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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12월호 [민우 ing] 너는 본디 공주였다
▣ 민우ing
너는 본디 공주였다
- 신가족주의 사회, 전업주부를 말한다
선백미록(신기루) ● 한국여성민우회 반차별회원팀
바리데기 공주는 삼나라의 어비 대왕과 길대 부인의 일곱째 딸인데, 어비 대왕은 길대 부인
이 계속 딸만 낳자 일곱째 자식인 바리데기 공주를 버렸다. 수양부모에게 자란 공주는 키와
얼굴이 엄청 큰 흡사 괴물, 무장승에게 시집가 나무하고 물 긷고 밥하고 빨래하고 일곱 아들
을 낳아 준다. 그 대가로 얻은 생명수로 어비대왕은 죽다가 살아난다. 그가 남긴 말은 “나는
힘과 재물로 세상을 다스리는데, 너는 사랑과 윤리, 도덕 바로 인간됨 그 하나로 이 우주를 감
동시키는구나”였다. |
그녀가 저승 수문장에게 낳아 준 일곱 아들과 7년의 결혼 생활은 여성의 무급 노동에 대한 압축적 상징이다.
원한과 생명의 오구지왕이 된 공주는 인간이 태어나고 자라는 삶의 근원을 지배한 존재였다. 가족 토론회 사업은 열 명의 전업주부 여성의 이야기가 근간이다.‘화장실 쓰레기 치우는 제일 지저분한 것부터 제일 어려운 것까지 해야 되는’ 전업 주부에 대한 재해석과 지긋지긋한 보수와의 맞장이다.
변화를 원한다
우리 모두는 가족 안에서 자랐으며 그 제도에 대해 강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최초의 감정과 사랑, 미움, 즐거움과 고통과 같은 양가적 감정을 경험하게 되는 곳이 가족 공간이다. 현대 사회에서 가족은 부, 생명, 정서 등 재생산의 기초 단위이기도 하다. 최근 가족은 보건 복지, 여성 가족, 노동 등 정부 부처는 물론 보수가 주목하는 제일의 공간이 되었다. 2000년 이후 ‘아이낳기운동본부’, 기초구별로 생긴‘건강가족지원센터’등이 펼치는 활동 속에서 가족은 정상성이 태어나고 자라는 곳이었다. 그 속에서 여성은 아이를 잘 낳고 많이 낳으며 가족의 위기를 관리하는 전문가의 역할을 부여받았다. 경쟁력 있는 개인의 탄생을 최고의 목적으로 하는 신자유주의는 아이의 교육을 위해 기꺼이 운전사도 되고 영양사도 되고 선생님도 되는 교육매니저의 역할까지 강요한다. 신가족주의1)란, 여성의 역할을 아이 낳기와 양육에 한정해 여성에게 가족을 위해 감정치료사, 교육 매니저, 가정의 CEO가 될 것을 강요하는 담론이다. 저출산 담론, 건강 가족 담론과 호응해 여성의 역할을 가족을 위해 구성하고 사용할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담론의 횡포 속에서 현재 남성 배우자와 자녀가 있는 전업 주부 여성들은 무력하게 담론에 지배당하고 있지도 않았고 세 자녀를 낳았다고 마냥 자부심에 차 있지도 않았다. 인간과 삶의 복잡성 속에서 전업 주부 주체는 자신의 현재를 고착되어 있다고 보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변화’를 욕망했다.
우리가 만난 전업 주부는 중산층이라고 할 수도 없고, 노동자층, 저소득층이라고 할 수도 없는 중간 계층이었다. 소위 강남 엄마 혹은 중산층 여성들이 대표하는 전업 주부의 단일한 이미지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비가시화된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시장노동에 종사한 경험이 있었으나, 결혼∙임신∙출산∙육아라는 생애주기에 따라 각자의 고비에서 전업 주부로 입장을 전환했다. 이들이 인식하는 전업주부의 정체성은 가사 노동보다는‘전업 어머니’에 가까웠고 아이 돌봄의 종료 시기를 정하고 있었다. 대학 입학부터 초등학교 입학까지 저마다 아이의 돌봄 종료 시기는 다양했지만 이 시기가 끝나면 자신의 일과 삶의 전망에 몰입하기를 원했다. 전업 주부라는 것을 직업으로 인식하지도 않고 그것이 여성에게 붙어 있는 소위 자연스러운 꼬리표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렇듯‘전업 주부’라는 정체성은 전 인생을 지배하는‘여성의 일’이 아니며 단일하지 않고 임시적, 유동적이며, 하나의 직업이라고 범주화하려는 사회의 흐름과는 달리‘직업’으로서 인식하지도 않는 것이다.
