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12월호 [생 협 이 야 기] 여성민우회생협연합회 2011 생산지 기행
▣ 생 협 이 야 기
여성민우회생협연합회 2011 생산지 기행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특별한 여행
이슬비 ● 여성민우회생협 연합회 기획부
나는 아무 곳에나‘여행’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는 걸 좋아한다. 내게는 출퇴근길도 여행이고, 가끔 혼자 산책하는 길도 여행이다. 그렇게 말을 붙이면 조금 더 신난다. 가끔 출근하기가 너무너무 싫을 때, 그냥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아주, 아주 조금,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맛밤과 천일염을 만나러 갑니다
조합원들과 가는‘생산지기행’일정이 잡혔을 때도‘여행’이라는 단어가 먼저 생각났다. 생산지기행은 매년 여성민우회생협 연합회 생활재위원에서 주최하는 행사다. 평소에 잘 가지 못했던 생산지에 찾아가 생산자를 만나고, 생산 과정을 보며 서로의 신뢰를 더욱 돈독하게 하며 우리가 서로를 살리는 관계임을 확인하는 자리다. 이번 2011 생산지기행 목적지는 부여의 밤뜨래와 전남 신안의 마하탑으로 정해졌다. 밤뜨래는 밤양갱과 맛밤을 공급하는 생산지고, 마하탑은 천일염을 공급하는 생산지다. 먼저 부여에 들러 밤뜨래 공장을 찾아갔다. 국내산 밤 100%로 맛밤을 만드는 과정을 강봉석 생산자의 설명과 함께 들었다. 일일이 손으로 밤껍질을 까던 과거와 달리 화염식 박피 기계를 도입해 밤이 기계를 통과하면 껍질이 벗겨진다니, 참 신기했다. 1차 껍질이 벗겨진 채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여에서 밤뜨래 공장 견학 후, 전남 신안으로 향했다. 여성민우회생협과 긴 시간동안 함께했던 마하탑 유억근 생산자를 만나러 가는 길. 거리가 멀어서 일까. 더욱 기대되고 떨리는 마음이다. 점암 선착장에 도착해 배를 타고 20여분을 들어가니 마하탑이 있는 임자도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유억근 생산자의 안내로 마하탑 염전을 방문했다. 넓게 펼쳐진 네모반듯한 염전, 바다 내음이 그대로 전해지며 칸칸의 푸른 물빛이 넘실거린다. 바다, 태양, 바람으로 만들어진다는 자연의 소금 천일염. 자연의 섭리가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는 소금이다. 파랗게 보이던 염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새 결정이 된 소금이 보인다. 네모 반듯한 큐브 모양의 소금은 살아 있는 임자도의 생명을 그대로 담고 있는 듯했다. 미네랄 성분이 없는 재제염과 달리 미네랄이 풍부한 마하탑 소금은 짜면서도 고소한 맛이었다.
유억근 생산자는 10년 전에 있었던 다이옥신 파동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볶은 소금에서 다이옥신이 다량 검출돼 다른 생협에서는 소금 공급을 중단했을 때, 민우회생협만이 유억근 생산자를 믿고 계속 공급했다고 한다. 검사 결과 마하탑 볶은 소금에서는 다이옥신이 검출되지 않았고, 유억근 생산자는 그 일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믿음을 간직한 채 유억근 생산자는 소금을 만들고 조합원은 그의 소금을 믿으며 먹는다.
달이 가로등이 되는 길
먼 길을 가서인지 곧 날이 저물었다. 맛있는 저녁을 먹고, 숙소로 향하는 길. 버스가 올라갈 수 없는 길이라 30분을 걸어서 가야 했다. 달이 가로등이 되어 우리의 길을 비춰 주고, 둘씩, 셋씩 모여 길을 걸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어떤 이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아이들은 무서운 이야기를 한다. 어릴 적 추억을 하나 둘 꺼내들기도 하고, 집에 있는 가족이 걱정돼 전화를 거는 이도 있다. 조용한 시골길에서 낯선 이들의 방문을 개가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동네가 울리도록 짖는다. 이 모든 광경이 꿈같았다. 복잡한 서울 도심 속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 고요함과 어두움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반짝이는 네온사인이나 간판도 없고, 그 흔한 가로등도 제대로 없다. 달이 이렇게 밝았는지 처음 알았다. 생산지 기행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냥 내가 홀로 즐기던 단순한 여행과는 조금 다르다. 실타래처럼 엮인 관계가 있고, 그 관계 안에서 보이지 않는 믿음이 존재한다. “ 그대가 만드는 것을 믿고 먹어요”라는 마음을 보여주러 찾아간다.
생각해 보니‘생산지기행’은 사람 여행이다. 사람을 여행하러 길을 떠난다. 그의 일터를 보고, 일하는 마음을 본다. 특별한 여행을 배웠다. 조합원들과 그의 가족과 또 생산자가 조금은 어색하지만 곧 ‘생활재’라는 매개로 하나가 되는 모습. 어느 여행에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
하룻밤을 보내고 배를 타고 나오는 항구에서 그야말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고작 하룻밤을 보내고 아쉽고, 서운해서 눈물이 글썽인다. 파란 물길을 가르고 달리는 배에서
1박 2일의 짧은 여행을 마음에 담는다. 생산자의 마음과 그 마음을 기꺼이 믿는 조합원의 믿음. 생산지기행이 더욱 아름다운 여행이 되는 건 바로 이들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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