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12월호 [생 생 한 시 각 ] 타인의 고통 앞에 서다
▣ 생 생 한 시 각
타인의 고통 앞에 서다
-‘낙태’, 생명 대 선택을 넘어
꼬깜(김희영) ●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
11월 10일
11.10(목), 헌법재판소에서는 작년 6주된 태아를 임신중절한 혐의로 기소된 조산사의 헌법소원에 대한 공개변론이 있었다. 이번 공개변론은 낙태죄 269조, 270조의2) 위헌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자리였다. 오후 2시부터 시작한 공개변론은 약 4시간여 동안 진행되었다. 청구인 쪽은 "여성의 관점에서 보면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결코 분리되는 문제가 아닌 자신의 일부이며, 외국에서도 임신 초기 단계의 낙태는 허용된다. 무분별하게 낙태를 허용하자는 게 아니고, 현행 법 조항은 과잉규제의 측면이 있는 만큼 합리적인 균형점을 찾아 봐야한다."고 주장의 요지를 폈고 상대편인 법무부 측은“현재 형법상 보호법익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아니라 태아의 생명권이 우선이다”며 태아의 생명권을 반하는 어떠한 상황도 용납되지 않는다며 반박했다.
근 4시간 동안 법관들의 질문은 한결 같았다.
“스티브 잡스나오바마 대통령과 같은 미혼모 슬하에서도 똑똑한 사람들이 나오지 않나. 더 나오기 위해서는 낙태는 불법화 되어야 한다”,
“태아의 기준에서 보면 여성의 강자이다. 태아의 관점을 대변할 수 있는 법이 필요하지 않나.”,
“누구나 태아였다. 태아가 간과 돼서는 안 된다.”는 등등.
사실 정말 충격 받은 것은 그들이 여성의 출산이나 낙태, 임신 등 일련의 과정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제대로 고민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느껴졌을 때였다. 세상 살면서 처음 하는 고민이라는 듯 아무리 여성의 재생산권이나 낙태죄의 존치 여부가 낙태율과 크게 상관이 없다는 외국의 사례, 낙태죄 존치가 여성의 시민권을 제약하는 문제 등에 대해 청구인 측인 양현아 교수가 설명해도 순간 끄덕이는 듯 하다가 다시 태아의 관점은 누가 대변하는가로 귀결되는 답변에 답답함을 넘어 절망감이 밀려왔다. 양현아 교수는“법관님들이나 다른 입법 관계자들을 만났을 때 참 놀라운 것이 태아의 관점에 대해서는 그렇게 절절하게 감정이 입을 하시면서 정작 그 결정을 해야 하는 여성의 관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감정이입하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공감하고 또 공감했다. 이것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구나, 관점과 경험의 문제구나 싶었다. 왠지 더 무기력감이 밀려왔다.
민우회에서는 올 해 낙태 경험이 있는 23명의 여성을 인터뷰 했다. 인터뷰 결과를 가지고 몇 차례 분석회의를 진행했다.‘ 한국 사회에서 왜 여성들이 낙태할까?’이유는 구체적이고 다양했다. 선택과 생명이란 구도는 흑백논리의 문제도 있겠지만, 더 큰 문제는‘선택’이란 단어 속에 포함된 두터운 현실의 모습을 너무나도 단촐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출산 여부를 무슨 짜장, 짬뽕 선택하는 문제마냥 만드는 데 있다. 낙태 결정 과정에는 하나의 단일한 이유로 답하기 어려운 거미줄 같이 복잡한 이유가 있었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여성의 경험과 사회적 관계와 거미줄 같은 그 복잡한 고리를 어떻게 드러내고 언어화할 수 있을까. 특별하지만 비슷한, 같지만 다른 여성의 낙태 경험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그 결과를 발표하는 토론회가 10/27(목), 성미산마을극장에서 있었다.
‘낙태’그리고 사회적 고통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인 낙태의 경험을 드러내기 위해 연구자인 백영경 선생님은 발제를 통해 사회적 고통이란 관점을 제시했다. 사회적 고통(social suffering)이란 의료인 류학에서 사용하는 개념으로 정치적, 경제적, 제도적 권력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으며 이들 권력이 사회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을 통해서 야기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구조의 피해자일까 여성 개인의 선택일까라는 두 가지 선택지 중에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개인의 선택으로 여겨진 낙태 남편이 정관 수술을 했다고 거짓말해서, 동생이 장애아를 낳았는데 옆에서 보면서 두려워져서, 결혼하려 했으나 시누이의 반대로, 지인의 죽음으로 충격이 심해서…
한편, 분명히 예상 가능하기도 했다. 결혼 하지 않아서, 복용하는 약 때문에,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본인이 너무 아파서, 출산이 두려워서…
문제 속에 존재하는 사회적, 정치적 차원의 조건에 주목함과 동시에 개인들의 경험에 주목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낙태 이후 죄책감이나 당시 심리적 고통도, 이유나 상황은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한편으론 공통점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기도 하다. 한 사회의 공론의 기조나 지배 가치가 변화하면서 개인들이 겪는 문제를 표현할 수단을 찾기 어려워질 때 더 심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낙태와 관련해서도 부합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에서 법관들의 태도와 관점 부재는 한국사회의 여성의 재생산권에 대한 인식 수준을 반증하는 열쇠다. 생명과 선택이란 구도 속에 함몰되면 낙태가 왜 발생되는지 간과하게 되고, 낙태 경험이 있는 여성의 고통을 외면하기 쉽다. 이 구도는 마치 ‘정답’이 내재한다는 착각을 확신하게 만든다. 불가피한 현실은 부차적으로 밀어놓게 되고, 여성의 결정을 단죄해버리고 만다. 발제문에도 언급되었지만 사회적 고통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낙태를 보는 것은 어떤 이유는 사회적인 원인이고, 어떤 이유는 개인적인 문제일까를 고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와 개인은 연결된 고리 속에서 분석되어야 한다. 어떠한 사회적 현상이든 그것은 전제하고 가야 하는 부분이다. 낙태는 고통의 관점에서 다시 써져야 한다. 죄책감 없음을 죄스러워하거나, 오히려 자신의 선택으로 함축하여 이해하면서 느끼는 후회와 죄책감에 짓눌려 살거나, 스스로를 가해자로 인식하거나, 언어 부재로 고통 받는 여성들의 현실이 드러나지 않는 한 이것은 추상과 도덕으로 치장한 허황 된 논의 이상이 되기 힘들다. 민우회는 앞으로도 다양한 사회적 관계나 조건 속에 포함된 여성 현실로서 낙태를 접근하기 위한 사회적 담론 확장과 법개정운동을 끈질기게 진행 할 예정이다.
‘끈질긴 게 짱이다. 아무도 못 이긴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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