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6월호 [민우 ing] 2012 산부인과 바꾸기 프로젝트
▣ 민우ing
2012 산부인과 바꾸기 프로젝트
● 정슬아(여경鏡),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 회원팀
産 낳을 산 婦 며느리 부 人 사람 인 科 과목 과
아, 이름부터 거리감 돋는 [산ː-부인과]여. 내 그곳을 처음 갔던 기억을 떠올린다. 스트레스가 만발하던 고3, 일 년에 생리를 서너 번 밖에 하지 않고(이게 웬 축복! -_-;) 생리통이 심했던 시절 엄마의 이끎에서였다. 병원에서는 성관계 경험이 없어(없긴 했지만 묻지도 않았다) 좀 곤란하다며 항문으로 검사하겠냐고 물었는데 무서워서 그냥 나왔다. 그와중에 섹스 경험이 생기면 엄마랑 오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흘러 그곳을 다시 찾게 되었을 땐, 섹스 경험이 ‘있고,없고’를 떠나 결혼했으면 떳떳한(그것이 임신․출산을 위한 것이 아닐지라도) 방문과 그렇지 않은 미/비혼자가 겪게 되는 타인에 의한 가족계획에 대한 조언을 듣게 되었다. 더불어 예비부모가 즐비한 대기실에서 “나는 ‘낙태’수술하러 오지 않았단” 걸 보여주기 위해 여유로운 표정과 몸짓 등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하기도 했다. 내던져진 진료실에서는 더욱더 쪼그라들어 다리를 진료하기(보기엔 이상하게) 좋게 벌리고 앉아 기다렸다. 그리곤 훅- 들어오는 차가운 초음파 기계와 별문제 없다는 간단한 코멘트,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금액의 청구서를 받았다. 결과 확인에 시간이 걸리는 검진을 받았을 때는 문자로 띠링! 하고 통보받았고, 나의 걱정과 불안,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고 기억너머로 사라지곤 했다. 또다시 비슷한 증상이 찾아오기 전까지 말이다.
산부인과는 그 이름에서 추측되듯 ‘출산연령에 있는 여성 혹은 성숙한 부인’을 중점으로 두는 진료를 하는 곳이라 여겨진다. 그래서 특별한 증상이 없을 경우에는 산부인과를 잘 찾지 않는다. 굳이 이유 없이 일찍부터 찾을 필요는 없지만 위에 언급한 것 이외에도 다양한 경험들이 전해지고, 그 경험들이 쌓여 심리적이면서도 실질적인 장벽으로 굳어졌다. 이는 질병임이 확실해도 그곳을 찾지 못하는 이유가 되곤 한다. 여성들만이 가지는 신체 기관에 대한 관리와 치료를 하는 곳인데 이렇게 접근하기 힘든, 불편한 공간이 되어버린 이유는 뭘까?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된 것이 <2012 산부인과 바꾸기 프로젝트>다.
산부인과,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는가
홍대 카페 다락방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눈 우리는
서른 살에 이미 ‘노산’이니 빨리 애를 낳으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고,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있을 때쯤 한 난소수술 후 불임이 될 수 있으니
빨리 남자친구를 만들어 애 낳으라는 얘기를 듣고 앉아 있어야 했으며,
결혼 안했는데 질 초음파 검사 괜찮겠냐는 말에 온 힘을 다해 “괜찮은데요?!”를 외치기도 했고,
7-80명이 모여 앉은 대기실에서 “성경험 있으세요?”란 질문과 시선을 한 몸에 받기도 했고,
‘낙태’하러 온 게 아니라 검진 받으러 온 거라는 걸 온몸으로 표현하느라 쎄가 빠지기도 했다.
물론, 굴욕적인 진료의자에 다리 벌리고 앉아 ‘내가 입고 있는 이 치마는 빨기는 한 걸까, 저기 저 검사 도구는 깨끗하겠지, 이건(질 초음파 도구) 또 왜 이리 차가운 거야’란 생각과 함께
- [좌담회] ‘굴욕적인 의자에 앉는 것도 그렇지만…’ 후기
"성생활을 하십니까?"에 대해서 파트너의 성별이 여자인지 남자인지를 말해야 할지 말지
고민이 되었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 갈 때는 이런 말을 해야 하는지가 가장 고민이 된다.
- 산부인과 진료경험 에세이 1
진료실 들어가서 의사한테 방광염 같아서 왔다고 하니까 다짜고짜
“나이(만 18세)도 얼마 안됐는데 벌써 했어요? 이게 초짜들이 잘 걸리는 거야. 너무 많이 해서 그래. 어이고 피임약도 먹어? 도대체 얼마나 많이 하길래 그래?” 라고 말했다.
생리주기 맞출 겸 피임도 확실히 하려고 경구피임약 복용 중이었다.
