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er board list icon](/assets/common/header-board-list-icon-871ea5b4968af0aff7ac9000984dc947.png)
2012년 3*4월호 [마포나루에서] 인생은 밥상 같아라
▣마포나루에서
인생은 밥상 같더라.
문지은(반아) ● 성평등복지팀
거울 앞에 앉아서 얼굴을 보고 있으면 알게 된다. 얼굴은 눈 두 개, 코 한 개, 입 한 개, 귀 두 개로 만들어져 있다고 말이다. 얼굴이 되려면 필요한 이목구비라는 것들이 조합을 이뤄야 한다. 얼마나 아름답게 조합이 되는지는 유전자라는 복불복이 있지만. 여하튼 이것저것의 조합이 얼굴이 된다. 마찬가지로 나란 사람도 이것저것의 조합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조합은 유전자의 조합처럼 이미 만들어진 게 있고, 만들어나가는 게 있다. 만들 수 있는 것들은 거창하게는 ‘나’라든지, 인생이라든지, 사랑이라든지 일 테고. 작게는 매일의 감상과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찰나 등 일 것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도 ‘봄’ 때문이었다. 수행하는 분들은 길을 걷다가 문득, 세수를 하다가 문득, 깨달음이 온다던데. 나는 일하면서 딴 짓을 하다가 문득 깨달음이 왔다.
월요일이라 일도 하기 싫고 멍하니 창밖을 보는데 햇살이 가득했다. 꽃샘추위로 바람이 사납게 불던데 그래도 봄이 오려는지 햇살이 따뜻했다. 봄이 온다고 생각하니 ‘케빈퀀’의 음악이 듣고 싶어졌다. 고등학생일 때, 친구가 빌려준 mp3에 들어 있어서 알게 된 연주가다. 따뜻해진 잔디 위에 누워서 느긋하게 낮잠 자고 싶어지는 피아노 연주곡이다. 평소엔 잊고 지내다가도 봄이 오면 꼭 듣고 싶어진다. 나른한 봄날에 딱 어울리는 음악이다. 그래서 내게 봄이 온다는 건, 케빈퀀의 음악이 듣고 싶을 때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봄을 느낄 때가 나와는 다를 것이다. 봄옷을 보거나, 개나리꽃을 볼 때 봄이 왔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각자의 취향과 기억들로 ‘봄’을 느낀다. 그래서 봄을 조합하는 사물, 사람, 기억을 살펴보면 나란 사람을 알게 된다. 내가 후리지아 꽃을 좋아하고, 계절에 따라선 정적인 연주곡을 좋아할 때도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내가 만들고 있는 조합을 살펴보고, 알게 되고, 기억한다는 건 참 중요하다. 조각을 이어서 조각보를 만들듯이 인생도 내가 만든 조합들로 만들어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거기다 요즘 일상에 활력이 떨어지고 있어서 ‘나를 행복하게 하는 리스트’를 만들 참이었다. 무엇이든 행복한 기분이 들게 하는 건 모아서 기록하려고 한다. 그래서 지금처럼 활력이 떨어지고 지칠 때 보려고 한다.
나만을 위한 밥상을 차리는 거다. 밥상을 보면 차린 사람이 보이지 않는가? 타인을 위한 밥상이 아닌, 나만을 위한 밥상이라면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 올라오고, 그날 기분에 따라 반찬 뚜껑만 열어서 올려두기도 하고, 예쁜 그릇으로 멋을 낼 때도 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리스트’를 만드는 것도 일종의 밥상이다. 앞서 말한 ‘밥상’처럼 나의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나만의 밥상을 만드는 레시피인 셈이다.
밥상 얘기를 더 하자면 백석의 시 중에 ‘선우사’의 마지막 구절을 이야기할 수 있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이 시는 밥상 위에 올라온 가재미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내용이다. 특히, 마지막 구절에선 가재미를 좋아하는 백석의 마음과 가재미 반찬 하나에 ‘세상 같은 건 밖에’ 있어도 좋을 아이같은 마음을 느끼게 된다.
생각의 꼬리 물기를 하면서 음악도 듣고 오랜만에 백석의 시도 찾아봤다. 그리고 소식지에 실을 글도 한 편 썼다. 이 글에 담긴 내 단상의 조합이 읽는 사람에게 어떤 마음을 들게 할지는 모르겠다. 나에겐 바쁜 와중에 즐기는 망중한의 시간이었다.
이 글을 쓰는 시간처럼 결과가 어떻든 간에 소소한 일들로 채우는 순간들이 일상을 윤기 나게 한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