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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4월호 [人터뷰] 1년 4개월의 투쟁, 성희롱 산재 승인을 남기다
▣人터뷰
1년 4개월의 투쟁, 성희롱 산재 승인을 남기다.
현대자동차는 국내 굴지의 기업입니다.
사람들은 현대 자동차를 타기도 하고, 도로에서 마주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 자동차들이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땀과 노력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현대 자동차의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가 성희롱을 당하자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려고 했던 것을 말입니다.
그녀는 1년 4개월 동안, 아산 공장에서부터 서울의 여성 가족부 앞까지 묵묵히 걸어왔습니다.
왜냐면, 그녀는 부당해고를 당했고 가해자는 계속 회사를 다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그녀가 일터에서 떠나기만을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12년 2월 1일.
그녀는 다시 일터로 복직됐습니다.
최초로 ‘성희롱 산재 승인’도 받았습니다.
멋지게 제자리로 돌아온 그녀의 별칭은 ‘사랑’입니다.
작은 꽃처럼 아담한 체구지만 들꽃처럼 강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그녀를 만났습니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기념식에서 사랑님은 ‘성평등 디딤돌’상을 수상했다.
수상 축하드립니다. ^^ 복직 하셨는데, 어떤 일을 하시나요?
- 해고되기 전에 했던 똑같은 일을 해요. 차량이 출고되기 전에 점검하는 일이에요.
오랫동안 쉬시다 복직하셨잖아요. 힘들진 않으세요?
- 일은 괜찮아요. 14년 동안 하던 일이라서 힘들진 않구요. 그것보다는 투쟁해서 복직하다보니, 제가 뭐 예쁘기야 하겠어요(웃음) 정신적으로 오는 압박감이 힘들죠. 처음엔 사원들 전체가 말을 시키지 않더라구요. 출근해서 열흘 째 되던 날, 노동조합에 갈 일이 있었어요. 그 때, 그런 말을 했죠. 오늘 출근한지 열흘이 됐는데, 열흘이 십년 같았다고. 그 정도로 보름 정도 힘들었어요. 지금은 몇 명은 말을 시켜요. 그 정도로 만족해요.
처음엔 오히려 징계 조치를 받으시고, 회사에 재심을 신청하시면서 많이 힘드셨잖아요.
그 와중에 어떻게 상황을 정리하고, 마음을 다잡으셨어요?
회사를 다니는 동안 힘들었죠. 내가 힘도 없고, 항의를 해도 소용이 없으니까요. 도대체 이게 뭔가 집에 와서 되짚게 되더라구요. 결론은 참고 회사를 다닌다고 이 고통이 끝나지 않는다는 거죠. 6개월 쉬고 (사랑님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사내 분위기를 문란’하게 한다고 6개월의 정직 처분과 임금 감봉 조치를 당했다.) 다시 돌아오면 나를 괴롭히지 않을까? 그건 아니다. 라는 결론을 내렸죠. 그래서 노동조합에 알리고 같이 싸워줄 수 있냐 상담을 했죠. 같이 싸워줄 수 있다고 해서 노조에 가입하고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냈죠. 근데 조사가 들어가기도 전에 해고를 하고 폐업을 해버렸죠.
아예 복직을 못하게 한 거네요
그렇죠. 나중에 알게 된 거죠. 처음엔 왜 그런지 몰랐어요. 아까 어떤 식으로 정리했냐고 했잖아요. 하나하나 싸우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알게 되더라고요. 왜 그런지 이유도 알게 되고 대처할 방법도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싸워나가는 과정이 밟아지더라고요. 그래서 지금까지 왔죠.
그렇게 얻으신 경험이나, 지식들이 살아가면서 큰 힘이 되겠지만.
한편으론 참 고통스럽게 얻는 배움이잖아요. 어떤 생각들이 들었나요?
동시에 왔어요. 기쁨과 고통과 슬픔과 얻어지는 배움이요. 공존해서 같이 오는 거예요. 어떤 날은 기쁘고, 어떤 날은 슬프고, 어떤 날은 왜 이렇게 안 풀릴까? 계속 공존해서 내 심정 속에서 변하는 거죠. 그래도 내 나름대로 믿음이 있었어요. 고통스럽기만 하고 잘못 될 것 같이 불안하면 못 싸우죠. 길바닥에 나앉아 있어도 반드시 승리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그렇게 힘들게 얻으신 값진 결과가 복직과 최초로 성희롱 산재 승인이잖아요. 성희롱이 산재로 승인된 건 정말 유례없는 일이죠. 두고두고 많은 여자들에게 도움이 되고요.
외국에서도 전화 와서 물어봐요. 어떻게 성희롱으로 산재 신청할 생각을 했느냐고요. 산재 신청은 금속 노조의 산재 담당자 생각이었어요. 이런 게 있다고 해서 한 번 해본 거였어요. 그런데 솔직히 그 과정이 힘들었어요. 병원 다니고, 심리 척도 검사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할 만한 검사지만 그때 정신적으로 힘들었거든요.
들을수록 대단하세요. 그리고 정말로 긴 시간을 싸우셨어요.
처음엔 이렇게 큰 문제인지도 몰랐어요.
그런데도 지금까지 오셨네요.
억울하니까요. 분하고 억울하니까요. 현대 자동차가 나를 건드렸잖아요. 복직하면서 사장에게 말했어요. 건드리지 않으면 조용히 일한다고. 회사에서 가만두지 않으니까 싸우는 거 아니냐?고. 맞는 말이잖아요.
맞는 말인데도 말하긴 참 힘들죠 (웃음)
전 말했어요. 이 말도 했죠. 이제 나이 먹어서 힘들어서 못 싸운다고. 그래도 마음속으론 다짐했죠. 또 건드리면 또 싸워야지. (웃음)
첫 출근 때 기분은 어떠셨어요?
정말~ 뿌듯했어요! (이때 사랑님의 표정은 보는 사람도 웃게 했다. 그 기쁨을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쫓겨나서 1인 시위 할 때, 현대 자동차 화장실이라고 문 잠궈 버리고 못 쓰게 했거든요. 근데 내 손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고, 거기다 노동조합 조끼를 입고 출근 했죠.(웃음)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인 회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어봤다. 사랑님은 힘주어 말했다.
“나 같은 사람도 싸웠잖아요. 현대 자동차가 결코 작은 회사는 아니거든요. 그래도 다른 여성분들은 나보단 나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를 보고(웃음). 저 아니라도 산재를 보고 힘을 얻어서. 여성이라서 당하는 부당한 일에 도망가지 말고 열심히 싸웠으면 좋겠어요.”
복직 후에 가장 행복한 일은, 텐트에서 못 보던 드라마를 보고 퇴근해서 아이들과 따뜻한 밥과 맛있는 반찬으로 오손도손 저녁을 먹는 일이란다. 한편으론, 차마 미안해서 마지막 인사도 할 수 없었다는 아직 투쟁 중인 재능교육 농성자들도 잊지 않는다. 이제 우리에겐 신기루가 아닌 진짜 진짜 오아시스가 있다. 부당한 일터에서의 갈증을 씻어줄 오아시스가 되어준 그녀의 이야기에 나와 우리의 이야기를 덧붙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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