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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6월호 [생생한 시각] 최근의 진보정치를 바라보는 여성주의자의 마음
▣ 생생한시각
최근의 진보정치를 대하는 한 여성주의자의 마음
최은경(토리) ‧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활동가
진보정치의 위기와 복잡한 마음
4.11 총선을 지나고 난 후 진보정치를 지지했던 사람들의 속내는 허탈하거나 복잡할 수밖에 없다. 4.11 총선에서 진보정치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각자의 이유로 통합진보당, 진보신당, 녹색당을 지지했다. 총선 직전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은 이들 진보정당과 함께 성소수자 인권 과제 실현을 위한 정책 협약식을 맺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책협약을 맺었던 정당 중 일부는 지지율이 낮게 나와 정당 등록이 취소되었으며, 일부는 현재 진보정당으로서는 상상키 어려운 극심한 부정과 패권, 폭력 사태가 벌어지면서 그 존재 가치가 회의적이다. 이러한 상황은 그간 진보정치의 성장을 바라고 꾸준히 지지해 왔던 이들에게는 거의 최악의 위기 상황과도 같다. 실제로 한 진보정당의 부정, 내분과 폭력 사태가 계속 언론 지면에 등장하고 있는 요즘 극심한 분노와 허탈감을 호소하는 이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요즘 한참 진행 중인 한 진보정당의 내분과 폭력 사태 등이 어느 정도 결론이 나야 분노와 허탈감이 잦아들겠지만, 분노와 허탈감이 진보정치에 대한 냉소로 이어질 것 역시 우려스러운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전후 자민당과 대등한 세를 구축했던 일본 사회당이 전공투 이후 세가 약화되어 오늘날 중앙 정치에서 존재감이 미미해진 경로를 그려 왔던 것과 유사하지 않냐는 시각이 있다. 진보정치가 더 이상 회생이 불가능한 상황에 봉착했냐는 시각도 있다. 일련의 상황을 종합해 볼 때 민주노동당이 창당한 2000년 이후 근 10 여년간 이어져 온 진보정치 1시즌이 막을 내렸다고 밖에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보정치가 더 이상 존재 가치가 없다거나 그 길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긴 어렵다. 진보정당이 잘 발달한 서구와 남미의 사례를 보더라도 진보정당이 집권했던 시기에 복지나 평등, 사회권이 신장한 경우가 많다. 물론 보다 평등한 사회를 이룩하게 된 데에 진보정당이 충분조건인 건 아니겠지만, 최소한 필요조건으로 작용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진보정당의 성장은 사회적 약자들의 정치적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구조가 자리잡았다는 의미이고 그만큼 사회 변화의 기회가 늘어난다는 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당의 성장은 거대 보수 야당의 이권에 따른 정치가 아닌 가치와 이념, 연대에 따른 정치로의 이전을 의미한다. 다소 부족하더라도 진보정당의 존재와 성장에 기대하게 되는 것은 진보정당이 아니고서는 기존 보수 정치에서 배제된 이들-노동자 ‧ 여성 ‧ 사회적 소수자 및 약자들-의 목소리가 대변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성주의 운동 역시 가치에 기반한 운동이라면 가치에 기반한 정치를 표방하는 진보정당과 직간접적인 연관을 맺을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여성주의의 입장에서 바라본 진보정치의 위기
그러므로 진보정치의 역사가 쇠락한 것으로 보인다고 하여 분노하거나 허탈해하고 절망하는 것보다 진보정치가 왜 어긋난 경로를 걷게 되었는지, 새롭게 다시 진보정치를 세워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성찰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혹자는 명망가 위주의 정치가 진보정치의 위기를 가져 왔다고 하고 정파 및 계파 중심 조직 운영이 진보정치의 쇠락을 가져 왔다고도 한다. 혹자는 대기업 남성노동자 중심의 민주노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진보정당이 노동자 일반의 대표성을 가지기 어렵다고 얘기한다. 이러한 비판들은 나름 다 근거가 있겠지만 여성주의의 입장에서 성찰을 해내는 것은 여성주의자의 몫일 것이다. 특히 진보정당을 지지하거나 그 속에서 활동해 왔던 여성주의자들의 성찰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혹자는 진보정치의 위기와 여성주의 정치가 무슨 상관이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간 진보정당의 위기에 관한 논의에서 여성주의 입장에서 근거한 진보정치 위기론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만큼 진보정당과 여성주의 정치는 상호 별개의 것으로 여겨지거나 거리 간격이 큰 느낌을 받고 있는것이다.
여성주의 의제에 대해 진보정당이 추구하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낙태 합법화나 동성파트너쉽 인정 등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도 진보정당이며 한국 정당 사상 최초로 여성할당제를 도입한 것도 진보정당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진보정당을 여성주의 가치가 살아 있는 정당으로 보지 않아 왔던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여성주의가 진보정당의 주요한 이념이자 가치로서 근간을 이루거나 기존의 가치와 융화/연대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며, 여성주의의 입장이 진보정치의 주요 의제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진보정당 뿐만 아니라 여성주의의 입장에서 사실 좀더 뼈아프다. 그간 진보정당운동 초기부터 많은 여성주의자들의 노력으로 반성폭력 규정 등이 운동 사회 내 제도로서의 성과를 내고, 안착화 되었으나 많은 경우 이들 제도가 성폭력 의제를 관리하는 기능으로만 머무르고 있다. 여성주의가 정당 내 성폭력 관리 원칙으로만 여겨지고 있는 현상은 진보정당 내 여성주의가 화석화된 이념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 한 진보정당이 단순히 노동운동의 정치적 대리기구가 아니라 노동운동이 표방하는 가치를 사회 속에서 구현해나가는 존재여야 했고, 지금의 실패가 이 같은 지점는 소홀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여성주의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며, 여성주의가 하나의 대중운동 뿐만 아니라 가치 지향 운동으로서 정당 운동과 어떤 파트너쉽을 가질 것인가 하는 문제로 돌아온다. 그러한 점에서 진보정당 위기에서 여성주의 정치의 위기가 진단조차 되지 않고 있는 점은 진보정당에 몸담았던 필자로서는 큰 공백처럼 느껴진다.
새롭게 가치 지향의 정당, 사회 운동과 호흡하는 진보정당을 고민할 때 여성주의와 진보정치의 관계부터 고민하게 되는 것은 이러한 까닭에서이다. 여성주의 운동의 가치와 진보정당운동의 가치가 어떻게 맞닿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평등과 사회 정의로서의 여성주의 운동의 가치를 진보정당 운동을 부문화하거나 하나의 의제로만 여기지 않고 진보정당 운동의 근본이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여성주의 운동도 사회전환의 이념으로서 여성주의를 내걸며 정치세력화를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여성주의자들, 여성주의에 관심 있었던 진보정치 운동가들이 여성주의와 진보정치 운동의 결합에 관심을 귀기울여야 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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