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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4월호 [문화산책] 웹툰 속 하루
▣문화산책
웹툰 속 하루
강선미(폴) • 성평등복지팀
* 이 이야기는 웹툰과 현실을 오고가는 이야기입니다
친구가 놀러 온다고 했으니 뭔가 맛있는 걸 만들어 먹어야 할텐데. 일단 마트부터 가자. 우리 동네에 있는 천리마마트는 보통 대형마트와는 다르다. ‘손님은 왕이다’를 비꼬며 노동자 중심의 사람 냄새나는 상도를 보여준달까. 사장이 온돌카운터에서 직접 계산을 받는다. 서서 일하는 노동자의 고생을 고려하며 옛 구멍가게의 방식을 가져왔다고도 하고. 발상이 참 재미있는 곳. 불합리한 해고 상황에 처한 여성 청소노동자의 패기를 높이 사 바로 입사를 시켰다고도 한다. 나중에 새 일자리를 구해야 할 때, 천리마마트에 먼저 이력서를 내야지.
그럼 무슨 요리를 할까. 얼마 전에 들은 요리강좌가 딱 떠올랐다. 설날에만 떡국먹으란 법은 없지. ‘용용이 떡국’을 만들자. <역전! 야매요리>요리강좌의 야매선생은 정말 ‘요리계의 백남준’과 같다. 가능할 것 같지 않았던 걸 시도하며 만드는 과정을 친절하게 사진으로 보여준다. 여태까지 살면서 재료비와 맛을 생각하면 차라리 시켜먹는 게 나았던 적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아픔까지도 건드린다. 먹고 사는 게 중요한 문제가 되어버린 만큼 요리는 그 자체를 뛰어넘어 어쩌면 인간실존과 그로부터 기인하는 고독감을 표현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야매 선생의 요리법에 의하면 맛도 형태도 감당하기 어렵지만, 어떻게 하면 싱크대를 전쟁터처럼 어지럽힐 수 있는지 그래서 엄마에게 얼마나 쎄게 등짝을 맞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알려준다. 다른 요리강좌에서는 알 수 없는 것들. 삶의 고통 가운데 통하는 웃음. 요리와 부엌을 둘러싼 개인적 경험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장을 다 보고 서둘러 집에 왔더니 친구 완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그런데 말도 없이 애인을 데려왔네. 머리를 보니 왜 그동안 사자로 불렀는지 의문이 풀렸다. 머리가 엄청난 곱슬이구나. 완자는 사자와 레즈비언 커플이다. 완자가 처음 나에게 했던 커밍아웃 때가 생각난다. 덜덜 떨며 이야기를 했었지. 그전부터 사실 눈치 채고 있었는데. 아무튼 용용이 떡국을 먹으며 사자와 만나고 사귀게 된 이야기, 얼마 전에 동성애 조항여부로 논쟁이 되었던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이야기 등등 완자의 이야기꾸러미가 열렸다. 완자는 벽장 속에서 나와 주변의 단 3명에게라도 동성애를 제대로 알게 한다면 달라질거라 생각한다. 완자 말대로 이해의 토대가 넓어질수록 동성애가 사회 ‘문제시’되는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 것에 깊은 동감, 고개 끄덕끄덕.
놀러왔던 친구도 가고 벌써 어둑어둑해졌네. 오늘도 분주한 날이었지만 간만에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 것 같아 뿌듯하다. 내일은 또 어떤 하루가, 어떤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 기쁨으로 요즘 웃으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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