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4월호 [민우ing] 여성할당제, 숫자를 넘어 바라보기
▣민우ing
여성할당제, 숫자를 넘어 바라보기
안미선(낭미) ● 여성노동팀
3월 10일 ‘세계 여성의 날’ 행사에서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축사 끝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성할당제를 당에서 하려고 했을 때 아직 높은 벽과 한계를 느꼈습니다.”
이 말이 제게는 여성할당제를 과도한 특혜라고 보는 편견에 부딪혔고 현실적으로 할당된 몫을 채울만큼 준비된 여성 정치인이 부족하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언제 우리는 ‘세계 여성의 날’ 행사에서 ‘여성과 남성이 같은 수로 정치에 진출하고 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상상해보았습니다.
2월 29일 한국여성민우회는 여성할당제에 대한 긴급토론회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었습니다. [공정한 경쟁: 여성할당을 둘러싼 담론의 젠더 정치](전희경, 한국여성민우회 정책위원), [할당제, 숫자의 정치를 넘어서](유정미,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할당제의 전세계적 적용](김민정, 서울시립대 교수)이라는 이름으로 발제가 있었고 각계 전문가의 토론도 이어졌습니다. 제각기 다른 의견이 솔직하게 나왔고,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여성할당제에 대한 진지하고 근본적인 이야기가 쏟아져나와 사람들은 놀라고 반가워했습니다. 이날 나온 이야기들은 할당제를 역사적인 맥락에서 고찰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여성할당제가 왜 필요한지, 어떻게 실현해나가야 할지 제각기 의견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역사의 목소리, 여성할당제
1948년 1대 국회에서 여성 국회의원 당선자는 단 한 명이었습니다. 1996년까지 전체 국회의원 수에서 여성 국회의원 수는 열 명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삼백 명의 국회의원 중 여성이 열 명이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여성할당제는 정치에서 지금에 오기까지 역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 국회에서 여성 국회의원 당선자가 한 명이었고, 이후 두 명에서 다시 한 명, 두 명을 반복해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여성 국회의원 수가 열 명이 넘는 데 오십 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것은 자유로운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두둔할 문제가 아니고 적극적이고 ‘절박한’ 시정조치를 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 숫자는 정치에서 남성의 우월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적이고 구조적으로 여성이 배제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이상한 비율을 시정하는 것은 완강한 차별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려는 노력입니다. 2000년 16대 국회의원 가운데 처음으로 여성 국회의원이 열 명을 넘었습니다. 273명의 국회의원 가운데 열여섯 명의 여성 국회의원이 생긴 것, 그것이 여성할당제의 효과였습니다. 18대 국회에서는 41명의 여성 의원이 나타났고 전체에서 그 비율은 13.7%였습니다. 여성할당제에 대한 논의는 이런 변화의 흐름을 먼저 보고 시작해야 합니다.
남성 정치인들이 “여성에 대한 과도한 특혜다” “무임승차다” 제멋대로 비난하지만 그것은 특혜를 운운하기에는 너무나 눈물겨운 수치입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15%나 30%의 할당제 수치를 들먹이며 여성들이 자신들의 자리를 빼앗는다고 푸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 현실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남성들은 섣부른 비난을 하기보다는 이때까지 남성들이 누려온 눈에 보이지 않은 배타적인 특권에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할당제라는 적극적 차별 시정 조치가 요구될 정도로 견고하게 누적되어 온 눈감고 귀막은 ‘남성의 특권’을 지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성할당제는 성평등한 민주주의 사회를 위한 급박한 정책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혜적인 ‘할당’의 이름이 아니라 ‘동수’의 권리로 목소리를 내어야 할 문제라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동수제를 생각하며 우리는 ‘남녀반반’을 떠올리고 웃어보기도 하였습니다. 몇 백 명의 남자 국회의원과 몇 십 명의 여자 국회의원의 비율 속에서, 침묵 속에 묻히게 되는 더 많은 목소리들을 생각해봅니다. 이 비율은 우연도 아니고, 능력주의도 아닌, 지속적으로 공모되어 유지되어 온 것입니다.
‘여성할당제’가 높은 벽이나 한계인 데 그치고, 무관심하거나 어려운 남의 문제에 그치고, 비난하고 공격할 대상으로만 여긴다면, 논의는 진전되지 않을 것입니다. 나라가 세워진 이후 여성의 문제는 언제나 나중으로 미뤄지고 언제나 덜 시급한 문제가 되어왔습니다. 여성이 정치인이 되는 것을 예외적인, 특권을 차지한 ‘여자’ 취급을 한다면 바뀌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다시 우리는 이 자리에 모여 묻습니다. 이것이 공정한 경쟁인가? 숫자가 무엇을 감추고 있는가? 15%에, 30%에 갇히지 않는 상상력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라고 말입니다.
“여성할당제를 남성에게 아무런 ‘피해’가 가지 않는 한도 내에서 ‘약자’인 여성을 ‘배려’하는 것으로 이해하는가, 아니면 그간 보편성을 임의로 독점해 온 남성 권력을 해체하고 평등을 제고하기 위한 구조적 개입으로 이해하는가는 철학의 문제다”
토론회에서 전희경 정책위원은 여성할당제는 민주주의 회복의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그 목소리는 1947년, 보통 선거법을 제정할 때 제헌의석 266석 중 여성에게 22석을 할당하라고 요구했던 목소리와 겹칩니다. 남성들의 역사야말로 오랫동안 특권과 기득권에 기반한 ‘무임승차’의 역사였다고 전희경 정책위원은 다시 지적합니다. 여성 국회의원이 소수라는 것은 한국의 정치 문화, 정당 구조가 여전히 남성 중심적이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문제의 해답도 이 구조를 바꾸는데 있습니다.
여성할당제를 넘어 동수법으로
여성할당제는 2000년대부터야 제도에 반영되기 시작했습니다.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하면서 여성들이 여성 정치 참여를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20년이 넘게 운동을 해왔지만 아직도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0%대 초반이고 비례대표가 다수이며, 비례대표를 한 의원은 초선으로 국회의원을 마감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평등한 시민적 권리를 실천하기 위한 여성할당제는 과도하거나 지나친 것이 아니라 아직 이루어야 할 것이 많은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정치에 대한 섣부른 불신도, 정치인에 대한 조롱섞인 농담도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정치는 평등한 분배를 실천하기 위해 겨루는 장이고 그 속에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수많은 목소리가 이를 지탱해주어야 하며 그것은 무관심과 조롱으로써는 나올 수 없는 목소리이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에서는 1980년대 시의회에서 ‘한 성이 80%를 넘을 수 없다’를 법에 넣었다가 이를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으로 보아 헌법 개정 논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것이 이후 법개정 운동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0년대 남녀가 공직에 동등하게 대표되어야 한다는 동수 개념이 생겼고 유권자의 의식이 변화했습니다. 1997년 프랑스에서는 여성을 30% 포함시킨 지역구 공천 명단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2000년의 선거법 개정으로 프랑스는 선거법에 동수를 명시했습니다. 선거 후보에 남녀를 동수 공천하라는 동수법은 후보뿐만 아니라 선거 결과에도 큰 영향력을 미쳐 많은 여성 의원이 당선되었습니다. 그 결과 동수법 이후 각 선거에서 여성 의원의 비율은 전반적으로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숫자 앞에서 어떤 이는 비난을 하고 어떤 이는 이용할 생각을 하고 어떤 이는 한숨을 쉬지만 어떤 이들은 숫자 속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되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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