먹는 거 엄마도 알고 오히려 피임 제대로 하는 내 자신이 뿌듯했었는데…
- 포털사이트 인터넷 게시판 글 1
산부인과와 진료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다들 경험하는 당혹감에 대한 이야기(진료 세팅이 주는 거부감, 비싼 진료비 등)외에도 다양한 결들이 있다. ‘산모’가 아닌 존재로 분류되는 비혼, 성소수자, 청소녀 등의 경험이나 임신․출산의 경험을 환영받는 ‘나이 어린 결혼한 여성’ 이외의 존재들에 이야기가 있다. 완경기 여성에게 당연하게 권장되는 호르몬 치료 혹은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아도 되는 여성에게 치료법으로 제시되는 자궁적출술 등도 빼놓을 수 없다. 또한 최근 들어 깔대기처럼 환원되는 자궁경부암 백신접종의 권장, 소음순 성형(이쁜이 수술), 처녀막 재생수술, 태반주사 등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를 마주하게 되는 상황들이 생겨났다. 이는 산부인과가 저출산을 이유로 산과 진료 이익구조가 깨진 후 시작된 새로운 행보가 원인이다. 온라인에서의 병원 홍보뿐만 아니라 병원 내에서 비치되어 제공되는 정보들 까지 점령하여, 여성들에게 제공되는 정보를 불균형하게 만들어내고 있다.
출산이후 요실금이 생겨 인터넷으로 상담을 했는데 “출산이후에 늘어난 질 때문에 질염에 노출이 되기 쉽고 요실금 증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산부인과에서 검사를 받은 후 질축소 수술을 받으시면 되는데 이런 수술을 이쁜이 수술이라고 합니다.”란 댓글이 달렸다. 닉네임은 ‘00산부인과’였다. 전문의 수술을 권하며 탄력 있고 수축성이 좋은 질로 만들어준다. 질염, 요실금 그 외 관계 시의 성감문제가 해결된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 포털사이트 인터넷 게시판 글 2
제일 고민이 되는 건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이다. 실제 찾아보면 접종시기를 살짝 지나친 거 같기도 하고, 안 맞아도 되는 거 같기도 함에도 불구하고, 아무튼 맞아야만 할 거 같은 압박이 있다.
맞자니 이 부담스러운 가격은 또 무언고? 해서 아직도 병원엘 못가고 있는 이 슬픈 진실.
그리고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데 싶은 이 짜증나는 진실.
- 산부인과 진료경험 에세이 2
산부인과, 무엇을 바꿀 것인가
산부인과를 찾아도 되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그 속에서 소외되는 여성들, 개인의 질병에 대한 치료 외에 강요되고 있는 시술 등은 우리를 그곳과 멀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 대해 제대로 조사된 적은 없다. 이를 위해 민우회는 산부인과 이용실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려고 한다. 산부인과를 찾기 전부터 다녀온 이후까지 시간적인 맥락을 고려하여 만들어졌다. 나아가 이번 실태조사 결과로 산부인과가 바뀌어야 하는 부분을 정리하고, 산부인과 이용TIP과 여성건강 정보에 대한 간략한 Q&A를 담은 소책자도 만들 예정이다. 내가 알고 있는 내 몸에 대한 정보는 한줌이어서 어떠한 몸의 증상이 있을 때, 병원을 찾아야 할 지 말지를 잘 알지 못함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질환과 질병은 결과일 뿐이며 그 결과를 이루게 된 다양한 사회적 환경과 조건을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산부인과와 여성’이란 키워드는 다수 여성들에게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여성들이 일상속에서 느끼고 있는 몸과 건강상의 문제에 주목하여 여성건강 문제를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산부인과 진료문화를 점검하고 바꾸는 것뿐만 아니라 여성건강 활동의 주요 단서와 현실을 드러내는 것! 이 얼마나 멋진가. 어느새 여성의 몸에 대한 인식 변화에 기여할 수 있을 거란 큰 그림을 그리게 된다. 복잡한 말들을 늘어놨지만 간단하다. ‘생활 속에 여성운동, 참여하는 여성운동’ 민우회의 모토가 짱이다. 하하. 그런 의미에서 설문조사 참여 부탁합니다.
부기Boogie 프로젝트란?
Boogie 란 영어로 ‘강하고 빠른 리듬의 블루스’ 혹은 ‘(빠른 팝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란 뜻이 있다. 산부인과라는 공간이 가진 다양한 맥락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여성의 몸에 대한 인식 변화에 기여하여 ‘여자, 몸’이 즐거이 춤출 수 있길 바람을 담았다.
<2012 산부인과 바꾸기 프로젝트> 부기Boogie 프로젝트 여자, 몸, 춤추다
● 산부인과 진료문화 점검 실태조사 및 인터뷰 : 5~6월 ● 산부인과 이용Tip을 담은 소책자 제작 및 의료지침서 개발 및 배포 : 7~8월 - 실태조사 및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소책자 기획 - 여성건강전문가 간담회를 통한 정보 취합 - 여성들의 불편한 경험을 근거로 한 의료지침서 개발 ● 산부인과 바꾸기 UCC 제작 기획단 모집 : 8월 - 실태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산부인과’를 둘러싼 다양한 키워드 UCC 제작 ● 산부인과 실태조사 결과 발표 토론회 및 문화제 : 9월 - 실태조사 연구결과 발표 및 UCC 상영회를 포함한 문화공연
※ 문의: 여성건강팀 여경鏡, 꼬깜 [email protect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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