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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12월호 [민우 ing] 1,959개의 물음표를 풀다
▣ 민우ing
1,959개의 물음표를 풀다
- 고용 평등 상담을 중심으로 -
최진협(나우) ●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
작은 소리로 울리는 민우회 고용평등상담실의 상담 전화를 받으면 무엇을 먼저 이야기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목소리를 만나기도 하고, 때론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쉼 없이 자신의 현실을 쏟아 내는 다급한 목소리를 만나기도 한다.
메일과 게시판에 올라오는 상담의 행간에는 억울함과 막막함이 보이지 않는 말줄임표로 읽힌다. 그 이야기에 우리가 말해 줄 수 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란 무엇일까?
민우회가 여성 노동 운동을 시작한 때부터 함께 시작된 고용 평등 상담은 여성 노동 운동의 의제를‘발견’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주요한 좌표로서의 현장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의 의제와 운동이 살아 움직이는 현장과 동떨어져있는 고집 센 외톨이는 아닐까하는 위기 의식이 일었다. 그래서 우리가 읽어 내야 할 여성 노동자의 현실에 날을 세워 무엇을 의제로 할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다시 질문하기로 했다. 질문의 지문은 5년간 상담을 통해 나눴던 1959개의 여성 노동자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받아 안은 우리의 내용과 운동이었다.
대한민국 여성 노동의 현주소 이 땅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여성 노동의 현주소’는 여전히 낮은 여성의 고용율 속에 있다. 그러나 저소득층 여성들은 임금 수준이 매우 낮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높은 비율로 노동 시장에 참여하고 있어‘계층화된 남성 생계 부양자형’의 젠더 레짐은 노동 시장의 이중 구조화를 더욱 극명하게 만들고 있었다. 또한 노동 시장의 이중 구조에서 여성은비정규직이면서 영세 사업장, 저임금 노동자로서 하층부에 집중되었고 일부는 비공식 고용의 문제로 정의되어 사회 안전망 사각지대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60% 수준에서 20년간 정체되었고, 민우회를 찾은 수많은 여성 노동자 역시 이러한‘여성 노동의 현주소’와 그 궤를 함께하고 있었다.
입직부터 퇴직까지, 생애 주기별 여성 노동의 현실
20대는 용모가 곧 취업이 되는 과정에 좌절하고 취업이 된 후에도 수습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다.
성희롱 때문에 이직을 결심하는 이야기로 그 생애를 설명하고 있었다.
여성 노동자의 퇴직이 생애 주기 중 가장 대규모를 이루고 있지만 30대는 여전히 임신, 출산, 양육으로 직장과 생활 사이의 불안한 곡예가 일상으로 구성되었고, 늘어나는 근속 연수만큼 배제와 지체는 쌓여 가 직장 생활은‘버텨 내야’ 하는 것이 되었다. 경력이 단절된 후 찾은 40, 50대 중고령 여성 노동자의 새로운 일자리는 저임금, 장시간을 위시한 손바닥만한 범주에 머물러 있었다. 40, 50대까지 단절 없이 ‘버텨 낸’여성 노동자의 승진은 지체의 끝을 보여 주더니 퇴직에서는‘나이많은 여성’으로 그간 해본 적 없는, 안해도 될‘1순위’로 고용이 단절되었다. 다양한 여성 노동의 모습을 그려 낼 수 없는 한계가 있지만, 여성의 생애주기별 고정관념과 차별을 그려 내는 것은 그 대표성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수많은 사회적 담금질과 망치질로 일그러진 우리 사회의 이면을 직면하는 일이다.
상담 활동에 대한 자원의 한계 민우회 고용 평등 상담은 여성 노동자의 노동 조건과 환경에서 일어나는‘차별’에 주목한다. 부당 해고에 대한 상담이 오더라도 성차별적인 요소는 없는지 살피고 성 인지적 시선으로 읽어 내는 노력을 다하려고 한다.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현실은 힘없는 노동자가 겪는 부당함에 성차별이 얹혀지고, 고용 형태에 의한 불안정함이 교차되었다. 하루하루 접하는 여성 노동자의 현실이 보이지 않았던 유리벽과 천장에 빛마저 투과되지 않도록 매일 색을 덧칠하는 것 같아 더 아득해 진다. 상담하면서 그 아득함이 읽힌 것일까.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질문이 도돌이표가 되어 맴돈다.
“그런 말로 회사가 설득이 될까요?”
“저와 같은 상황에서 이겨 낸 사람들은 없나요?”
라고 묻는 여성 노동자에게 전할 공감의 언어와 극복의 경험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내가 드러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묻고, “싸워 봐야 나만 힘들다고 하는데”라며 저항할 힘을 잃은 여성 노동자들 앞에서 우리의 운동은 다시 그려져야 했다.
우리를 향해 되묻기
그렇다면 이제 우리를 향해 질문을 구성 할 차례다. 그동안 차별을 입증하는 데 주력함으로서 우리가 놓쳤던 중요한 지점은 무엇인지, 여성 노동자의 현실과 개입된 상담 활동과의 간극 속에 고용의 질이 인간다운 삶의 질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되물어봐야 할 것이다. 차별이 인권 침해와 가해자/피해자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며, 남성 대 여성 혹은 정규직 대 비정규직이라는 대립적인 것으로 연상되어 현실의 문제를 개인화함으로서 정작 중요한 문제는 비가시화, 탈정치화되는 것은 아닌가? 차별 프레임이 여성 노동 주체를 형성하기 위한 실천의 가능성을 제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 다른 질문, 또 다른 출발선에서 있는 셈이다.
다시 출발선에 서다
토론을 시작하면서 여성 노동 운동 방향 모색을 위한 지도의 조각들이 모아졌다. ‘차별을 극복’한 이야기를 조직하고, 차별 규제와 금지의 언어를 넘어 당사자간의 이해가 공동의 정의에 다가가도록 공감의 언어를 만들어 가는 것, 공감과 연대 의무, 책임 담론을 다시 치열하게 던지는 것, 위계 관계를 완전히 배제한 조직을 상정할 수 없다면 여성노동자들이 그러한 관계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갖추게 하는 역량 강화가 여성 노동 운동의 본질임을 확인한다. 관계 핸들링에 대한 훈련과 동시에 관계 안에서 능동적으로 힘을 가질 수 있는 언어를 발굴하고 제공하는 것에서부터, 고립된 여성 노동자들이 어디서 만나고 연결될 수 있는지 등 연계망을 그려보는 것도 중요하다. 고용의 문제를 노동권에 국한하기보다 시민권으로 확장하여 사회적 권리를 제기할 수 있는 의제를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소비자의 권리만 특권화되고, 노동자의 권리는‘기업의 경쟁력’이라는 명분에 침식되는 상황에서,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과 합의를 만들어 내는 과정도 놓칠 수 없다.
여전히 구체적으로 채워야 할 것이 가득하지만, 지도가 있으니 지도를 놓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으로 찾아간다면 지금까지의 아득함은 조금씩 걷히지 않을까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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