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호 [마포나루에서] 나는 매일 시험보는 기분으로 산다
■마포나루에서
나는 매일 시험보는 기분으로 산다
홍지명(날리) ■ 한국여성민우회 회계
준영 : 엄마, 왜 아톰은 팬티만 입어?
나 : @@ 그.러.네…
(아톰은 왜 팬티만 입지? 그러고보니 태권V나 마징가Z도 팬티만 입는다)
로봇들은 그런가부다… ^^;
준영 : 춥겠다.
나 : 아니야. 괜찮을거야. 로봇이니까.
준영 : 로봇 사람은 안 추워? 괜찮아?
나 : 으응~
이제 다섯 살난 아이는 말이 늘어가면서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쏟아낸다.
아이를 낳기 전에 ‘아이의 질문에 가능하면 사실대로, 성심성의껏 얘기해준다’, ‘거짓 대답을 하지 않는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한다’, ‘아이가 떼를 써도 사탕이나 여타의 것으로 현혹하여 넘기지 않는다’ 등등의 고결한 결심은 이미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지 오래 됐다. 한 동안 거짓 대답을 하지 않으려고 ‘엄마도 잘 모르겠는데?’를 남발하니 아이도 어느 순간 대부분의 질문에 ‘나도 잘 모르겠는데?’로 일관한다.
이건 아니다 싶어, 그닥 뛰어나지 못한 순발력을 쥐어짜거나 여의치 않으면 다른 것으로 관심을 돌리는 치졸한 방법을 동원하여 그때 그때 위기(?)를 모면하고 있다.
그러나 순발력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때가 더 많다. 다음의 예를 보라.
◉ 상황 1.
유투브에서 한미FTA 반대 시위대로 밀고들어오는 종로서장 동영상을 보고 있는데.
준영 : 경찰이야? (경찰복을 본 듯)
나 : 응.
준영 : 뭐하는 거야?
나 : ... (허걱! 이걸 어찌 설명 해야하나? 한미 FTA를 설명해야하나? ㅡㅡ;;) 음…
좋은 경찰만 있는 건 아니야..
준영 : 어느 나라야?
나 : (못 들은 척) 호박엿 먹을래?
◉ 상황2
뉴스에서 핵 안보회의를 대비한 경찰특공대의 훈련장면을 보고 있는데.
준영 : 나쁜 사람이야?
(평소에 총을 들고 다른 사람을 쏘면 안된다고 하는 말을 기억한 듯)
나 : (침묵)
(직업에 대한 선입견을 심어주고 싶지 않는데.. 나중에 군대에 가게될지 모르는데…)
준영 : 우리 공격 해? 죽여? 탱크도?
나 : 아니야~ 전쟁이 안나면 괜찮아. (아, 오버다… ㅡㅡ; 전쟁에 대해서 물으면 어떻하지? 전쟁이 나지 않아도 총은 위험한데)
준영 : 전쟁이면 공격해?
나 : (‘적’이라 해야 하나? 아니야! 그 개념을 심어주고 싶지 않아. ‘편’이라고 해야 하 나? 편 가르면 안될 것 같아. ㅜㅜ) 다른 '쪽'만... ^^;
(다행히 장면 바뀜) 와~ 돌고래다~!
아직까지 경찰은 만화에서 나오는 ‘로보캅 폴리’처럼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착하고 힘센 존재로 인식하는 아이에게 우리나라 경찰은 물대포도 쏘고, 시민들도 때리고 한다는 것을 어찌 설명하리. 현 정세를 설명할 수도 없고, 현대사를 훑을 수도 없고, 모든 경찰로 일반화시키는 것도 옳지 않고, 직업에 대한 선입견을 갖게 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세상은 아름다워~’ 라고 하기엔 내가 너무 현실적이고.
물론 아이는 매일 로봇 장난감으로 공격도 하고 놀고 무찌르기도 하지만 그것은 환상의 영역이다. 현실에서는 권력과 폭력에 관해 다섯 살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하기란 정말 머리에 쥐나는 일이다.
‘총기사용의 문제에 대해 인간존엄성에 근거하여 200자 원고지 10매 내외로 서술하시오’ 보다 백배는 어렵다. 모범답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족보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어찌어찌 잔머리를 굴려서 위기를 넘기고 나면 ‘이제까지 그 문제에 대해 내가 어떻게 생각 해왔지?’ 라는 과제도 남겨준다.
시험문제는 다양하다. 정치사회분야 뿐 아니라 정서/감정분야. -나의 욕망과 아이의 욕망이 상치될 때-의 문제들도 매일 매일 풀어야 하는 난이도 ‘상’의 문제이다. (이 문제를 얘기하면 소설책 두 권은 나올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머리가 굵어질수록 아마도 시험문제들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점점 더 세밀하고 논리적인 답들을 요구하겠지. 아마도 좋은 점수를 받기엔 글렀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와 같이 살고 있는 이 작은 사람을 존중한다. “시끄러!” 라고 판을 뒤집고 시험 거부를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이 시험에 대한 나의 에티튜드이다. 그러다 보면 20년, 30년 후에는 성인이 된 아이와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합격의 영광(?)을 얻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는다.
오늘도 그렇게 시험장에 결연한 마음으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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