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10월호 [마포나루에서] 서울말은 ↑ 너무 ↗ 어려워→
▣ 마 포 나 루 에 서
서울말이 싫어요
최윤라(민트) ●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
지하철을 타고 있는데 전화가 온다.
“여보세요? 어. 니 뭐 하는데?”
이 한마디를 하고 주변 눈치를 본다. 누가 내 말을 듣고 웃는 건 아닌지, 누군가 나를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사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혼자 상황을 살피고 있다. 조금 주춤하다가 다시 전화에 집중해 대화를 이어 나간다. 지금까지 살면서 서울말과 사투리가 다르다고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서울말을 쓰는 사람도 많이 없고, TV나 라디오에서 듣는 말투와 내가 말하는 말투가 같다고 생각했다.
억양이나 다른 특이한 점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그프로그램에서 사투리를 소재로 개그를 하면, 그것을 보고 웃고 따라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서울에서 생활하는 친구나 사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서울에서는 서울말을 쓰고, 고향에서는 사투리를 쓴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서울 생활을 시작하게 됐고, 서울말과 사투리의 차이가 들렸다. 그 감각이 피부로 느껴지니 혼자 고립되고 자신감이 점점 없어졌다.
지금은 극복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서울말 혐오증’이 있었다. 20년 넘게, 서울에 방문할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자주 서울을 오게 되었다. 처음‘사투리와 서울말이 다르구나’라고 느꼈을 때, 그때의 느낌을 이야기하자면 서울 사람들이 같은 나라 안에 살고 있는 외계 생물체 같았다. 그만큼 서울말과 사투리의 차이는 엄청났기 때문이다.
서울 사람들 속에서 고향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목소리나 억양이 특이해서 사람들이 힐끗 쳐다본다. 그리고 모임에서는 말투를 놀리듯 따라하는 사람도 많았다.
(예를 들면 누구를 부를 때의 말투를 따라하거나“지방 사람들은 문자 메시지 보낼 때도 사투리 써?”라고 물어 봤다. 누구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너무 싫었다. ㅠㅠ)
그만큼 익숙하지 않은 서울말을 쓰는 서울 사람들과 나는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울에서 생활하고 살아간다면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거란 생각에 절대로 서울
에서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이 글에서도 사투리가 묻어나올 수도 있어요. PASS~)
적응을 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3일
짧지만 관심 있는 활동을 하기 위해 서울, 경기권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한 적이 있다.
2주 정도 함께 활동했는데, 상대적으로 지방 사람보다는 서울 사람이 많았다. 그때도 사투리를
마구마구 쓰면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사람들도 사투리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일을 하는 과정에서 만 삼일째 되던 날에 나도 모르는 언어가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것은 바로 내가 신기하고 어렵게 느꼈던 서.울.말!
정말 의도치 않은 말투가 나와서 서울말을 하고 나서도 나만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당연한 낯익은 말이기 때문에. ‘서울말 혐오증’을 느끼는 나는‘내가 어떻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묻어 가다 보니 어느새 서울말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부터 하루 종일 서울말을 하다가, 익숙한 사투리를 말하려고 하면
오히려 잘 되지 않는 상황이 더 신기하였다.
그러면서 서울 사람들이나 지방에 사는 나나 비슷한 생활을 하고, 관심사, 생각이 비슷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투만 다를 뿐이지 서울 사람과 나와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그 현상으로 자연스럽게‘서울말 혐오증’이 사라지고 생활하는 데 말투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을 또 다시 느끼게 되었다.
언제까지나 사투리는 나와 함께
어느 지역에서 살든 어떤 말투를 쓰든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일을 하고 서울 생활을 하면서 불편한 점은 많이 없다. 자신감을 가지고 생활한다면 사투리를 쓰든 서울말을 쓰
든 눈치 볼 일이 아니다. 신경을 쓰고, 콤플렉스를 생각하는 건 나뿐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아이러니하게도 전화를 받거나, 대화를 할 때 일부러 서울말을 쓰려고 하면 잘 안 되는 것 같다. 적응했다고 생각하고 막상 입을 떼면 나오는 것은 사투리다.
그러면서 또 다시 느낀다.
서울말을 잘하는 것만이 서울 생활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 보다는 적응을 잘하고 생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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