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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4월호 [기획] 밥 짓던 감각으로
▣기획
밥 짓던 감각으로
손경화 (기:잉) ● 다큐멘터리 감독
나는 지난 2010년 총선을 배경으로 <그 자식이 대통령 되던 날>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여기서 '그 자식'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아빠나 동네 아저씨들은 정치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를 '그 자식' 혹은 '빨갱이 자식'이라 칭하며 비난을 하였다. 나는 그가 나쁜 놈이라 믿었다. 참고로 당시 내가 살던 지역은 대구였다. 그런데 내가 중학교 3학년이던 어느 날, 그 나쁜 놈이 장래희망의 최고봉인 대통령이 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다음날 학교를 가면서 생각했다. '나쁜 놈이 대통령이 되었으니 선생님이 오늘 수업은 안할 지도 몰라.' '어쩌면 고등학교에 안 가도 되지 않을까?' 뭔가 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주는 묘한 흥분을 느끼며 선생님의 조례 말씀을 경청하였지만, 선생님은 충격적인 선거 결과에 대해 한 마디 언급도 하지 않고 교실을 나가셨다. 뿐만 아니라 김대중이 대통령 되면 나라가 망하고 북한이 쳐들어온다며 겁을 주던 아빠와 동네 아저씨들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출근을 하였다. 뭐지? 그러고 보니 김대중이 당선된 것은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말이다.
속았다.
대구라는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지역에서 자라면서, 그에 반하는 정치적 입장을 가지게 된 것은 어른들의 세상을 의심하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그 뒤로 항상 궁금했다. 왜 태어난 지역에 따라서 정치적 성향이 달라지는지, 가난한 우리 아빠는 왜 본인에게 득이 될 것 없는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것인지, 한 사람의 정치적 입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나는 그 궁금함을 가지고 아빠와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가난과 열등감, 기독교 신앙, 가족, 현실 정치에 대한 나의 생각이 복잡하게 얽힌 다큐멘터리가 관객들에게도 그 궁금함을 잘 해소시켜주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하는 과정을 통해 나는 나름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6.2 선거 날에 느꼈던 ‘아차!’ 싶었던 감정은 지금까지도 과제로 남아있다. 사실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방문을 쾅 닫는 걸로 끝나는 아빠와의 갈등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치에 관심이 없어 갈등조차 없는 다른 가족들에게는 선거 전날까지 진지하게 말 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선거 날 아침, 시장에서 칼국수 가게를 하시는 엄마에게 손님들 오기 전에 투표를 하고 오라고 말했더니, 엄마는 투표해도 만날 똑같은데 뭣 하러 하냐고 말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에게 투표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은 했지만, 피곤하다는 엄마의 말을 되받지 못했다. 잠이 부족해 충혈 된 엄마의 눈이 보였기 때문이다. 언니는 출산을 한 지 한 달 정도 되어 산후 조리며 모유 수유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런 꼴로 투표하러 가야 하냐며 어이없다는 듯 묻는 언니에게 나는 ‘그래도 가야지’ 라며 말끝만 흐렸다. 회사를 그만두고 쉬고 있는 남동생은 그래도 투표를 하겠지, 기대를 하고 물어봤다. 남동생은 선거 날 새벽에 출발해 대구에서 포항까지 자전거 여행을 간다고 했다. 왜 하필 선거 날이냐고 하니 친구와 시간이 맞는 날이 그 날 뿐이라고 했다. 대학 졸업 후 취업한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만두었지만, 생각보다 재취업이 쉽지 않아 1년 가까이 스트레스를 받아 온 동생의 얼굴이 어둡고 꺼칠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몸을 힘들게 해서라도 다른 기분을 느끼고 싶은 동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여행을 미루고 투표하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결국 가족 중에서 투표를 한 사람은 서울에서 미리 부재자 투표를 하고 온 나. 그리고 선거권을 갖게 된 이 후로 한 번도 투표를 거른 적이 없다는 아빠뿐이었다. 나는 그제야 중요한 뭔가를 놓친 걸 알았다. 사실 내가 원하는 선거 결과를 얻기 위해선 아빠를 설득하는 것보다는 다른 가족을 투표하게 하는 것이 더 빠른 일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왜 아빠에게만 말을 건 것일까?
생각해보면 가족 내에서 정치와 관련된 것은 언제나 아빠의 몫이었다. 뉴스를 보는 것도, 신문을 보는 것도 아빠였다. 엄마는 일을 하고 밥을 짓고 드라마를 보았다. 명절 때도 엄마와 숙모들이 모여 있는 방에서는 생활 이야기들이 오고 갔고, 아빠를 비롯한 남자 어른들이 모인 거실에서는 정치 이야기가 오고 갔다. 밥을 언제 먹는지, 오늘의 저녁 메뉴가 무엇인지 등의 유용한 정보를 얻는 쪽은 언제나 방에 있는 여자들의 대화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남자들의 대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때부터 은연 중에 정치를 말하는 언어와 생활의 언어를 구분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정치에 관한 다큐멘터리라면, 입장은 달라도 정치를 말하는 언어를 쓰는 아빠와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 자식이 대통령 되던 날>을 본 사람들이 이 영화가 가족에 관한 사적 다큐인지, 정치에 관한 다큐인지를 물어보면 나는 그 둘이 결코 다른 토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 하면서도 나는 가족들에게 쓰는 생활의 언어로 정치를 이야기하는 법은 몰랐다. 그래서 아빠에게는 진보니 보수니 이야기를 할 수 있었지만, 투표를 하지 못하는 이유를 생활의 언어로 말하는 엄마와 언니와 동생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현실적인 문제들 앞에서도 힘을 잃지 않을 깊이가 나에게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비단 나만의 문제일까? 생활의 감각으로, 밥 짓던 감각으로 정치를 이야기 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정치는 여전히 우리들의 일이 아니라 그들의 일로 남을 것이다. 정리되지 못한 생각들은 이어지는데 주어진 원고 분량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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