인터뷰 내용 중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솔직히 그… 저는 아주 최근까지도 스스로의 정체성을 누가 보는 것과 상관없이 저 스스로 생각은 구직자다. 실업자다 생각해요. 나간 적은 없지만 좌절됐을 뿐이지 언제든지 나갈 의향이 있고, 정말 나가고 싶은데 그럴 수 없을 뿐이지.”
또한 전업 주부에 관한 고질적인 이야기 중에 하나는 ‘곱상한 외모’에 일하는 엄마들과 갈등하는 존재들이란 것이다. 일하는 여성(=취업 주부)와 전업 주부의 갈등은 ‘여자의 적은 여자’ 라는 통념을 강화하는 한편 취업 주부는 전업 주부의 경제적 무능을, 전업 주부는 취업 주부의 이기심과 헌신의 결여를 비난하게 만들어 여성들간의 허위적 갈등을 조장했다. 그러나 원인은 신자유주의가 가속화시킨 가족에 대한 성별화 된 구조화와 관련이 깊다.
예를 들어, “나라에서 아이들을 봐준다고 하면 엄마들은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어디든 가고. 욕구 발산도 되면서 직업적으로 당연히 그렇겠지만 직장여성이 아니더라도 엄마들이 억압되지 않고. 좀 더 건강해지는 거니까”라는 말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일하는 여성과 마찬가지로 전업 주부 여성에게 국가가 돌봄 서비스를 제공했을 때 여성들의 주체성은 더욱 확장될 것이다. 전업 주부 또한 돌봄 서비스의 확대, 보편적 권리로서의 혜택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또한 취업 주부와 전업 주부가 이해를 같이하며, 두 대상의 분리가 의미를 잃는 지점인 것이다. 아무도 묻지 않았던 엄마들의 욕망 물론 이들은“애들은 엄마가 끼고 키워야 한다고 그러더라고. 애가 커서 나중에 사춘기 돼서 엄마가 나한테 해 준 게 뭐가 있냐고 얘기하면 정말 할 말 없는 거라고 그러시더라고”와 같이 ‘내 아이는 내가 키운다’는 관념도 수용하고 있으며, 아이들이 자라면 과외 정보도 수집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아이에 대한 미안함에서 자유롭지 않다. 남편의 경제권에 의존하고 있고 정서적으로도 인간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대상은 남편에 집중돼 있다. 강남 엄마들에 대한 열패감도 있고 정부의 저출산 정책의 각종 혜택을 받기 위해서 무료 예방 접종 항목을 늘리라거나, 자신들의 시간제 유급 노동을 기꺼이 감춘다. 그럼에도 이들이 어떤 행위성을 갖는가에 개입하고 누구와 소통하는가를 묻고 갈등하는 욕망 자체를 확인하는 일은 보다 광범위한 대중 여성 운동을 위해서 뜻 깊었다. 한국의 여성 비경제 활동 인구는 1,077만 명(2010)이며, 전체 비경제 활동 인구의 66.2%를 차지한다. 이는 통계 조사가 시작된 이래 최고치이며 남성의 두 배다. 여성 비경제활동의 이유는 육아나 가사가 67.2%로 이들의 상당수는 전업 주부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심층 인터뷰 결과가 나타내듯 이들은 거기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 전업 주부라는 개념 또한 절대 변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개념이 아니다. 20세기 초의 인구 변화와 근대화, 산업화를 거치면서 등장한 특정 사회적 산물이며, 전업 주부의 역할과 규모, 사회적 요구는 계속 바뀌었다.2) 따라서 얼마든지 변화 가능하며 가족과 가족 중심 문화도 바뀔 수 있다. 신가족주의에 의해 신비화된 전업 주부의 이미지는 사실 모성과 사랑, 고급스러움으로 위장되고 미화된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보수적 가족 담론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능동적인 개인들의 다양한 도발이다.‘ 그런 전업 주부만 있는 게 아니야’라는 메시지는 그래서 중요하다. 만약 보다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기를 원한다면, 특정한 성별에 돌봄과 재생산의 역할을 강요해서도 안 되며 그것을 미화하고 조장해서도 안 될 것이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율성과 결정권을 부여하는 지향성 아래 전업 주부 주체는 끊임없는 논쟁 지점을 던질 것 같다. 돌봄, 가족, 교육과 밀착되어 있는 이들과의 대화 없이 다음 세대와 세상을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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