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호 [기 획 ] 총회가 이렇게 재밌는건지 몰랐지이~
총회가 이렇게 재미있는 건지 몰랐지이~
김나현(용가리) ■ 한국여성민우회 회원
총회 재밌더라!
나름 8년차 회원, 그러나 이번이 겨우 두 번째 총회 참석이다. 사실 참석 요청 전화를 한두 번쯤 받은 기억이 있긴 하다. 애들을 맡기기 힘들기도 하고, 오래 묵은 장롱 면허처럼 소극적 비활동 회원이라는 핑계도 댔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왠지 `총회’라는 행사의 무겁고 딱딱한 이미지 때문이었던 것 같다. 반대로 송년회라면 매번 기어코 참석했던 이유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대표님 이하 활동가들, 정말 미안해요. 많이 부족했던 회원 시절 얘기에요;;)
처음 참석했던 2010년 총회는 ‘총회란 재미없고 지루한 것이다’라는 내 편견을 완전히 깨뜨렸다. 물론 사업 보고, 예산 보고 하는 내용들은 까맣게 잊은 지 오래지만(또 한번 죄송), 톡톡 튀고 창의적인 각종 영상들과 ‘근육의 숨결’ 모람의 발표, 뭉클했던 권미혁 쌤의 환송회 등 중요사항 외적인 것들은 일년이 지난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는 걸 보면 민우회 총회는 정말 특별하다. 축제이기도 하고 발표회이기도 하고 특히 뒷풀이가 기대되는 술먹을 건수ㅋ이기도 하다.
2012년 총회에도 가 볼까?
총회 2주 전 활동가 바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명인이 되어달란다. 그거 뭐 도장 들고 가서 몇 번 눌러주고 오면 되는 거 아닌가? 며칠 전 반아는 총회 후기를 써달라고 했다. 민우회에서 뭔가 시키는 일이 많아진다. 나 따위 회원에게 뭐 그런 일들을 시키나 싶으면서도, 반갑고 고맙다.
(다만, 글 쓰는 일만은 제발, 나 글쓰기 소모임에서도 글 안 써오고 수다만 떤다고 구박받고 있어요.) 총회 직전에야 서명인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인지를 알았다.
단, 세 명, 그것도 서명인들의 면면을 쭉 불러주는데 주눅이 든다. 왜 나 같은 사람을 거기에 끼워 넣는 거야. 하지만 활동가들이 고민해서 힘들게 부탁하는 건데, 고따위 사소한 열등감으로 활동가 힘을 뺄 수는 없지. 오케이, 도장 들고 갑니다.
오 맙소사, 총회 전날 밤 남편이 돌연 내일 출근을 해야 한다며, 또 그 놈의 ‘먹고 사는 게 해결된 다음 문제’ 논리를 들먹였다. 이에 나는 ‘내일 못 가면 당장 내가 죽을 수도 있는 문제’ 논리로 맞받아쳤다. 눈을 부릅뜨고, 턱을 위로 치켜 들고, 배를 힘껏 내밀며, 목소리를 두세 배 더 크게 올려서.
“내가 놀러 가냐? 나, 서명인이야, 서명인. 내가 안 가면 총회가 성립이 안돼. 이거 아무나 하는 건 줄 알아? 성폭력 상담소 소장! 미디어 운동본부 소장! 지역여성민우회, 대표! 정책위원! 이 정도 급은 돼야 할 수 있는 거야~!”
(나머지 서명인 분들 및 민우회 여러분 용서해주세요. 꾸벅. 근데 이런 게 살짝 먹어주잖아요, 아시죠?ㅋㅋ)
나는 너의 본명을 알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신나게 달려간 총회. 겨우겨우 시작에 맞춰 도착했다. 간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
그래, 이 얼굴들을 봐야 내가 힘이 난다니까, 힘내서 살아갈 수가 있다니까. 총회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하게 되는 일. 어색한 본명을 확인하면서 빵빵 터지는 일.
