 여성 편의 시설 확충을 주요 내용으
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을 마음 편히 여성들을 위한 배려로 고맙게만 받아들일 수 없는 불편한 이유는 전혀 성 인지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서울시가 배려하는 여성은 굉장히 편협하기만
하다. 서울시가 배려하는 여성은‘자녀를 양육하는 주부’인 여성에 많은 부분 한정되어 있다.
서울시가 여성 편의시설로 예시하고 있는 것들은 기저귀 교환대, 영유아 거치대, 영유아실, 여성 전용 주차장, 수유실, 여성 보호 CCTV 등이다. CCTV를 제외하고는 모두 육아를 하고 있는 여성들을 위한 시설들이다.
그리고 서울시의 배려는 여성들을 성역할 고정관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나도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서울거주 여성 중 하나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다 보면 기저귀를 갈아 준다거나 그 밖의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조차도 마땅한 공간이 없어서 결국 다시 엄마인 나에게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는 여성이 돌보아야한다는 성역할 고정관념에 얽매인 정책 때문에 결국 나는 다시 아이의 주 양육자인 주부가 된다.
그런데 무엇보다 불편한 진실은 엄마일 때의 나 말고는 내가 어떤 배려를 받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점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서울시가 나를 위해 만들었다는 ‘여성 전용 ’은 날 참 불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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