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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6월호 [문화산책] 다른 감각과 소통의 세계, 지구의 현실과 만나기를
▣문화산책
다른 감각과 소통의 세계, 지구의 현실과 만나기를
진경 ‧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다큐멘터리 <달팽이의 별>은 시청각 중복장애를 가진 영찬씨와 척추장애를 가진 순호씨의 ‘현재’와 소소한 ‘일상’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이 다큐멘터리는 두 사람이 만나서 함께 살아가는 사랑이야기로 홍보가 되었다. 감독은 기존 미디어가 장애인을 다루는 방식이 너무 신파적이고 인간극복을 강조하는 것이 싫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다큐멘터리는 시청각 중복장애라는 무거움을 덜어내고 따뜻함과 유머로 화면을 채우고 있다. 감독의 표현대로 ‘동화’같은 느낌의 다큐멘터리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 신파도 아니고 동화도 아닌, 그런 다큐멘터리일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 다큐멘터리는 순호․영찬 부부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감각과 소통방식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로 접근하고 있다. 손으로 대화를 나누고, 시각과 청각이 아닌 몸의 다른 감각을 통해 사람과 세상을 만나는 모습을 담아내는 것에 집중했다. 다큐멘터리를 본 사람들 소감을 보면, 대부분이 순호․영찬 두 사람의 관계에 감탄하고 두 사람이 함께하는 아름다움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나에게 개인적으로 제일 애틋했던 장면은 두 사람이 함께 등장할 때가 아니라 영찬씨가 같은 시청각 장애를 가진 친구의 병문안을 간 상황이다. 영찬씨는 친구에게 어떻게 다치게 된 것인지를 묻고, 친구는 집 앞에 얼음이 얼었는데 보이지 않으니 미끄러졌다고 이야기하는데 조용한 화면 속에서 손으로 점자를 두드리며 대화할 때, 친구가 느끼는 통증과 영찬씨의 안타까움이 뒤섞여서 와 닿는다.
처음에 이 다큐멘터리의 설정과 줄거리를 접했을 때, 부부가 지체장애와 감각장애라는 서로 다른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상황이 더 드러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천장에 손이 닿지 않는 순호씨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영찬씨가 서로 천천히 소통해가며 형광등을 갈아 끼우는 장면이 그러하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달팽이와 별>은 서로 다른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보다 특별하고 비범한 남편과 그런 남편을 보조하는 부인의 모습이 더 부각된다. 중간 중간 나오는 잠언 같은 영찬씨의 시가 다큐멘터리를 이끌어간다. 오랜 절망의 시간을 견디고 힘들게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자신의 언어를 찾은 영찬씨는 자유로운 철학자 혹은 구도자 같은 사람이다. 반면, 순호씨는 어떤 사람인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상당히 외로운 삶을 살아왔고 가끔씩 건강 상태가 많이 안 좋아진다는 걸 추측할 수 있다. 그래도 힘든 것을 잘 내색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남편을 배려하고 아끼는 순호씨는 너무 ‘착한 아내’로만 보인다.
외로운 인생 안에서 자신과 맞는 파트너를 만나길 기대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본인의 장애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과 다른 자신의 속도나 방식을 존중할 줄 아는 친밀한 파트너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자원’인지를 다큐멘터리를 보며 다시금 느꼈다. 장애인이 일상생활을 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자 할 때, 사회적인 지원체계가 많지 않은 한국에서 가족이나 파트너가 지원체계의 빈자리를 커버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서로 부딪치고, 때로는 힘들고 버거울 수밖에 없다. 다큐멘터리에서 이런 관계일 때 생길 수 있는 스트레스와 난감함은 잘 드러나지 않고 아름다운 상황들만 구체적으로 그려지는 것이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다.
다큐멘터리 초반에 학교에서 시험 보는 장면에서 학습 지원하는 학생이 등장하긴 하지만 순호씨 외에 영찬씨를 보조하는 사람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문득, 두 달 전에 개봉한 프랑스 영화 <언터처블>이 생각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서도 물론 프랑스의 활동보조 관련 제도는 설명하지 않지만, 보조를 하는 사람과 보조를 받는 사람이 맺는 관계의 긴장감과 갈등을 유쾌하게 보여준다. 주인공은 돈 많은 남자인데 사고로 인해 장애를 갖게 되면서 자신을 보조해줄 사람을 직접 고용하고 그 대가로 많은 급여를 지급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만났다 하더라도 온전히 고용-피고용의 관계로만 엮이지 않고, 사람에 따라 서로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생겼을 때 다른 성격으로 관계가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 다큐멘터리는 보여준다. 보조를 하는 것과 받는 것을 금전적 대가와 노동으로만 이야기할 수 없듯이, 반대로 ‘사랑’으로만 이야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거 아닐까?
장애인이 뭔가 부족하거나 불행한 사람들이 아니라 세상을 ‘다르게’ 사는 사람들일수도 있다는 <달팽이의 별>의 관점은 분명 의미가 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속에 나온 영찬씨의 시를 빌리자면 ‘우주만을 읽는 게 아니라, 지구의 현실도 읽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다큐멘터리는 그것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면 한편으로 ‘지구의 현실’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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