“하하하, 네가 나현이야? 용가리가 낫다. 우하하하”
“치, 니가 유경이인 것도 웃기거든. 그치 은선아? ”
“근데, 박정숙이 누구지? (한참 후) 응? 아하! 흐흐흐”
총회 진행의 달인 선생님들의 회를 거듭할수록 능숙한 진행과 간간히 터지는 멘트들. 그리고 역시 일 년 내내 기억될 재기 발랄한 영상들. 개콘 ‘감사합니다’에 맞추어 활동가들이 회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았다는 영상. 또 빵 터졌다. 만든 사람들은 머리가 터졌겠지만, 우리는 이런 걸 제일 좋아해. 행사에 참여할 때마다 진심으로 감탄하게 된다. 모두 능력자들만 골라 뽑은 거야, 아니면 여기 있다 보면 다들 저렇게 되는 거야? 나가수 경연 무대만큼은 아니어도, 나름 단상 위에서 긴장될 만도 한데, 실수인지 설정인지 헛갈릴 만큼 능청스럽게 참 잘한다. 복잡한 숫자도 안 꼬이고, 어려운 단어가 연속으로 나와도 아나운서처럼 세련되게 발음도 잘한다. 특별 프로그램 진행하신 고양파주 민우회원 최수진님은 유재석 저리 가라, 프로 MC 포스를 풍겼다. 완전 간지나는 PT는 또 어떤가. 언젠가 활동가로 일하고 싶다는 꿈을 꾸다가도 그런 초능력들을 보게 되면, 역시 민우회 활동가는 절대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없는 거라고 인정하게 된다.
총회의 하이라이트. ‘눈은 번쩍, 귀는 쫑긋, 입은 아하~’ 하게 되는 시간.
바로 일 년 동안 열심히 활동한 회원 및 활동가들을 시상하는 특별 프로그램 시간이다. 계속 마음 졸이며 기다린 이유는 회원상 수상 후보로 내가 ‘물결’을 추천했기 때문이다. 진심 ‘물결’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마구 휘갈겨 쓴 추천서. 그 추천서의 일부가 낭독되자 너무 부끄러웠지만, ‘물결’이 민우회에 기여한 어마어마한 업적을 꼭 밝혀야 한다는 사명감이 훨씬 더 컸다. 그 많은 기획단과 소모임을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하지 않고 중심에서 적극적으로 해낸다는 것이 보통 일인가. 부러우면서도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모둠상으로는 영광스럽게도 소시오 드라마 모임 ‘얼음땡2’가 받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내가 수상 소감을 하게 되었는데, 함께했던 모임원들 한 명 한 명 호명해주고 싶었다. 여경, 모후아, 꼬깜, 수풀, 물결, 가혜, 이산.
모두 고맙고 사랑해요.
잘은 모르지만 지역에서 회원상, 모둠상, 감사패 등을 받은 분들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싶다.
그분들이 어떤 분들이신지, 어떤 활동들을 했는지 자세하게 소개가 되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멋들어진 수상 소감도 더 길게 듣고 싶고.
2회, 3회째 평생회원상을 받는 회원들도 정말 대단하다. 요즘 여러 가지로 어려운 시국인데, 민우회에 대한 애정과 헌신 없이는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자리에 앉아있는 내가 부끄러웠다. 내 맘대로 큰 돈을 쓰지 못하는 경제권 없는 전업 주부의 처지가 억울하기도 하다. 당당하게 ‘이건 내 돈이야’하며 평생회원을 꼭 하고야 말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마지막으로 2012년 사업계획을 발표하는 자리가 있었다. 작년 한 해, 얼마나 많은 사업이 있었나. 항상 대표와 활동가들이 식당 노동자, 낙태, 반성폭력, 등을 주제로 캠페인이며 토론회를 하느라 피곤에 쩔어 있던 모습을 볼 때마다 안쓰러웠다. 이 사람들 올해에도 얼마나 엄청난 사업을 벌이려나. 그 중에서도 새로 계획된 성평등 복지정책, 이른바 4W 프로젝트가 인상적이었다. 최근 복지 이슈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높은데, 민우회가 또 한번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큰 일을 해낼 것 같다. 게다가 올해는 총선, 대선이 있다. 여성 인권이 몇 단계 위로 도약하는 한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나도 뭔가 사소한 거라도 기획단, 소모임 같은 것을 열심히 해야겠다.
신나게 웃고, 박수치다 보니 순식간에 총회가 마무리 됐다.
올해는 비교적 짧고 산뜻하게 끝난 것 같다.
이처럼 25주년이 된 올해 가슴 답답한 일 없이 신명나고 상큼한 활동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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